10년 전으로 되돌린 대기업 공시, 일감 몰아주기는?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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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으로 되돌린 대기업 공시, 일감 몰아주기는?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3.01.17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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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내부거래 공시 기준 ‘100억원’으로 완화… 전문가들 “갈등 규제개선이 가장 시급”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경쟁당국이 대기업 쏠림 공시제도 개선안을 내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경쟁당국이 대기업 쏠림 공시제도 개선안을 내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올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갈등 규제’ 개선이다.”

오늘(1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비대면 진료, 공유경제 등 신·구 산업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규제개선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문조사 대상인 규제 관련 전문가 50명 가운데 26.0%가 첫손으로 꼽은 윤석열정부의 과제입니다. 규제혁신의 성과에 대해 42%만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전문가들도 갈등 조정을 현 정부의 과제로 내세운 가운데, 경쟁당국이 대기업 쏠림 공시제도 개선안을 내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17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앞으로 대기업집단의 대규모 내부거래 이사회 의결 및 공시대상 기준금액이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상향됩니다.

공시의무가 부과되는 ‘대규모 내부거래’의 판단 기준이 바뀌는 것은 10년 만입니다. 2012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감시를 위해 하향한 것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황원철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그간 거시경제 및 기업집단의 규모 확대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기업부담은 과도하게 커진 반면, 시장에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공정거래위가 기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기업집단의 공시제도를 손질한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가 기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기업집단의 공시제도를 손질한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공정위는 이와 함께 5억원 미만의 내부거래는 이사회 의결·공시 대상에서 아예 제외키로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2021년 기준 전체 내부거래 2만여건 가운데 5000여건은 공시의무가 없어질 것으로 공정위는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공정거래법상 고시를 고쳐 12개 분기공시 항목 중 8개 항목을 연 1회로 줄이고, 공시기준일도 이에 맞춰 변경합니다.

또 공시의무 위반에 대한 과태료 부과기준도 변경합니다. 공시 지연에 대한 과태료 감경 기간을 연장(3일→30일)하고, 지연 일수에 따른 감경 비율을 종전 ‘공시 지연 일수 3일 이내 50% 감경’에서 ▲지연 일수 3일 이내 75% ▲7일 이내 50% ▲15일 이내 30% ▲30일 이내 20% 감경 등으로 세분화합니다.

아울러 공시 지연 일수가 3일 이내인 경우 등 경미한 공시의무 위반은 과태료 대신 경고로 대체하기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공정위는 이러한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다음 달 27일까지 입법 예고한 뒤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 절차를 거쳐 올해 안에 확정할 계획입니다.

공정거래법상 12개 분기공시 항목 중 8개가 연 1회 공시로 바뀐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법상 12개 분기공시 항목 중 8개가 연 1회 공시로 바뀐다. /자료=공정거래위원회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재벌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불법을 오히려 부추긴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재벌들 99억씩 여러 번 해 먹으면 안 걸려요, 이런 건가? 역시 재벌에게는 관대하구나. 일반 중소기업에서 90억 정도 내부 거래할 돈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재벌은 횡령해도 경고만 하겠다는 거네” “사기 치라고 장을 만들어주는구나” “내부 구린 거래들 활성화되겠네” “내부거래 안 하면 되지, 그까짓 서류 작업하는 공시 부담이 뭐가 있다고 이러냐?” “주주들 알 권리는?” “갈수록 퇴보하는구나. 기업 신뢰도 떨어질 듯”.

“공시 안 하는 게 기업부담 덜어주는 거랑 큰 관련이 있나?? 외부에 밝혀지면 안 되는 짓을 더 많이 할수록 부담이 줄어든단 뜻??” “일감 쪼개서 하는 거 불편하니까 덩어리 크게 해준 거다. 10번 쪼갤 거 2번 3번만 쪼개서 진행할 수 있게” “벌금을 깎아주겠다는 건 지금 주가조작으로 이익 내도 벌금 내고 많이 남겨 먹어라, 넘어가 줄게 이건가??”.

전문가들은 올해 정부의 규제개선 과제 가운데 갈등 해소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자료=대한상공회의소
전문가들은 올해 정부의 규제개선 과제 가운데 갈등 해소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자료=대한상공회의소

한편 앞서 언급한 설문조사 대상인 규제 전문가들은 기존 산업과 신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이해당사자 간의 갈등이 첨예한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갈등 조정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규제혁신의 수혜자는 결국 모든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퇴행 정책이 아닌, 100년 앞을 내다보는 규제혁신 정책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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