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과 거꾸로 가는’ 정은보의 금융감독원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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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헌과 거꾸로 가는’ 정은보의 금융감독원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1.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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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2019년 윤석헌의 금융감독원은 4년 전 폐지했던 종합검사의 부활을 알렸다. /자료사진=금융감독원
2019년 윤석헌의 금융감독원은 4년 전 폐지했던 종합검사의 부활을 알렸다. /자료사진=금융감독원

“4년 만에 금융회사 저승사자가 부활했다.”

2019년 2월 20일, 윤석헌의 금융감독원이 검사업무 운영계획을 발표합니다. 2015년 폐지됐던 ‘종합검사’를 재개한다고 알린 것입니다. 관행에서 벗어나 ‘유인부합적’ 검사를 밝혔지만, 금융회사들은 어떤 후폭풍이 몰아칠지 바짝 긴장합니다. 앞서 한 달 전 윤석헌 원장은 ‘저승사자’로 불리는 검사국 국장 아홉 자리에 모두 새 인물을 앉혔습니다.

‘종합검사’. 금융회사의 업무 전반 및 재산 상황에 대하여 감독기관이 실시하는 검사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특정 부문을 검사하는 부문검사와 달리 말 그대로 종합적이고 광범위한 검사입니다. 검사는 방법에 따라 금융회사를 직접 방문하여 실시하는 현장검사와, 금융회사로부터 자료를 제출받아 검토 및 확인하는 서면검사로 나뉩니다.

3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이 이번 달로 예정된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갑자기 미뤘습니다. 금감원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지난 8월 취임한 정은보 원장이 ‘종합검사 힘 빼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게 안팎의 분석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정 원장은 이날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에서 검사체계를 손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초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종합검사를 실시하기 위해 사전 요구자료를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금감원 종합검사는 사전 요구자료 요청 > 사전검사 > 현장 본검사 순으로 진행됩니다. 사전 요구자료 제출이 통상 종합검사 한 달 전에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이달 초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가 실시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금융감독원이 2019년 2월 내놓은 검사업무 운영계획. 유인부합적 방식이란 지시 중심의 당국의 직접적인 감독이 아니라 금융회사가 스스로 위험 관리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제재하는 간접적인 방식의 감독을 뜻한다. /자료=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이 2019년 2월 내놓은 검사업무 운영계획. 유인부합적 방식이란 지시 중심의 당국의 직접적인 감독이 아니라 금융회사가 스스로 위험 관리 시스템을 갖추도록 유도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제재하는 간접적인 방식의 감독을 뜻한다. /자료=금융감독원

하지만 금감원이 갑자기 종합검사를 잠정적으로 유보했다는 소식이 전날(2일) 전해졌습니다. “코로나 재확산 상황 등을 고려해 올해는 어렵다고 판단했다”라는 것이 금감원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다만, 금감원은 종합검사를 취소나 철회한 것은 아니며 일정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우리은행은 2018년 10월 경영실태평가를 받았을 뿐, 2019년 지주 체제로 바뀐 뒤 지금까지 종합감사를 받지 않았습니다.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무이합니다. 이를 두고 ‘규제’보다는 ‘시장친화적’ 감독을 지향하려는 정은보 원장이 종합검사 힘 빼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 원장은 이날(3일)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고, 종합검사를 대대적으로 손질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검사업무를 위규 사항 적발이나 사후적 처벌보다, 위험의 선제적 파악과 사전적 예방에 중점을 두는 세련되고 균형 잡힌 검사체계로 개편할 예정”이라며 “금융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라고 밝힌 것입니다.

‘규제’ 중심이던 전임 윤석헌 색깔을 지우고, 정은보의 ‘시장친화적 감독’이 반영된 행보가 시작됐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입니다. 이에 따라 종합검사 제도의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윤석헌 전 원장이 4년 만에 부활시켰던 종합검사 제도 자체가 폐지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현재 금감원은 검사·제재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입니다. 종합검사가 사라지고, 사전 컨설팅식 검사나 비대면 평가, 기존 부문검사와 경영실태 평가 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손질하는 방안 등이 TF에서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울러 금융사의 규모나 업무 특성 등에 따라 유연하게 검사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금융그룹에 대한 종합검사가 미뤄진 가운데 정은보 금감원장(맨 왼쪽)은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체계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우리금융그룹에 대한 종합검사가 미뤄진 가운데 정은보 금감원장(맨 왼쪽)은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체계를 손보겠다고 밝혔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당국이 우리금융에 특혜를 준 것이라며 음모론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반면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는 주장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 앞에서 뜬금없이 취소? 뭔가 냄새가 나는 거 같은데” “금감원, 금융위, 기재부는 금융범죄를 덮어주고 자리 보전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적” “위드 코로나잖아” “혹시 대장동이랑 뭐 상관있는 거 아니냐?” “우리금융한테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그동안 압박 주던 걸 그만한 거다. 5대 은행지주 중에 유일하게 민영화 안 된 기업이 우리금융지주이고, 갖가지 정부 간섭과 예보 압박을 받아온 게 우리은행이다. 이제 막 민영화시켜 주고 놓아주는 수순을 밟는 중이라 그러겠다는 건데 뜬금없이...”.

당초 우리금융그룹에 대한 종합검사에서는 라임펀드 사태 당시 우리은행장이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사진)에 대한 징계 문제도 점검 대상이었다. /사진=우리금융그룹
당초 우리금융그룹에 대한 종합검사에서는 라임펀드 사태 당시 우리은행장이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사진)에 대한 징계 문제도 점검 대상이었다. /사진=우리금융그룹

한편 연내 실시가 무산된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에서는 사모펀드 환매 중단 문제, 부실한 내부통제 여부 등이 다뤄질 예정이었습니다. 최근 법원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내린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취소한다는 1심 판결을 내렸으나, 금감원은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입니다.

우리은행의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와 관련한 부분도 주요 점검 대상이었습니다. 라임펀드 사태 당시 우리은행장이던 손 회장이 중징계를 통보받고 현재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징계 수위가 논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금융그룹의 종합검사가 미뤄지면서 함께 검사 대상으로 예상됐던 카카오뱅크·동양생명·KB손해보험 등의 계획도 불투명해졌습니다.

금융감독원 종합검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사진=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종합검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사진=금융감독원

“유인부합적 방식으로 실시하겠다”. 박근혜정부 두 번째 금감원장이 폐지했던 종합검사를 부활시키면서 윤석헌 전 원장이 약속했던 말입니다. 유인부합적 방식이란 금융회사 스스로 위험 관리 시스템을 갖추도록 이끌고, 이를 지키지 못할 때 제재하는 간접적인 감독을 뜻합니다. 대한민국 금융회사의 자정 노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종합검사는 금융감독 정책의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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