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축협·기업은행의 ‘셀프대출’과 채무불이행자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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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축협·기업은행의 ‘셀프대출’과 채무불이행자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1.02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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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사진)을 반장으로 하는 ‘부동산투기특별금융대응반’은 지난 3월 16일 “(LH 직원 대출과 관련한) 금감원의 현장검사 및 점검 결과 불법 투기 의혹이 있는 부분을 적법 절차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에 신속히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사진)을 반장으로 하는 ‘부동산투기특별금융대응반’은 지난 3월 16일 “(LH 직원 대출과 관련한) 금감원의 현장검사 및 점검 결과 불법 투기 의혹이 있는 부분을 적법 절차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에 신속히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료사진=금융위원회

“감독기관은 대출금 58억원에 대한 프로세스를 철저히 조사해달라.”

지난 3월 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시장 점검 회의에서 강력히 주문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터진 지 열흘 만입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부동산투기특별금융대응반’(부동산금융대응반)은 현장검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LH 대출과 관련한 법규 위반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나머지 대출에서 의심 사항이 발견됐다”.

‘셀프대출’. 금융회사의 임직원이 본인이나 가족 등 지인의 대출을 직접 심사해서 돈을 빌리는 것을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북시흥농협 등에서 임직원들이 셀프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시흥농협은 앞서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자금 대출 의혹이 제기돼 당국의 현장검사를 받은 곳입니다.

2일 금융감독원은 LH 직원들을 상대로 위법·부당 대출 의혹이 제기된 북시흥농협과 부천축협을 대상으로 검사를 벌여, 지난 9월 임직원 주의 또는 경영주의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금감원은 다만 문제가 된 임직원들이 직접적으로 3기 신도시 안의 부동산을 사들이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LH 직원들을 상대로 위법·부당 대출 의혹이 제기된 북시흥농협 등에서 임직원들이 셀프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LH 직원들을 상대로 위법·부당 대출 의혹이 제기된 북시흥농협 등에서 임직원들이 셀프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북시흥농협은 2006년 9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임직원 본인 또는 제3자(배우자나 동생 등) 명의로 농지 등을 담보로 수십억원을 부당 대출해줬습니다. 또 2005년 9월부터 2019년 11월 사이, 본인 또는 제3자 명의로 수백억원을 부당하게 일반대출해주고 동일인 대출 한도를 초과했다가 적발됐습니다.

2015년 7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는 담보 물건당 15억원을 초과하는 농지 담보대출을 취급하면서 대출심사위원회 심의를 누락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개인사업자에게 가계자금 해당 여부도 검토하지 않고 10억원이 넘는 가계대출을 내어준 경우도 있었습니다. 금감원은 이 같은 이유로 북시흥농협 임직원 15명에 주의 조치와 함께 3건의 경영유의 제재를 내렸습니다.

금감원은 이밖에 부천축협에 대해서도 부당 대출로 직원 1명에게 주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 직원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배우자 명의를 이용, 농지 등을 담보로 수억원의 셀프대출을 취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금융감독 당국 직원 등으로 구성된 부동산금융대응반은 앞으로 금융회사가 투기자금 조달 창구가 되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불법 셀프대출로 주식에 투자하는 등 은행의 금융사고 피해액이 5년간 1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이정문 의원실(금융감독원 제공)
불법 셀프대출로 주식에 투자하는 등 은행의 금융사고 피해액이 5년간 1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이정문 의원실(금융감독원 제공)

한편 불법 셀프대출로 주식에 투자하는 등 은행의 금융사고 피해액이 5년간 15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은행 금융사고 현황>에 따르면, 국내 20개 은행에서 최근 5년간 177건의 은행 금융사고로 모두 1540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사례별로 보면 하나은행 직원은 올해 국내외 주식투자를 위해 본인과 지인 명의로 부당 대출을 직접 취급해 모두 31억원을 횡령했습니다. 또 NH농협은행 직원은 자신의 모친과 배우자 등 통장·신분증 사본 등을 보관하면서 고객 대출서류를 본인이 작성해 담보대출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25억원을 횡령했습니다.

사고 건수별로는 KB국민은행이 24건으로 금융사고가 가장 많았으며, ▲농협은행(23건) ▲신한, 우리은행(각 22건) ▲하나은행(21건) ▲IBK기업은행(19건) 순이었습니다. 사고 금액별로는 ▲우리은행(422억원) ▲부산은행(305억원) ▲하나은행(142억원) ▲NH농협은행(138억원) ▲대구은행(133억원) 순이었습니다.

이정문 의원은 “국내 은행들이 금융사고를 일부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로만 치부하다 보니 내부통제가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라며 “올해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본격 시행된 만큼 은행 스스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금융당국 역시 고질적인 금융사고 근절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셀프대출 사태 당시 내부통제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료사진=IBK기업은행
지난해 셀프대출 사태 당시 내부통제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약속은 아직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료사진=IBK기업은행

“국책은행이 집값 올리고 있었네”. 지난해 9월 1일, IBK기업은행 직원이 4년여에 걸쳐 76억원에 달하는 셀프대출로 아파트 등 29채의 부동산을 사들이자 여론은 폭발했습니다. 당시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셀프대출 재발 방지와 함께 내부통제 시스템 마련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까지 금융기관에 등록된 채무불이행자는 모두 77만5485명입니다. 이들 가운데 20만7713명은 소액 대출자였습니다. 5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돈을 석 달이 넘도록 갚지 못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낙인이 찍힌 것입니다. 채무불이행자를 연령별로 보면 20대가 8만2545명, 10대도 487명이었습니다. 셀프대출을 한 이들에게 당국의 ‘주의’ 조치는 중징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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