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M으로 탈세한 ‘법꾸라지’와 상속세 개편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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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으로 탈세한 ‘법꾸라지’와 상속세 개편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1.01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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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2016년 12월 SNS를 통해 퍼져나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배 전단. 당시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불출석한 그를 찾는데 걸린 포상금은 200만원에서 시작해 이후 1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2016년 12월 SNS를 통해 퍼져나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수배 전단. 당시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 불출석한 그를 찾는데 걸린 포상금은 200만원에서 시작해 이후 10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법꾸라지가 나라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국정농단’이라는 낱말이 거대한 검색어 구름을 이룬 2016년 12월 13일, 5200만의 눈이 한 사람을 쫓습니다. 그에게 걸린 현상금만 1300만원입니다. ‘법꾸라지’ 별명을 독점하던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도 그를 비난합니다. “국회가 부르면 당연히 와서 진술해야 한다”. 검찰 출신으로 차관급을 지낸 전직 청와대 민정수석, 원조보다 더 미끄러웠던 법꾸라지 이야기입니다.

“법조계, 국회의원, 경제계 인사들은 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겠지.”

‘법꾸라지’.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범죄 사실을 숨기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는 범법자를 미꾸라지에 빗대어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미성년 자녀에게 수십억원의 현금을 편법 증여하는 등 탈세를 저지른 법꾸라지들이 대거 적발됐습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더 많은 법꾸라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우회 증여 등을 통해 부동산 취득자금을 증여받고 명의 신탁으로 농지를 불법 취득한 사례. /자료=국세청
우회 증여 등을 통해 부동산 취득자금을 증여받고 명의 신탁으로 농지를 불법 취득한 사례. /자료=국세청

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회재 의원에 따르면, 국세청 부동산 탈세 특별조사단이 일곱 달 동안 추징한 탈루세액이 1973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 3월 말 본청과 지방청, 개발지역 세무사 조사요원 등을 투입해 개발지역부동산탈세특별조사단(특조단)을 구성했습니다.

특조단은 대규모 개발지역 발표일 이전에 이뤄진 일정 금액 이상의 토지거래에 대해 전수 검증을 벌였습니다. 특히 탈세 의심 거래에 대해서는 바로 세무조사로 전환해 거래자 본인과 부모 등 친인척의 자금 흐름을 모두 추적했습니다. 법인자금을 빼내 토지 취득과 같이 개인 용도로 사용한 혐의가 있는 사주 일가 등에 대해서도 조사했습니다.

특조단은 이렇게 7개월간 탈세가 의심되는 828명을 찾아내, 아직 조사 중인 65명을 제외하고 모든 세무조사를 마쳤습니다. 이들 탈세범의 수법은 치밀했습니다. 고액 자산가인 A씨는 수십차례에 걸쳐 ATM 등을 통해 미성년 아들에게 무통장 입금했습니다. 증여세 없이 수십억원을 건네받은 아들은 이 돈으로 부동산을 사들였습니다.

신고 소득이 거의 없는 연소자가 고액 자산가인 어머니로부터 부동산 취득자금을 증여받아 개발 예정이 인근의 부동산을 수차례 취득하였으나 증여세 신고를 누락한 사례. /자료=국세청
신고 소득이 거의 없는 연소자가 고액 자산가인 어머니로부터 부동산 취득자금을 증여받아 개발 예정이 인근의 부동산을 수차례 취득하였으나 증여세 신고를 누락한 사례. /자료=국세청

또 다른 자산가 B씨는 미성년 자녀에게 임대용 빌딩을 증여했습니다. 소득이나 재산이 없는 미성년 자녀는 수억원에 달하는 증여세와 취득세 등을 스스로 납부했습니다. 하지만 자녀가 낸 세금도 B씨가 대신 내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거액의 세금에 대한 증여세를 내지 않으려 자녀가 자진 납부한 것처럼 꾸민 것입니다.

C씨는 장모의 계좌를 이용해 자금 추적을 따돌리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먼저 장모의 이름으로 된 통장으로 여러 차례 돈을 보낸 뒤 현금으로 인출했습니다. 이를 다시 미성년 자녀의 계좌에 입금, 우회 현금 증여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미성년 자녀는 이 돈으로 고가 아파트와 개발예정지구 토지 등을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김회재 의원은 “강도 높은 부동산 투기 조사를 지속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증여 신고를 회피한 경우 부과되는 현행 40%의 증여세 가산세도 더 강화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고액 자산가가 낸 상속·증여세를 청년층의 자산 격차 완화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위해 미성년 자녀에게 수십억원의 현금을 편법 증여하는 등 탈세를 저지른 ‘법꾸라지들’이 대거 적발되자 누리꾼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더 많은 법꾸라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부동산 투기를 위해 미성년 자녀에게 수십억원의 현금을 편법 증여하는 등 탈세를 저지른 ‘법꾸라지들’이 대거 적발되자 누리꾼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며 더 많은 법꾸라지를 찾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철저한 세금 징수와 함께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촉구합니다. 탈세범을 잡아낸 세무 당국에 대한 칭찬과 함께 자녀 교육에 대한 조언도 이어집니다. 반면 상속세를 낮춰 성실 납부를 유도하자는 의견도 눈에 띕니다.

“추징만 하면 뭐하냐??? 실제 걷어야지” “수십억 흐름은 국세청에서 바로 감지한다. 이런 투기범들은 형사 처벌하고 탈세 세무조사도 해서 세금추징도 해라. 여죄가 더 있지 싶다” “불법 탈세자들 월세방 값 남겨놓고 모두 압수해라” “돈 잘 버네. Lh는 어찌했니? 뭣 좀 했니?”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부터 좀 해봐라” “불법 상속 걸리면 증여세는 증여금의 90%를 추징해서 창고를 채우자” “무식하게 ATM에서 돈 뽑냐. 그냥 퇴직금으로 50억 주면 되는데”.

“탈세한 인간들은 탈루액만 거두지 말고 몇배로 거둬라. 탈루액만 거두면 어차피 내야 할 돈 천천히 내도 되는 거니까 더 좋아하겠지” “있는 사람들이 더하네. 직장인 월급은 세금 내는 ATM, 있는 사람들은 불법 증여 인출자금 ATM” “이런 사람들 돈 받아서 재난지원금 받을 만하다” “국세청 칭찬합니다. 계속해서 수고해 주십시오~” “시간 내서 자녀들과 같이 놀아주고 여행 가고 대화를 하세요. 돈, 부동산만 주면 부모를 돈으로 봅니다”.

“상속세 낮추어 성실납부 유도하자” “소득에 과세는 절대 맞지만 이미 과세된 재산을 자식에 넘기는 상속에 대한 과도한 과세는 과연 정당한 건가. 이중과세 성격도 있는데. 보유세인 재산세나 상속세 등은 과감하게 낮춰주는 게 맞다 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일 수 있다. 그러나 부자들에 대한 반감이 계속되는 한 이들의 돈은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부자들에게 잘 보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이 국내에서 돈을 써도 욕먹지 않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아홉 살배기가 주택 스무 채를 22억5000만원에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금만 내면 상관없다는 쪽과 미성년자에게는 주택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쪽으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은 강남의 한 아파트.
아홉 살배기가 주택 스무 채를 22억5000만원에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금만 내면 상관없다는 쪽과 미성년자에게는 주택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쪽으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은 강남의 한 아파트.

한편 정부가 상속세 개편 방침을 밝히면서 현행 상속세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유산취득세’에 관심이 모입니다. 과세표준 30억원이 넘는 상속재산에 50% 세율을 매기는 현행 상속세는 22년째 그대로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6일 국정감사에서 “상속세 과세체계 개편방안을 만들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유산 전체가 아니라 개인별로 상속받은 재산에 각각의 세금을 매기는 ‘유산취득세’는 2019년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제안했습니다. 홍 부총리는 국감에서 “상속세는 유산취득세로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라며 “문제 제기가 쭉 있어 와 시간이 걸리겠지만 검토해볼 필요는 있겠다”라고 논의 여지를 뒀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유산세보다 유산취득세가 널리 쓰입니다. 공평과세와 부의 분산이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는 이유입니다. 지난 5월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헝가리, 터키 5개국은 유산세 방식이고, 나머지 나라는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유산취득세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애 이름으로 사도 된다. 세금만 제대로 내면”. 시월의 마지막 날, 아홉 살배기가 주택 스무 채를 22억5000만원에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갑론을박이 펼쳐집니다. 큰 줄기는 세금만 내면 상관없다는 쪽과 미성년자에게는 주택 소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뉩니다. 기득권이라는 조세 저항과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구조적 간극이 너무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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