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억대 빚쟁이’ 만드는 민법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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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억대 빚쟁이’ 만드는 민법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1.10.29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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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앞으로 법원이 선임한 상속재산 관리인과 상속인의 후견인도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는 금융 내역뿐 아니라 국세나 지방세 같은 세금, 국민연금 가입 여부, 토지나 건축물 등 사망자의 재산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앞으로 법원이 선임한 상속재산 관리인과 상속인의 후견인도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는 금융 내역뿐 아니라 국세나 지방세 같은 세금, 국민연금 가입 여부, 토지나 건축물 등 사망자의 재산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1. A씨는 며칠 전 부모를 잃고 홀로 남겨진 어린 손주가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은 많은 빚까지 남겨뒀습니다. 채무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A씨는 앞으로 손주에게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2. 성년 후견인 B씨도 최근 고민이 늘었습니다. 질병으로 오랫동안 돌보고 있는 C씨의 어머니가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잠시라도 병석을 비울 수 없는데 상속 절차를 진행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금융기관과 관공서를 일일이 방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신청자격 및 처리절차. /자료=금융감독원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신청자격 및 처리절차. /자료=금융감독원

‘안심상속’. 상속받는 사람이 사망한 사람의 모든 재산을 한 번에 알아보는 제도를 일컫는 네 글자입니다. 2015년 6월 30일부터 전국의 시·구, 읍·면·동 또는 포털인 ‘정부24’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법원이 선임한 상속재산 관리인과 상속인의 후견인도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A씨나 B씨 같은 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2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같이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신청 자격이 확대됩니다. 행안부는 “신청 자격 확대를 통해 성년 및 미성년 후견인이 상속인을 대신해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상속 절차를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고, 상속인 본인도 몰랐던 사망자의 채무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에서 조회할 수 있는 상속재산 내용. /자료=정부24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에서 조회할 수 있는 상속재산 내용. /자료=정부24

안심상속 원스톱 서비스는 금융 내역뿐 아니라 국세나 지방세 같은 세금, 국민연금 가입 여부, 토지나 건축물 등 사망자의 재산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읍·면·동 주민센터를 찾거나 정부24 포털을 통해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됩니다. 사망신고 때 함께 신청도 가능합니다.

한창섭 행정안전부 정부혁신조직실장은 “지금까지 상속인이 미성년자이거나 성년후견개시심판을 받은 경우에는 상속재산 조회가 번거롭고 복잡했지만, 앞으로는 빠르고 쉽게 조회할 수 있다”라며 “해마다 증가하는 무연고 사망자의 재산 및 채무 실태를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7월 30일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를 위한 민법 개정의 필요성과 개정방향'을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서울시복지재단 유튜브 갈무리
지난 7월 30일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를 위한 민법 개정의 필요성과 개정방향'을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서울시복지재단 유튜브 갈무리

한편 많은 미성년자들이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빚을 상속받고, 신용불량자로 사회에 진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3월까지 미성년자 80명이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했습니다. 이들 미성년자는 물려받은 빚더미에서 벗어나는 대가로 5년간 금융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지난 7월 30일 송기헌, 최기상 국회의원은 <미성년자 빚 대물림 방지를 위한 민법 개정의 필요성과 개정방향>을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전가영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미성년 상속인이 채무를 상속받은 경우, 성인이 된 후에도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없다는 기존 법원의 입장을 유지했다”라며 조속한 법 개정을 촉구했습니다.

역시 발표자로 참여한 성유진 변호사는 “현재 국회에 발의된 관련 민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적극적인 권리 행사가 없을 경우에는 미성년 상속인을 보호하지 못하고, 성년이 되기까지 상속채권자의 추심행위에 노출될 위험성 등이 있으므로 미성년 상속인 구제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라며 실질적인 구제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론자로 참석한 전민경 변호사도 “아동의 상속채무 해결을 위해서는 법정대리인의 선임에서부터 한정승인 및 그 청산절차에 이르기까지 시간도 많이 든다”라며 “애초부터 채무초과 상태의 아동에 한해서는 단순승인도 한정승인으로 간주하는 등 근본적 해결을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조속한 민법 개정을 촉구했습니다.

미성년자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게 민법을 하루빨리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일러스트=픽사베이
미성년자에게 빚을 물려주지 않게 민법을 하루빨리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일러스트=픽사베이

“2030 탓하지 말고 왜 폭증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분석과 대책이 먼저 아닌가”. 지난 22일, 2030 청년층의 전세대출이 5년 새 60조원 넘게 늘었다는 금융감독원 자료가 나오자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스물도 되지 않아 파산신청을 한 80명과 마찬가지로 형과 누나들도 빚더미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대통령의 국무회의 약속은 지켜질까요.

“미성년자가 상속제도에 대해 충분히 안내받을 수 있는 행정적 조치를 포함해 빚 대물림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모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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