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리테일 영업맨’ 박종복 SC제일은행장, 4연임 비결은 ‘국부유출’?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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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리테일 영업맨’ 박종복 SC제일은행장, 4연임 비결은 ‘국부유출’?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4.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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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이후 기록적 현금 배당, SC 인수자금 초과 회수 일등 공신… 조국엔 ‘부의 상실’ 안겨
박종복 SC제일은행장, 4연임 비결은 ‘국부유출’?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박종복 SC제일은행장, 4연임 비결은 ‘국부유출’?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근자열원자래’(近者悅遠者來). 가까운 사람에 잘해야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훈훈한 삶의 처세로 널리 알려진 고사성어인데, 요즘 경영인 중 화젯거리인 SC제일은행의 박종복 은행장이 좋아하며 실천해 온 말로도 알려진다. 그러나 이 고사성어가 탄생한 배경은 2500년 전 피비린내 나던 춘추전국 시대로 초나라 변방의 권력자에 공자가 고민 상담차 제안한 말이다. 후대 현자로 알려진 공자도 당시에는 사실 일자리를 찾아 천하를 돌아다니던 일개 지식인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컨설팅 상품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처세술이었다. 박종복 행장은 제일은행이 IMF 외환 위기 이후 벌어진 한국판 금융시장의 춘추전국 시대에 살아남은 사람이다. 제일은행은 2000년 헤지펀드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되었다가 2005년 스탠다드차타드가 인수한 후 외국인 은행장이 지배하다가 2015년 박종복 행장이 발탁됐고, 2016년 현재의 SC제일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존속하고 있다. 이러한 역정에서 ‘가까운 자를 기쁘게 하는 것’은 그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가 생존을 위해 그와 가까운 누구를 기쁘게 했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자료 1. /출처=사업보고서
자료 1. /출처=사업보고서

박종복 행장은 취임 이후 스탠다드차타드를 강력히 설득해서 2016년 브랜드 이름을 ‘SC제일은행’으로 바꾼 것을 주요 치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2010년 전후 철수를 검토하던 스탠다드차타드에 한국 시장 영업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은행 사업보고서상의 법적 명칭은 여전히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홈페이지 주소도 ‘standardchartered.co.kr’)이다. 과거 여러 차례 CI 변경을 주도했던 경험이 있는 필자가 보기에 법적 회사 명칭 변경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추측하건대 모회사는 법적 실체의 변경을 승인하지 않았고, 단지 한국 내에서 영업 편의를 위해 박 행장에게 일시적 서비스 브랜드로 SC제일은행 사용을 허락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스탠다드차타드’ 명칭을 사용해야 브랜드 사용료를 모회사가 받아 가는 법적 근거가 있기도 하다. 박 행장의 영업 확장을 추진한다는 주장에도 자료에서처럼 SC제일은행이 사업보고서에 밝히는 한국금융시장에서의 영업 위상은 여전히 미미하고 지난해에는 더욱 위축됐다.

자료 2. /출처=각 사업연도 사업보고서 재구성
자료 2. /출처=각 사업연도 사업보고서 재구성

스탠다드차타드가 현지인 박종복 행장에게서 무엇을 기대했는가를 추측하게 하는 단서는 바로 무리한 배당 논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배당을 시작한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누적 배당액은 3조원이 넘는다. 특히 박 행장이 취임한 2015년 이후 누적 배당액은 2조원이 넘어 현금 배당이 가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행장 취임 이전은 평균 연 배당이 1667억원이었고, 취임 이후에는 2234억원으로 평균 배당 규모는 34%나 증가한 것이다. 특히 그가 취임한 해는 5000억, 2019년에는 6550억원의 기록적 현금 배당이 있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2005년 뉴브리지캐피털과 정부의 제일은행 지분 모두를 3조4000억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SC제일은행 노조는 2021년까지 배당 2조6010억원과 해외 용역 수수료 및 브랜드 사용료 1조867억원으로 은행 인수 금액을 이미 초과 회수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스탠다드차타드에게 있어 2022년과 지난해 SC제일은행의 대규모 배당은 초과 투자 이익 회수 의미가 있다. 또 이러한 연간 배당 증가에 따른 기업가치 증가는 경영권 프리미엄 증가를 수반하고, 결국 향후 SC제일은행 M&A 검토 보고서에 표기하는 매각 가액 상승과 스탠다드차타드의 막대한 자본 투자 이익(capital gain)까지 예상할 수 있다. 아울러 최근의 급격한 배당 증가는 2010년대 초에 추진하려다 미룬 스탠다드차타드의 SC제일은행 매각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스탠다드차타드는 전략적 투자자로 이 모든 과정을 당연히 의도했을 것이다.

박종복 은행장.
박종복 은행장.

이러한 과정의 한가운데 박종복 행장이 있고, 스탠다드차타드에 그의 역할은 단연 빛난다. 제일은행 출신 순수혈통으로 그의 활동은 외국계 금융 자본이 겪어야 할 장애를 모두 해소했고, 더 나아가 스탠다드차타드가 바라는 투하 자본 회수 과정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제공했다. 이러한 공로로 박 행장은 올해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글로벌 IB에서의 화려한 경력 없이 리테일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외국계 은행장을 맡은 것도 놀라운데, 그가 초장기 연임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언론은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오컴의 면도날’을 들이대 보면, 그의 성공 원인은 단순하다. 필자도 경험했지만 리테일 영업은 극도의 목표 지향성과 조직에 대한 충성이 기본 소양이다. 그는 이러한 역량을 그의 좌우명, 근자열원자래에 적용했다. 가장 가까운 스탠다드차타드가 기뻐할 일을 서슴없이 하고 충성을 다했다.

그러나 문제는 SC제일은행이 낳는 배당의 과실은 한국의 금융소비자가 원천이라는 점이다. 금융은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금융 회사는 명목가치를 보존하거나 부풀리고 변동시켜 보수나 차익을 얻는다. 어떠한 방식이든지 한 국가 경제에 유입된 자금 이상으로 유출하는 것은 결국 국내에서 생산된 부의 유출이며, 남아 있는 경제 구성원에 부의 상실이라는 영향을 주게 된다. 100% 외국 자본인 금융 회사의 배당이 과다하게 해외로 유출하는 것을 ‘국부 유출’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국내 리테일 영업을 하던 박종복 행장에게 과다한 배당 등이 국부 유출이라는 거시 경제적 논리는 허황한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충성과 목표 달성이 최우선인 그의 조직 생활 가치관에도 벗어나는 일일지 모른다. 그의 은행장 네 번째 연임은 본인뿐 아니라 어쩌면 모회사에도 큰 기쁨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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