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묵자는 송나라 공격을 막으려고 초나라 혜왕을 설득해서 수많은 민초의 목숨을 구한 기록이 있다. 이때 혜왕의 침공 계획을 돕기 위해 운제(雲梯)라 불리는 거대한 공성용 사다리를 발명한 전설적인 목수가 있었는데, 그가 공수반(公輸般)이다. 도끼 다루는 재간이 남달랐던 공수반은 후세에 노나라 사람이라는 뜻으로 노반(盧般)으로도 불렸다. 이 노반의 문전에서 감히 도끼를 휘두른다는 뜻의 ‘반문농부’(班門弄斧)라는 고서 성어가 전해지는데, 재주가 부족한지도 모르고 함부로 날뛴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최근 증권산업을 앞에 두고 도끼 자랑을 넘어 도끼 춤을 추는 모양새가 눈에 띈다. 바로 임종룡 회장의 우리금융그룹이다.
지난 3일 우리금융그룹의 우리종합금융(이하 우리종금)은 한국포스증권(이하 합병증권)과 합병한다고 공시했다. 합병 후 남는 회사(존속 법인)는 한국포스증권이며, 우리종금을 흡수 합병하고, 합병증권의 합병 신주를 우리금융지주가 인수하여 97.31%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 관련 공시에 따르면 합병 목적은 ‘시너지 효과 극대화’로, 존속회사인 한국포스증권은 우리종금의 자본력과 안정적 수익 기반 등을 활용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효과가 있다. 합병기일은 8월 1일이며, 이날 이후 한국포스증권은 금융당국의 합병 관련 인허가를 취득할 때 종합증권사로서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단기금융업 등을 영위할 예정이다.
이번 합병으로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종금 업무를 기반으로 한 기업금융(IB)과 펀드슈퍼마켓인 한국포스증권의 디지털 역량을 핵심 축으로 유상증자, 자체 성장, 추가 인수합병도 함께 추진, 10년 안에 증권업계 10위권 IB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신설 증권회사의 성장을 위해서는 은행을 중심으로 그룹 고객 기반의 적극적 활용이 필수적이며, 합병 증권사는 그룹 내 맞춤형 기업금융 서비스 제공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우리금융은 합병증권의 업무 영역을 리테일과 세일즈엔트레이딩(S&T)으로 확장하여 중장기적으로 초대형 IB로 성장시킨다는 복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우리금융그룹의 통합 금융 플랫폼 ‘뉴원’(New Won)에 증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굴지의 금융그룹이 그리고 내놓는 청사진인 만큼 믿을 만하다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30년 이상 증권산업을 지켜본 필자 눈에는 심한 ‘허장성세’(虛張聲勢)처럼 보인다.
먼저 우리금융이 야심을 꾹꾹 담았다며 공언한 이번 합병 건은 증권업 진출을 위해 내딛는 첫발치고는 거리감도 무게감도 없어서 너무 뻔하다는 생각이다. 증권산업의 생존 조건이 거대한 자본 규모가 전제 조건인 초대형 IB 시대로 넘어간 지 이미 오래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외형 규모가 개별은 물론 합산에서도 갈 길이 멀고 어떤 기대를 하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존속회사 한국포스증권의 자기자본은 485억원이며 최근 3년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적자다. 또한 우리종금은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 PF에 관련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발채무 약정 잔액도 6480억원이나 있다. 최근 시끄러운 부동산 PF 상황을 볼 때 앞으로 우리종금이 가진 돈이 모두 자기 돈이 아닌 일이 벌어질 확률이 크다는 뜻이다. 결국 두 회사 합병 후 합병증권은 우리종금 재무 자원에 기대야 하는데, 우리종금은 지난해 적자를 냈고, 스스로 생존도 벅찬 상황이다.
지난해와 올해 약 6000억원의 증자로 우리종금 자기자본은 1조1000억원이 간신히 넘었으나, 지난해 말 자기자본 기준 증권회사 자본과 비교한 순위는 고작 19위 수준이다. 증권사의 자기자본은 초대형 IB로 금융당국의 업무 인가를 받기 위한 기본 조건이어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금융 주장대로 합병 증권사가 10위권 초대형 IB가 되기 위해서는 4조~5조원의 추가 증자가 필요하다. 자본 규모 9위인 키움증권이 초대형 IB 기준 자기자본 4조원을 넘어섰으나 초대형 IB 인가를 받지 못했다. 현재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6조원 이상 5개 회사뿐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벽은 우리금융지주가 추가 자본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병 증권사가 적절한 투하자본수익률의 근거(예를 들면 자기자본수익률)를 보여주고, 이것이 지속 가능하다고 설득할 수 있는 사업 모형(Business Model)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금융은 합병증권의 사업 모형으로 큰 성공을 거둔 메리츠종금증권(현 메리츠증권)을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합병 후 한국포스증권이 10년간 우리종금 보유 발행어음 업무를 계승하며 기업 단기 자금 조달 기능을 통해 은행 기업 고객을 기반으로 경영수지를 맞추고 성장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과거 공적자금을 받은 대형 금융투자회사에서 회사 매각 등 경영기획 실무를 맡았던 필자가 보면, 이 사업 모형에 대해 우리금융이 착각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보험과 증권 주력의 메리츠금융그룹은 은행 중심의 우리금융과 근본적인 경영과 조직 문화의 차이가 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극단적인 성과 보상 문화를 도입해 메리츠종금증권을 키웠고, 수많은 부도덕성 논란에도 종합금융 업무 반납 10년 후 현재 메리츠증권을 성공시켰다. 이 과정에서 메리츠종금증권은 증권산업 전반에서 돈 잘 버는 증권 인력은 과거를 묻지 않고(?) 채용해 현장에 투입했다. 상업은행, 한일은행 등 전통적 한국 은행가가 근본인 우리금융그룹이 메리츠종금증권 성공 모델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도입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 하나 발행어음 업무는 모르겠지만, 증권업무 서비스를 은행 고객에 포트폴리오로 제공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기존 금융 그룹 가운데 이러한 사업 모형을 성공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잘해야 복합점포(Branch with Branch)로 같은 공간에 은행과 증권 두 지점을 몰아놓는 것인데, 이런 때도 대부분 절대적 고객 기반은 섞이지 않는다. 금융 서비스 소비자인 고객은 ‘위험 감내 능력’(risk tolerance)의 차이로 증권 서비스와 은행 서비스를 구분하여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경영 수지를 높일 목적으로 은행 예금과 같은 안전 상품을 선호하는 고객에 위험이 담긴 금융투자상품을 무리하게 권하다가 금융사고가 일어나는 사례가 많다. 엄밀히 얘기하면 최근 은행의 ELS 불완전 판매 사태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증권산업은 은행업 중심의 우리금융에 결코 만만한 비즈니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그마한 합병 건을 놓고 침소봉대(針小棒大)에 가까운 홍보를 하는 것은 “우리금융은 증권업의 본질을 모릅니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과다한 홍보전 배경에는 지난해 취임한 임종룡 회장의 조바심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은행만의 실적으로 가득한 우리금융 사업구조를 보면 이유가 명확하다. 관치 논란 속에 취임한 임종룡 회장은 첫 마디로 증권·보험 등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그룹 사업구조를 다각화한다는 뜻을 강력히 비쳤다. 그러나 취임 후 1년하고 약 3개월이 지난 지금, 호언장담과는 달리 뚜렷한 실적이 없으니 임 회장의 심기가 불편함은 물론 특히 보좌진은 좌불안석일 것이다.
이번 합병은 이정수 우리금융그룹 전략 부문 부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해외 대학 국제금융 석사 학위를 가졌지만, 한일은행에 입행해 주로 IR 업무를 담당한 인물이다. 결국 이번 홍보 쇼에 가까운 합병은 증권업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려운 은행가가 탁상공론 끝에 메리츠종금증권 사례를 모방한다며 잘하던 IR 역량을 발휘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이번 합병 건을 보고 증권업을 아는 사람은 단박에 갈길 급한 임종룡 회장과 우리금융의 반문농부라는 느낌을 받을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