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최대주주 등극’ 현대차그룹의 ‘정경유착형 자사주 마법’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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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최대주주 등극’ 현대차그룹의 ‘정경유착형 자사주 마법’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5.0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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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성 심사’ 통과하면 3대 이통사 모두 재벌 소유… ‘러시아 철수’ 현대차에 크나큰 보상 될 듯
국민연금이 연출한 정의선 주연 ‘자사주 마법’.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국민연금이 연출한 정의선 주연 ‘자사주 마법’.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자사주’란 주식회사가 자기 발행주식을 취득하고 보유하는 주식을 말한다. 주식회사는 자본금을 통해 회사 채권자에 최소한 담보를 제공하며, 자본금은 회사 신용의 기초이므로 상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한다. 상법은 자기 발행주식 취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데, <자본시장법>은 유통 주식 수 축소를 통한 주가 안정 효과 도모를 위해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돈 가운데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자사주 취득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자사주 보유분의 의결권은 제한한다. 그러나 주주 이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허용한 자사주는 불평등한 부의 재배분에 지배주주들이 집중적으로 악용하며 커다란 물의를 빚고 있다.

이러한 자사주 악용 사례를 자본시장에서는 ‘자사주 마법’이라고 부른다. 통상 자사주의 마법은 ‘인적 분할’이라는 기업 분할 과정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인적 분할은 계획한 분리 비율에 따라 기존 기업을 존속법인과 신설 법인으로 분리하는데, 이때 신설 법인의 발행주식을 기존법인 주주의 지분율에 비례하여 배정한다. 여기까지 기존법인의 주주가치는 존속법인과 신설 법인 주주가치 합과 같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단순 인적 분할에서는 지배주주와 소액 주주 사이에 유불리가 없다. 그러나 여기에 자사주가 끼어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통상 존속법인에 기존법인이 보유했던 자사주를 남겨두는데, 이 자사주 지분율만큼 신설 법인의 발행주식을 배정하고 존속법인이 신설 법인 지분을 보유하면 결국 존속법인의 지배주주는 신설 법인의 지배력이 상승한다. 또한 배정받은 신설 법인 주식을 존속법인 유상 증자에 현물 출자하면 지배주주는 존속법인의 지배력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자사주 매입 → 인적 분할 → 존속법인 유상증자(현물 출자)라는 과정에서 자사주는 지배주주(주로 재벌 총수)에 돈 안 들이고 지분율과 주식 가치를 늘리는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자료 1. /출처=KCMI ‘자본시장포커스’ 2022-16호
자료 1. /출처=KCMI ‘자본시장포커스’ 2022-16호

자사주 악용 사례가 범람하며 사회 문제가 되자 2022년 자본시장연구원(KCMI)은 ‘<자사주 마법과 자사주의 본질>이라는 실태 보고서를 내놓았다. 2000년 이후 2021년까지 상장법인 인적 분할 총 193건 가운데 48%가 자사주를 활용해 지배구조를 강화한 것으로 KCMI는 분석했다. 또한 KCMI 분석 결과, 기업 분할 전 34%였던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기업 분할 후에는 존속법인 49%, 신설 법인 45%로 증가했다. 또 시가총액 비중은 비(非) 지배주주가 기업 분할 전 57%에서 기업 분할 후 51%로 축소되며, 자사주 마법을 통해 일반 주주의 부가 재벌 총수에 재분배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 2. /출처=금융감독원 DART
자료 2. /출처=금융감독원 DART

그러나 최근 새로운 유형인 정경유착형 자사주 마법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바로 현대자동차그룹이 2022년 9월 KT와 자사주 교환을 했는데, KT의 1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갑자기 지분을 줄이면서 현대차그룹이 KT 최대 주주로 등극한 것이다. 이때 KT와 현대차그룹은 7500억원 규모의 지분을 교환했으며, 현대차 4.69%와 현대모비스 3.1% 등 모두 7.79%의 KT 지분을 취득했다. 그런데 최근 국민연금이 KT 지분을 매각하며 지분율을 8.53%에서 7.51%로 (마치 의도를 노출하고 싶은 것처럼) 축소하면서 현대차그룹이 자동으로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아직 현대차그룹은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기간통신사업자 KT의 최대 주주가 되기 위해 공익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일부 언론은 현대차그룹이 최대 주주가 된 것은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일시적 우발사건이며, 현대차그룹이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KT 지분을 처분할 것으로 추측하였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1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공익성 심사를 신청했다. 승인이 나면 SKT, LG유플러스에 이어 한국 3대 이동통신사는 모두 재벌 지배로 들어간다. 현 정부가 역사상 가장 친(親)대기업 정부인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바로 정경유착형 자사주 마법이 출현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인적 분할에 의한 자사주 마법 시도를 계획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를 존속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한 후 사업 회사를 정의선 회장이 23.29% 지분을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고, 이 합병회사 지분을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과 맞교환하려 했다. 이른바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순환출자 구조를 단숨에 끊으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당시 주주들 반대로 무산됐다. 만일 현대차그룹의 계획대로 구현됐다면 인적 분할과 자사주 마법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쉽게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그룹은 과거 1차 ’지배구조 조정을 위한 자사주 마법‘에 실패했지만, 2024년 들어 정치적 방법으로 자사주 마법을 완성한 셈이다.

자료 3. /출처=관련 기사 재구성
자료 3. /출처=관련 기사 재구성

현대차그룹은 2009년 공동마케팅 제휴부터 시작해 KT와의 사업 관계 강화에 오랫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공을 들여왔다. 두 회사는 초기에 마케팅 중심으로 협업을 했으나, 2021년부터는 자본거래를 동반한 협업을 시작했다. 2022년 자사주 맞교환은 자동차를 비롯한 이동 수단의 전동화, 자율주행화가 진행되면서 이동 통신의 ’커넥티비티‘(connectivity) 역량이 핵심 기술로 등장한 시점이어서 현대차그룹에 의미가 컸다. 특히 현대차가 추진 중인 도심항공교통(UAM) 등에서 유일한 위성 사업자, KT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이 필요했다는 평가다. KT도 이동 통신 기술 및 장비 공급과 함께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산업 성장에 ‘밀리의서재’, ‘지니뮤직’ 등 콘텐츠 공급업자로 지위를 얻을 수 있어 이익이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자료 4. /출처=네이버 증권
자료 4. /출처=네이버 증권

그러나 자본거래가 따라갈 때는 사업제휴만 할 때와는 달리 이해관계 변화가 추가된다. 공교로운 것은 2022년 자사주 맞교환을 전후해 최근 검찰 수사를 받는 양사 사이의 ‘보은성 투자’ 맞교환이 있었고, 지금까지도 중대한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상황이다. KT가 가진 현대모비스(1.46%)와 현대차(1.04%) 지분은 절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주주총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캐스팅 보트로 작용할 수 있다. 즉,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 지배주주 우호 지분율은 31.68%에 불과하므로 대표이사 해임과 같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막기 위한 지분율이 33.4%라는 것을 고려하면 KT의 현대모비스 보유 지분은 그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아울러 의결권이 제한된 현대모비스 자사주를 KT와 교환해 우호적 의결권 지분을 생성한 것이어서 이 또한 마술이다. 특히 순환 출자 구조에 의존해 단 0.32% 지분(정몽구 지분은 7.24%)으로 현대차그룹을 지배하는 정의선 회장에게 KT 우호 지분 유지는 더욱 중요할 것이다. 물론 2022년 당시 구현모 KT 대표도 경영권 확보를 위한 우호 지분이 필요해 현대차는 물론 신한은행 등과도 주식 교환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차그룹은 여러 이유로 전략적 사업제휴나 지분 동맹으로서 KT와 관계 유지가 중요한데, 때마침 국민연금이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이 지분을 1% 줄였다. 현재 KT는 준법, 감사, 법무 등 주요 사정 라인에 연이은 정치권과 검찰 출신 영입으로 정부 입김이 강한 만큼 LG그룹 출신 김영섭 대표가 동력을 읽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이 최대 주주로 승인을 받으면 친 대기업 정부의 지지를 배경으로 KT의 자원을 적극 활용할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러시아 자동차 사업 철수로 1조원대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현대자차그룹에 이번 정경유착형 자사주 마법은 놀라운 보상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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