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약탈적 게임의 몰락’ 몰랐을까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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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약탈적 게임의 몰락’ 몰랐을까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5.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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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W형 MMORPG 이탈 가속, 신용등급 전망 ‘부정척’ 하향… 박병무 영입에 주가마저 ‘냉랭’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MMORPG는 ‘다수 게이머가 참석하는 온라인 역할 놀이’(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의 약자다. 대략 50대 나이 이상의 사람은 당연히 이 용어가 생소하다. MMORPG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브랜드가 바로 ‘리니지’(lineage)인데, 엔씨소프트는 1998년 만화 원작을 게임으로 개발·발표하면서 속칭 ‘대박’이 났다. 리니지는 관련 법이 제정될 만큼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단순한 아이들 놀이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몇 가지 특별한 이유를 갖는다.

/출처=엔씨소프트
/출처=엔씨소프트

리니지가 등장하기 직전인 1997년 12월은 한국 경제에 ‘외환 위기’가 닥친 불운한 시점이다. 당시 재계 순위 30대 재벌 가운데 11개 기업이 10년 안에 사라졌고, 생존 기업은 단 12개에 불과 할 만큼 우리 경제가 흔들렸다. 재벌 기업이 뿌리째 흔들리니 중소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금융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셀 수 없는 소득원이 사라졌으니, 국민의 삶도 극도로 핍박을 받았다. 이러한 어두운 사회 경제 환경 속에서 리니지는 태어났다. 즉 ‘한강의 기적’으로 내일의 걱정조차 없이 살던 국민이 실직과 파산 등 집단 트라우마를 겪던 무렵, 리니지는 독특한 탐욕 모델을 가지고 나타나 젊은이를 유혹했다. 그들은 리니지를 통해 현실 불가능의 강력한 권력을 가진 부자가 되고, 분노를 폭력적으로 폭발시키는 현실도피 욕망을 대리 만족했다.

자료 1. /출처=엔씨소프트
자료 1. /출처=엔씨소프트

리니지는 돈을 내면 강력한 게임 아이템을 사서 더욱 강해지는 페이투윈(Pay to Win; P2W) 시스템과 함께 큰 인기를 끌자, 과도한 중독성으로 ‘리니지 폐인’을 양산하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다. 팍팍한 현실을 피해 게임 속 강자가 되기 위해 게임 속 돈, 아덴을 벌기 위한 음성·조직적 경제 활동도 등장했다. 어쩌면 리니지는 이미 20여년 전에 가상 현실과 가상 화폐를 현실에서 구현했고, 이에 대한민국 청년은 세계 최초로 가상 세계의 집단 피폭자였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는 생소한 ‘게임 속 세계’에서 게이머들에게 벌어진 일이었기에 심각성을 외면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엔씨소프트는 ‘대량 집단 약탈’을 수익모델로 급속한 성장세를 보였다. 현재 리니지 후속작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으며, 최초 출시한 리니지 게임도 26년째 서비스를 이어오고 있다. 초기 10, 20대 이용자가 지금은 30대 후반에서 50대 나이가 됐을 것인데, 이들이 아직 약육강식의 게임 속에 있을지 궁금하다.

자료 2. /출처=엔씨소프트, 네이버 증권
자료 2. /출처=엔씨소프트, 네이버 증권

엔씨소프트가 공시한 투자자 홍보(IR) 자료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2016년까지 리니지 등 PC 기반 게임 매출로 영업수익 급성장을 달성했다. 이후 엔씨소프트는 모바일 게임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한 후 2022년까지 코로나19 이동 제한 영향으로 최고 성적을 기록했으나, 지난해에는 실적이 급전직하 반토막 나고 말았다. 투자자 평가를 반영해 실적에 선행하는 주가는 이미 2021년 정점을 지나 지난 주말 최고가 대비 약 6분의 1로, 82.85% 하락했다.

자료 3. /출처=한국신용평가
자료 3. /출처=한국신용평가

이 영향으로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지난달 엔씨소프트 무보증사채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현재 AA인 신용 평가 등급이 앞으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즉, 무보증회사채 발행기업의 채무 상황 불이행 위험이 커졌으므로, 해당 기업에 돈을 빌려줄 곳은 유의하라는 뜻이다. 기업에 잠재한 위험이 커져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기업의 차입 금리가 높아진다. 지난 3일 한신평 공시 기준 3년 만기 무보증회사채가 ‘AA’에서 ‘AA-’로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다면 금리는 0.06%포인트 상승한다.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평가가격이 하락해 발행자는 조달 비용이 상승하고, 회사채 보유자는 평가 손실이 발생한다. 물론 신규 회사채 구매자는 당장 매입을 보류할 것이어서 기업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하는 신용경색이 엔씨소프트에 발생할 우려가 커진다.

한신평은 2022년 1000억원 수준으로 하락한 엔씨소프트 영업이익에 주목했다. 향후 영업이익이 5000억원 이상으로 회복하지 않으면 엔씨소프트의 부정적 등급 전망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등급이 하향 조정될 수 있음을 보고서에 명시했다. 아울러 엔씨소프트 영업이익이 2026년까지 2000억원 근방에서 머무를 것이라는 구체적 전망도 같이 내놓고 있어, 사실상 엔씨소프트 채권자에게 중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자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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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엔씨소프트가 하루아침에 위기를 맞은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한신평을 비롯한 시장 분석 전문가들은 게임 트렌드의 변화를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즉, MMORPG처럼 능동·체험형 게임보다 낮은 몰입도를 요구하는, 덜 심각한 수동형 게임인 캐주얼, 방치형 RPG, 서브 컬처 게임 등으로 유저들의 선호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캐주얼 게임은 간단한 조작으로 즐기는 게임의 총칭이며, 방치형 게임은 특별한 조작이 없이 자동으로 캐릭터가 성장하거나 변화하는 게임, 서브 컬처 게임은 일본 애니메이션풍 그래픽 디자인이 적용된 게임을 말한다. 다시 말해 리니지와 같은 게임의 전성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한 P2W형 MMORPG는 가벼운 게임을 선호하는 라이트 유저들의 진입이 어렵고, 게임사 외형 성장에 기여도가 컸던 미드·하드코어 유저도 획일화된 리지니류 P2W 게임에 점점 피로감을 느껴 이탈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자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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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엔씨소프트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은 엔씨소프트 자신이라는 추정이다. 2021년 1월 리니지M에서 약탈적 P2W 모델에 대한 사회적 성토가 커지자, 엔씨소프트는 2021년 11월 예정인 리니지W는 다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리니지W 게임 발표 후 실제 내용은 이전 약탈적 P2W 시스템이 이름만 바꾼 것으로 (어떤 것은 더 약탈적으로) 시장이 확인하며, 엔씨소프트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 같은 엔씨소프트에 대한 신뢰 상실은 지난해 말 신작 게임 ‘쓰론앤리버티’(TL) 출시에도 주가 하락을 가져왔다. 게임 유저 대다수는 과거 엔씨소프트의 탐욕적 경영 행태로 미루어 해당 신작 게임에도 언젠가 약탈적 P2W 시스템이 도입될 것이라고 믿는 분위기로 알려진다. 10년 동안 약 1000억원의 개발비를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진 이 대작 게임은 기대와는 달리 엔씨소프트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여차하면 경영에 짐으로 남을 걱정마저 키우는 상황이다. 이러한 모든 원인은 유저와 투자자의 불신이 쌓이며 엔씨소프트 성장 동력이었던 P2W 시스템이 이제 ‘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아마 20여년 넘도록 많은 돈을 벌어준 리니지의 수익모델을 버리고 김택진 대표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김 대표는 약탈자라는 불명예를 얻고도 P2W 수익모델을 캐시카우로 수성해 왔다. 이렇게 혁신을 거부하고 현실에 안주하다가 경영환경에 부적응한 기업으로 추락하는 것을 오래전부터 경영학에서는 경계했다. 대표적 경영 고전으로 2000년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Who moved my cheese?), 2006년 <빙산이 녹고 있다>(Our Iceberg is Melting) 등은 외환 위기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는 한국 경영계에 소개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는데, 이즈음 고 이건희 회장은 누가 봐도 잘나가던 삼성의 위기론을 주장하며 혁신을 추진했다. 엔씨소프트와는 대조되는 너무도 유명한 혁신 기업가 사례다.

김택진 대표는 이런 경영학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게임 산업 트렌드를 읽고 대응하는 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듯하다. 오히려 그는 리니지의 약탈적 P2W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음에도, 경영 개선보다는 엉뚱하게 야구단을 통한 이미지 홍보에 진심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김택진 대표는 72억46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전년 대비 회사 영업이익은 4분의 1, 당기순이익은 반토막 났는데 여전히 업계 최고 보수 수준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3월 김&장 법률사무소 출신 M&A 전문가인 박병무 VG파트너스 대표를 공동대표로 선임했다. 그의 경력으로 보아 엔씨소프트의 약탈적 비즈니스 모델 개선을 통한 경쟁력 강화보다는 1조4000억원의 유동성을 활용한 경영 다각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박병무 공동대표의 영입에도 엔씨소프트에 대한 증시의 평가는 냉랭한 상태로 여전히 주가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또한 한신평의 2026년까지 영업이익 프로젝션이 부정적인 것을 봐도 박 대표 영입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NC다이노스에 이어 다시 한번 본업 역량 강화보다는 김택진 대표의 새로운 취미 생활에 엔씨소프트의 마지막 기회가 소진되지 않을지 투자자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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