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방시혁과 어도어 민희진의 ‘뉴진스판 초한지’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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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방시혁과 어도어 민희진의 ‘뉴진스판 초한지’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4.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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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경제·금융 지식으로 무장한 자본 논리가 엔터 산업을 어떻게 변환하는가 보여준 단면
어도어 민희진과 하이브 방시혁.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어도어 민희진과 하이브 방시혁.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인 기원전 210년, 진시황이 병사하자 중국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 혼란을 3년 만에 잠재우고 천하를 평정한 이가 그 유명한 초나라의 패왕 항우다. 이후 항우에게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난 유방은 명장 한신을 앞세워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며 한나라의 고조가 된다. 이 과정을 그린 것이 <초한지>이며 이 스토리는 ‘역사는 반복한다’라는 명제 아래 이후에도 수많은 사건을 해석하는데 사람들이 인용하고는 한다.

초한 대전의 여러 이야기 가운데 유방의 명장, 한신에 관한 대목은 ‘토사구팽’(兎死拘烹)이라는 고사성어와 함께 주목받는다. 원래 항우의 장수였던 한신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항우를 버리고 적인 유방 진영으로 전향했다. 탁월한 능력이 있었으나 고집 세고 대쪽 같은 성격으로 한신은 유방이 위기에 처해 SOS를 했음에도 위, 조, 제 등 경쟁국을 정벌하라는 유방의 명령을 이행한다는 명분으로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신은 경쟁국을 모두 정벌한 후 마지막에 초나라 항우를 쳐서 기원전 202년 유방의 천하통일 대업을 완성하도록 큰 공을 세웠다. 큰 공에도 유방은 6년 후인 196년 한신에 누명을 씌워 참살했다. 바로 토사구팽이다. 최근 엔터테인먼트(이하 엔터) 업계에서 한신의 불꽃 같은 생을 소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엔터 업계를 뜨겁게 달구는 뉴스는 바로 ‘민희진’과 ‘방시혁’의 충돌이다. 방시혁은 세계적 보이밴드 BTS(방탄소년단)로 유명한 하이브의 총수(이사회 의장)이며, 민희진은 하이브 산하 계열사 어도어의 대표다. 지금 민 대표가 한신의 인생 역정과 닮은 처지에 처했다. 민희진은 과거 하이브 경쟁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소녀시대, 샤이니, 엑소 등의 콘셉트와 브랜드를 맡아 유명해졌고, 2019년 하이브에 합류했으며, 2021년 하이브 산하에서 어도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하이브는 2022년 6월 BTS의 군대 입대로 인한 활동 중단에 대비해 이른바 ‘멀티레이블’이라는 전략을 세워 다양한 남녀 아티스트를 육성했다. 이것은 자본시장에서 높은 위험의 벤처 투자를 위해 포트폴리오를 세분화하고 위험을 미세 분산하는 투자 기법과 닮았다. 하이브는 엔터 회사에서 탈피하여 철저하게 전략적 투자를 진두지휘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경제적 효율성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도를 했다. 이때부터 방시혁은 이미 엔터테이너에서 기업가(또는 금융가)로 철저히 변신한 것으로 보인다.

자료 1. /출처=네이버 증권
자료 1. /출처=네이버 증권

2013년 활동을 시작한 BTS는 2018년 빌보드200 1위, 2019년 미국 스타디움 콘서트 입성 등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어 2020년 빌보드 HOT100 1위를 기록했고, 2022년 6월 군 입대로 활동을 중단한다. 이에 따라 2020년 10월 상장해 1년여 만인 2021년 11월 40만원 넘는 최고가를 기록한 하이브 주가는 다시 1년 후 최저가 10만원 대로 4분의 1토막까지 급락했다. BTS 활동에 의존한 하이브의 수익구조가 원인이었다.

자료 2. /출처=하나증권
자료 2. /출처=하나증권

하이브가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닥쳐서 대응한 것이 멀티레이블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이브가 지배구조 보고서에 공시하는 경영진을 보면 법률, 경제, 금융 등 전략 경영이 가능한 인사들이 주요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러한 배경으로 방시혁 의장은 아티스트 산업을 벤처산업 경영과 접목하여 철저히 자본화(capitalization)하는 경영 전략을 추진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영진이 하이브의 미션 ‘We believe in music’을 구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방시혁 의장의 멀티레이블 전략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이브 수익원인 아티스트의 다양한 개발과 활동으로 BTS의 경영실적 공백은 메워질 수 있었다. 하이브 주가는 아직 이전의 최고 수준에는 상당히 미달하지만, 최저점에서 반등해 20만원 대에서 등락하고 있다.

자료 3.
자료 3.

하이브의 멀티레이블 전략에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단기간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민희진 대표가 모든 것을 기획한 걸그룹인 ‘뉴진스’가 이전 K팝 아티스트 성적을 넘어서는 급성장을 보인 것이다. 뉴진스는 빌보드200 1위 달성에 약 1년이 걸리는 등 블랙핑크와 BTS 등 이전 대표적 K팝 아티스트를 압도했으며, 이러한 덕분에 어도어의 매출액은 2022년 190억원에서 지난해 1100억원으로 500% 이상 급증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적자에서 34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어도어는 출범 2년 만에 흑자전환은 물론 하이브 전체 영업이익의 약 14%를 점유하는 기염을 토했고, 뉴진스의 성장세는 앞으로 더욱 가파를 것이라는 전문가 전망이 우세하다. 이 모든 성과의 한가운데 민희진 대표가 있다.

자료 4.
자료 4.

하나증권은 지난 16일 <뉴진스로 본 멀티레이블의 가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이브 국내 레이블의 2025~2026년 예상 매출액은 3조3000억원, 기업 가치는 12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는데, 어도어는 국내 매출액의 9%, 기업 가치의 32%를 차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뉴진스의 폭발적 성과가 민희진 대표에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 닥쳤다. 방시혁 의장과 민희진 대표가 충돌 끝에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어도어 민희진.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어도어 민희진.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민희진 대표는 방시혁 의장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뉴진스를 베껴 다른 레이블에 활용하는 비윤리적 경영을 했고, 반대로 하이브는 감사를 벌여 민 대표가 어도어 경영권 탈취를 기획했다고 서로 폭로전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방시혁 의장이 민희진 대표를 주주 간 계약을 통해 풋옵션 대가로 다소 가혹하게 묶었다는 사실과 민 대표 해임은 물론 배임 고발까지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주장하는 사실관계의 시시비비는 가려봐야겠지만, 전체적 형세는 방시혁 의장이 중요한 그룹 재원인 민희진을 영원히 하이브에 묶어 두려고 했고, 아울러 딴마음 먹지 않는지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으며, 민 대표는 성장하는 자기 가치를 인지하자 하이브의 가혹한 속박을 벗어나고자 저항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이브 방시혁.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하이브 방시혁.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한신은 천하통일 추진 과정에서 항우로부터 천하를 항우-유방-한신 삼등분하여 통치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책사 괴철이 이를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음에도 거부했다. 그러나 한신은 유방의 천하통일 대업을 성사한 후 6년 만에 주군 유방으로부터 참살당했고, 천하는 유방의 가계로 채워졌다. 이에 비해 민희진 대표는 천하통일의 낌새를 보자마자 자기를 영원히 수하로 묶어두고, 비윤리적 경영 행위를 저지르는 주군의 탐욕을 눈치챈 후(분명 누구의 자문이 있었겠지만) 스스로 천하를 나누겠다고 섣불리 시도하다가 주군에 발각된 꼴이어서 한신보다 볼썽사납고 어려운 처지다. 이번 한국 엔터 판 초한지는 법과 경제·금융 지식으로 무장한 자본 논리가 어떻게 엔터 산업을 질적으로 변환하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을 노출하는 것 같아 매우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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