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가 보여준 현대차와 삼성의 그룹 승계전략 차이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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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가 보여준 현대차와 삼성의 그룹 승계전략 차이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3.25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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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좌불수당’(坐不垂堂). 사기의 <원앙조조열전>이 출전으로 기와가 떨어져 머리를 다칠 위험이 있으므로 부잣집 자손은 마루 끝에 앉지 않는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그러나 한국 재벌의 3세들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험난한 좌수당(坐垂堂)의 길을 선택하고는 했다. 대표적인 부잣집 도령이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이다. 지난 2월 삼성물산 관련 재판 1심에서 이 회장의 무죄가 확정되면서 2021년 4월 22일 경영권 불법 승계 관련 1차 공판이 열린 뒤 1252일 만에 이 회장은 일단 사법 리스크를 벗었다는 언론의 호의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즉각 항소에 나섰으므로 사법 리스크가 완전 진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삼성물산 관련 재판의 본질은 재벌 3세로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한 불법성 판단인데, 1994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매입부터 시작된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30년째 진행 중이다. 고비마다 잘 넘어왔다고 하지만, 사실 삼성의 경영권 승계 전략팀에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다. 이 회장은 30년 동안 마루 끝에서 떨어지는 기왓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고, 그 사이 주변의 법률가와 전략가는 무리한 승계 전략을 권하며 수십 년간 호가호위하고 고복(鼓腹)했기 때문이다.

자료 1. /출처=각사 사업보고서
자료 1. /출처=각사 사업보고서

마루 끝에서 온갖 고초를 겪는 이재용 회장을 보며, 기업집단 서열 3위 현대자동차그룹의 총수, 정의선 회장은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의 지배구조 개선을 고민했을까? 자료 1에서 보는 것처럼 정 회장의 지배구조 취약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요약하자면 현대차그룹은 기업집단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1순위 해소 과제인 순환 출자 구조로 돼 있다. 이러한 순환 출자 구조에서 정 회장은 사실상 전문 경영인이나 다름없다. 그룹 지배력 대부분을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와 현대자동차 지분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의선 회장의 지배구조 불안 이슈는 오랫동안 언론의 단골 메뉴였다.

자료 2. /출처=현대모비스 사업보고서
자료 2. /출처=현대모비스 사업보고서

현 지배구조에서 언론과 세간이 추정하는 가장 확률이 높은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장악 시나리오는 지주회사 격인 현대모비스의 지분 가치를 낮추고, 현대글로비스 등 정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다. 에버랜드 지분을 모태로 했던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전략 관점에서 볼 때 정 회장도 현대글로비스를 이용하여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했으므로, 앞으로도 편법적 승계 과정을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했었기 때문이다. 최근 공시한 지난해 현대모비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듈 및 부품 제조 사업 부문이 적자 전환했는데, 이를 두고도 일부 언론은 말이 많다. 현대모비스 모듈 부문 영업 적자는 현대자동차 매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업구조로 완성차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 원인인데, 이를 두고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리기 위한 정 회장의 꼼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다. 수출 제품과 국내 제품 간의 이중 가격 정책은 경제학의 일반적 상식이며, 지역별 소득과 수요의 격차에 따라 가격을 차별화하는 것이 기업의 합리적 의사 결정이다. 또한 지난해 현대모비스의 전체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소폭이나마 늘었다.

자료 3. /출처=금융감독원
자료 3. /출처=금융감독원

이런 가운데 최근 현대모비스의 공시는 정 회장의 지배구조 전략에 관한 기존 언론 주장에 의문을 던지기 충분하다. 지난달 16일 현대모비스는 국내 수소연료전지 사업의 인력과 자산, 설비를 현대자동차에 양도하기로 했다. 양도가액은 2178억원이며, 양도일은 5월 31일이다. 현재 수소차 사업은 성공 확률을 가늠하기 어려운 적자 사업이다. 이번 조치로 현대모비스는 제조 손실, 상각비, 인건비 모두 현대자동차에 이관해 비용 부담을 크게 덜 예정이다. 메리츠증권은 수소 사업 이관 관련 보고서에서 현대모비스가 수소 사업 이관으로 연 2000억원 규모의 직간접 비용을 줄이고, 향후 3년 평균 3% 이익률을 개선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료 4. /출처=현대자동차
자료 4. /출처=현대자동차

이러한 수소 사업 이관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2020년 밸류데이(Value day) 리포트에서 2025년 전략을 발표했었다. ‘스마트모빌리티솔루션 프로바이더’가 되기 위한 3대 전략 사업으로 스마트모빌리티디바이스, 스마트모빌리티서비스와 함께 H2솔루션을 선정하고 추진해 왔는데, 이번 수소 사업 이관은 그 과정으로 이해된다. 정 회장은 그룹의 장기 파이프라인으로 수소 시장 선점에 일찌감치 큰 공을 들여왔다. 이번 조치 이후 현대모비스 주가가 상승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메리츠증권은 현대모비스의 적정 주가를 상향하기까지 했다. 반면 1월 이후 상승한 현대차 주가는 적자 사업 인수의 불확실성 증가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기존의 관점에서 볼 때 수소 사업 이관은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에 불리한 조치로 작용한 것이다.

자료 5. /출처=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
자료 5. /출처=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

여러 가지 정황을 미뤄보면 정 회장이 삼성그룹과는 달리 좌불수당 전략을 선택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정 회장의 현대차 지분은 2.65%이고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은 5.39%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공교롭게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을 상속할 때 정의선 회장 지분이 역 50%의 상속세율에 육박하므로) 현대차의 가치가 커져 정몽구 지분에 대한 상속세가 증가해도 정의선 보유 지분 가치로 충분하게 감당할 수 있다. 또한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7%는 정의선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가치로도 상속세를 충당할 수 있으므로, 사실상 정 회장이 확보할 수 있는 현대모비스 미래 지분은 어림잡아 12%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여기에 정의선 회장의 현대오토에버와 보스턴다이나믹스(Boston Dynamics, Inc) 지분 가치까지 현대모비스 미래 지분율 계산에 포함하면, 정 회장은 미래 현대모비스 지분을 15% 이상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 회장은 보스턴다이나믹스 지분 20%를 개인 소유하고 있는데, 같은 지분율을 보유한 현대모비스의 202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순자산가치가 5152억원으로 2022년과 비교해 1.1배 증가한 것으로 확인된다. 보스턴다이나믹스 투자 지분은 (팔겠다 마음먹으면) 향후 정 회장 지배구조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마디로 정 회장은 마루 끝에 앉는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이미 그룹의 지배구조를 실질적으로 장악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상황은 삼성그룹이 승계 전략 추진으로 평판 훼손은 물론 인적, 물적, 시간적 낭비를 한 것을 고려하면 현대차그룹 미래에 너무나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정 회장의 행보는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주가에는 모두 긍정적일 것이다. 더 이상 정의선 회장 지배구조를 놓고 왈가불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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