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에 “추가 공사비 없다” 소송 제기, 정부 개입 원만한 해결 유도 힘써야
부동산 시장에서 공사비 증액을 놓고 발주처와 시공사가 갈등을 겪는 사업장들이 지난해부터 크게 늘었습니다. 대부분 2019년 말부터 2022년에 걸쳐 입찰(시공) 계약을 한 사업장들인데,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며 원자잿값과 인건비 등 물가가 전례 없이 폭등한 탓입니다.
한국건설기술원이 집계하는 건설공사비지수를 보면 2020년 말 121.80에서 지난해 말 153.26으로 3년 새 약 25%나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원자잿값 추이를 나타내는 건설용중간재물가지수는 106.4에서 144.2로 무려 36%나 치솟았습니다. 이에 시공계약 이후 급등한 원자잿값으로 적자를 무릅쓰고 공사를 마친 건설사들은 공사비 보전을 요구했는데, 발주처가 계약 내용을 들어 수용 불가를 밝히자 분쟁으로 이어진 것이죠.
이런 과정에서 건설사들의 공적이 된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KT인데 분쟁 중인 사업장의 규모가 크고 대형 건설사들과 대립하고 있기에 더욱 눈에 띕니다. 마치 KT가 발주처들의 입장을 고수해 분쟁을 마다하지 않는 선봉장이 된 것처럼 보입니다.
최근에는 KT 판교사옥 건설과 관련해 이미 공사비를 모두 지급해 그 의무 이행을 완료했다며 쌍용건설 측의 추가 비용 요구를 거절하는 소송까지 제기했습니다. 공사비 추가 지급 의무가 없다는 ‘채무부존재’를 법원으로부터 확인받으려는 취지입니다.
KT는 판교사옥 건설 과정에서 쌍용건설 요청에 따라 공사비를 조기 지급했고,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45억5000만원) 요청을 수용해 해당 공사비도 지급했고, 공기 연장(100일) 요청까지 받아들여 공사비 정산까지 모두 완료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쌍용건설은 2020년 공사 도급계약 체결 시 공사비 967억원에 합의했지만, 같은 해 코로나 사태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 1138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며 171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이 없다는 내용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당사자 일방에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 계약조건에 포함된 물가변동 조항을 준수해 KT가 공사비 상승분을 지급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 같은 사유로 롯데건설은 지난해 분양한 ‘구의역 롯데 이스트폴’이 포함된 ‘자양1재정비촉진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에서 1000억원대에 달하는 증액 공사비를 요구했지만, ‘증액 의무가 없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양1구역 정비사업은 KT가 보유하고 있던 옛 전화국 부지 일대 50만5178㎡를 재개발하는 사업으로 사업비 규모만 1조원이 넘습니다. 지금까지 KT가 진행한 사업 중 규모가 가장 큰 랜드마크급 사업장으로, 공동주택 1063세대(임대아파트, 오피스텔 포함) 및 호텔(150실), 판매시설과 함께 광진구청사, 광진구의회, 광진구보건소 등이 들어섭니다.
이밖에 한신공영도 KT와 계약을 맺고 부산 초량 오피스텔을 시공했으나, 141억원 가량의 추가 공사비가 발생했다는 입장입니다. 또 현대건설도 준공을 앞둔 광화문 KT사옥 리모델링 공사 과정에서 300억원 가량의 추가 공사비가 투입됐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앞서 언급한 건설사들이 요구하는 증액 비용을 모두 합산하면 612억원에 달합니다. KT 입장에서는 상당한 금액으로, 건설사들의 개별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입니다.
KT는 광복 후 1948년 만들어진 체신부 전화국이 모태입니다. 이후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를 거쳐 2011년 민영화하면서 KT로 출범했습니다. 정부 조직에서 공기업을 거쳐 민영화한 셈입니다. 때문에 대주주가 없는 국민기업으로 정부의 영향력도 큽니다. 윤석열정부 들어서는 KT의 대표이사 인선에 목소리를 내면서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면서 오히려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결국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또 최근 국민연금이 보유지분을 줄이면서 현대차그룹이 최대주주로 올라섰지만,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통신업체로서 KT의 공익성이 강조되고 있는 셈이죠.
“공사비 증액은 없다”며 쌍용건설과 법정 다툼에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KT는 추가 공사비 문제를 시공사들과의 협상으로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업계에서 기대했던 정부의 중재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듯합니다. 소송을 당한 쌍용건설도 “KT가 처음부터 협상의지가 없었는데도 업계와 언론에는 상생협력한다는 입장만 반복했다”며 황당해 했습니다.
KT가 자회사 KT에스테이트를 내세워 사업을 벌이는 사업장 대부분은 과거 전화국 부지이거나, 본사나 지점 사옥이 있던 자리입니다. 조금 비약적이긴 하지만 국민의 세금을 들여 확보한 전화국 부지를 가지고 직접 사업을 벌여 개발 이익을 얻는 셈입니다.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은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문제 등으로 풍전등화의 상황입니다. 잘못 대응하면 국가 경제까지 휘청일 수 있는 문제여서 금융당국도 대책을 내놓고 진화에 안간힘입니다.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이번 추가 공사비 문제는 예측하기 어려운 전염병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때문입니다. KT의 전향적인 태도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