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화’ 기간이라는데… 눈에 띄는 ‘방산업체 보고서’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상태바
‘대평화’ 기간이라는데… 눈에 띄는 ‘방산업체 보고서’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4.04.22 1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기원전 12세기 그리스와 트로이가 벌인 ‘트로이 전쟁’은 서양의 정신적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이야기와 서사가 있다. 특히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아이들에게까지 고대 지혜로 널리 알려졌고, 이 전쟁을 배경으로 호메로스라는 고대 그리스 시인이 저술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지금도 인문학의 경전과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까마득한 고대에 있었던 10여 년간의 전쟁이 고대 인문적 지혜를 재발견한 르네상스적 향기로 미화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필자는 2004년 개봉한 영화 <트로이>를 보고 고대 전쟁의 피비린내를 느꼈다. 명불허전 배우 브래드 피트가 그리스 전쟁영웅 아킬레우스로 활약한 영화에서 수많은 민초가 이름이 없는 병사로 아킬레우스, 헥토르, 아가멤논 등 전쟁영웅의 칼과 창에 베이고 찔리며 마차 바퀴에 깔려서 죽어간다. 이렇듯 전쟁은 아무리 서사가 훌륭해도 국민에는 재앙이다. 이러한 생각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영화가 재확인해 준다. 독일 반전 소설가 레마르크 원작으로 알려진 영화는 가장 최근 2022년 개봉작을 보면, 1차 대전 막바지 독일과 프랑스 양국이 휴전 협상에서 의미 없는 밀당을 지속하는 가운데 시시각각 목숨을 잃는 전장의 군인들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정치는 정의를 핑계로 국가 이익을 추구하지만 정작 그 수혜자인 국민의 목숨을 서슴없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본성이 있고, 그 대표적 현상 가운데 하나가 전쟁이다.

이 같은 전쟁의 속성에 현대적 의미를 추가하는 놀라운 증권회사의 보고서가 나왔다. 통상 증권사 보고서는 투자자에게 자기 회사를 거래 창구로 이용하도록 권유하는 수단이다. 증권사는 투자 수익이 있을 거라 예상하는 기업의 경영 성과를 추정하기 위한 경제, 산업 환경을 자기 시각에서 분석하고 예측한다. 그런데 하나증권의 최근 보고서는 방위 산업 전반을 분석하고 예측한 후 종목을 추천하면서 현대 전쟁의 특성을 새롭게 제시했다. 110쪽에 달하는 이 투자 권유 보고서는 1500년 이후 근·현대 전쟁을 분석하고, 거시경제와 과점 이론 등으로 방위 산업의 행태를 예측하는 ‘방위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경제적 시각을 제시했다.

자료 1.
자료 1.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100만명 이상 희생된 전쟁은 모두 8회로 ▲1618년 유럽 30년 전쟁(희생자 약 800만명) ▲1803년 나폴레옹 전쟁(약 700만명) ▲1914년 1차세계대전(약 1500만 명) ▲1917년 러시아 내전(약 800만명) ▲1927년 중국 국공내전(약 500만명) ▲1939년 2차 세계대전(약 7000만명)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약 150만명) ▲1996년 콩고 전쟁(약 500만명) 등이다. 각 전쟁 이름에 사망 숫자를 추가하니 그 참혹함이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많은 영화에서 미화하는 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는 남북한 인구를 합친 규모이니 너무 놀랍지 않은가. 한마디로 전쟁은 참혹한 것인데 역사학자 윌 듀랜트는 3500년 인류 역사 중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고작 270년에 불과했다고 한다. 특히 10만명당 전쟁 사망자 수가 200명을 넘는 대규모 전쟁 간격을 장주기로 정의할 때, 과거 500년 동안 장주기는 최대 185년, 최단 111년 이내였으며 2024년 현재는 1955년 베트남전 이후 69년째 장주기가 형성되고 있어 지금 인류는 ‘대평화’ 기간 어느 시점에 있다고 보고서는 평가한다.

자료 2.
자료 2.

그러나 대평화 기간이 지속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전쟁 에너지는 응축하고 있다’라는 분석이다. NATO, OECD 등 세계는 이념 진영화 속도를 높여 대립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중국-타이완 문제의 미국 개입, 인도-파키스탄 분쟁 등 세계 곳곳에 지정학적 갈등이 노골화하고 있다. 특히 CHIPS Act, IRA, CRMA, 광물 자원 수출 제한 정책 등으로 세계 공급망 갈등과 위험이 커지며 지정학적 위험과 함께 지경학적 위험도 큰 상황이다.

자료 3.
자료 3.

또한 보고서는 과거 전쟁 발발국이 전쟁 직전 경제성장률이 높았고, 성장을 통해 축적한 부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군비를 확충하고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해 극단적인 수단인 전쟁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현재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 속도는 이러한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국 경제성장과 타이완 침공 우려는 주목받기 충분하다.

자료 4.
자료 4.

이런 배경과 함께 전 세계 군비 증강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어 전쟁 우려가 커졌다. 글로벌 국방비의 40%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안에 서명하며 2024년 회계기 국방예산을 8860억달러라는 역대 최고치로 확정했다. 중국은 글로벌 국방비의 10%를 차지하는데, 향후 5년간 1조4000억달러를 국방예산으로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유럽도 NATO 참가국의 국방비 비중을 GDP 대비 2%로 맞출 계획이며, 우리나라도 지난해 12월 국방중기계획에 의해 5년간 약 349조원을 투입하고, 무기 도입 예산 비중을 증가할 계획이다. 전 세계 전쟁 직·간접 당사국들이 전쟁 준비에 돌입하고 있는 모양새다.

자료 5.
자료 5.

대평화 기간의 종식을 대비하는 전쟁 준비가 한창 진행되자 역시 득을 보는 것은 방산업체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시가총액이 급증하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도 마찬가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올해 초 이후 방산업체 3개사의 주가 상승세다. 연초 이후 주가 상승률(YTD)을 보면 한화그룹 방산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67.9%,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로템이 42.9%, 이어 LIG넥스원이 37.2%였다.

공교롭게 이들 3개 사는 재벌 3세가 CEO를 맡아 경영을 승계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현대로템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LIG넥스원은 구본상 LIG그룹 회장이 관여하고 있다.

자료 6.
자료 6.

특히 재벌 3세 방산업체 중 단연 두각을 보인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하나증권 보고서도 해당 기업을 이른바 ‘최우선 추천’(Top pick)으로 선정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전략 부문 대표이사를 맡아 주요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특히 그는 두산DST 인수에 성공한 후 회사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변경했고, 현재 한화그룹 방산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 부문 대표가 별도로 있으나 김동관 부회장이 받는 대표 보수가 30억원으로 사업 부문 대표보다 4배 이상 많은 것을 보면 실질 지배는 김동관 부회장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화그룹 총수(김승연, 한화 지분 보통주 22.7%, 우선주 6.4%)가 지배하고, 김동관 부회장(한화 지분 보통주 4.4%, 우선주 3.7%)이 대표로 있는 한화가 약 3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업가치 증가는 총수 일가 배당과 김동관 부회장 보수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증권의 <방위 경제학> 보고서는 세계 곳곳에 전운이 짙어지고 전쟁의 참상 속에 희생자 비명이 높아지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비롯한 재벌 3세 방위 산업의 이익과 주가는 정점에 이를 전망이니 투자자에 유망종목으로 추천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 전쟁 무기 생산 산업에 ‘방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마약’에 ‘캔디’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판매하는 것은 주로 전략·전술적 거점 타격은 물론 필수적으로 공격용 살상 무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들 기업의 평가를 전쟁 이슈와 상관성을 명확하게 하고 이에 따른 확실한 이벤트 추종(even-driven) 이익을 얻기 위해서 ‘방위’ 산업에서 ‘전쟁’ 산업으로 테마의 명칭을 바꿔줘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 전쟁은 거의 확실한 이윤을 보장하므로 새로 경영진으로 등장한 재벌 3세는 상속 자금 마련 등을 위해 전쟁 산업에 진심으로 달려들 동기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