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의 계곡’에서 길을 잃은 2차전지 테마주(하)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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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의 계곡’에서 길을 잃은 2차전지 테마주(하)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4.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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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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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테마주의 시세 부침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꼽자면 급등 이전의 바닥권 시세에서부터 제각각 실로 엄청난 주가 상승률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마치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기에 무수한 생명체들이 새롭게 등장하듯 2차전지 테마주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2차전지 테마주들은 시가총액이 굵직굵직한 특징들도 보여준다. 과거에 한국 증시를 장식했던 그 어떤 테마주들도 이만큼 짧은 기간에 이토록 대규모로 시가총액을 불리지는 못했다. 2차전지 테마주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50개사의 주가 흐름을 분석해 본 결과, 이들 가운데 주가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시점에 ‘시가총액 1조원’이라는 허들을 넘어서지 못한 종목은 단 하나도 없었다. 2차전지 테마주로 분류된 128개 종목 가운데 무려 50개 종목이 한때나마 시총 1조원을 뛰어넘었다는 얘기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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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정한 테마에 포함되는 다수의 종목군이 일정한 기간 광범위한 주가 상승을 기록한 경우는 과거에도 자주 있었다. 그러나 특정 테마에 묶인 종목군들의 시가총액이 단기간에 이번처럼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2차전지 테마주에 대한 투자 열풍이 거세게 불어닥쳤으며, 엄청난 시중 자금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2차전지 관련 산업으로 마구 몰려들었다는 방증이다.

​2차전지 테마주들 가운데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상위 20개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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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승률 상위 기업들만 살펴보더라도 2차전지 테마주들의 투기적 광풍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상승률 상위 20개사의 시가총액은 최저점일 때 불과 6조8404억원에 불과했지만, 최고점에 이르렀을 땐 무려 195조3102억원까지 폭증했다. 이들 종목에서만 시가총액이 188조원 이상 불어났던 셈이다.

이들 종목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종목은 금양이다. 시가총액이 한때 773억원에 불과했던 종목이 지금도 ‘2차전지 테마주 상위 20개사’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최저치 대비 상승률 기준으로도 에코프로의 상승률에 앞선다. 금양은 배터리 아저씨 덕분에 일반투자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회사이지만, 2차전지 테마주들에 대한 투자 열기가 얼마만큼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종목이기도 하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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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권 대비 경이적인 상승률 때문에 투자자들의 이목을 온통 집중시킨 종목은 금양과 에코프로였지만, 이들 두 종목 말고도 시가총액이 수십 배씩 폭증한 종목은 너무나 많다. 초전도체 테마주로 각광받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2차전지 테마주로 격상된 신성델타테크, 최저치 대비 79배 상승한 TCC스틸, 46배 상승한 코스모화학 등의 주가 흐름은 2차전지 테마주들에 대한 대중들의 비이성적인 탐욕과 광기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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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테마주들의 상승률이 역대급을 기록한 만큼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의 주가 하락세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2019년 1월 이후 최고치 대비 하락률 상위 20개사의 평균 하락률은 무려 57.0%에 이른다.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가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고평가 논란에 시달렸던 이유도 지나치게 가파른 주가 상승 때문이었다. 아래 표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대부분 종목이 고점 대비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하락률 상위 20개사의 시가총액은 제각각 최고치를 기록한 시점을 기준으로 합산하면 324조원을 넘어섰으나 지난 19일 기준으로 합산한 시가총액은 139조원 남짓이다. 불과 9개월 만에 185조원의 시가총액이 공중으로 사라진 셈이다. 물론 이들 종목의 주가 하락세가 반드시 2차전지 사업 부문의 부진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종목마다 2차전지 사업에 대한 비중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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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화할 때마다 늘 새롭고 매혹적인 사업들이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그 분야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높은 이윤율은 그것을 파괴할 수 있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가 급격한 조정을 받는 것도 늘 반복되어 온 익숙한 패턴 가운데 하나다. 2차전지 산업에 대한 과잉 기대와 주기적인 실망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희극 작품을 통해 사랑에 눈먼 청춘 남녀의 고뇌를 그려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최고의 훼방꾼은 큐피드(에로스)이다. 물론 큐피드는 인간의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존재다. 날개 달린 큐피드가 쏜 화살을 맞은 사람은 분별력을 잃고 맹목적으로 변한다. 지난해 여름에 뒤늦게 2차전지 테마주 열풍에 뛰어든 투자자들은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다음 대사를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사랑은 저급하고 천하며 볼품없는 것들을
가치 있는 형체로 바꿔 놓을 수 있어.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본다니까
그래서 날개 달린 큐피드를 장님으로 그려 놨지.
게다가 사랑의 마음은 판단력도 전혀 없어,
날개 있고 눈 없으니 무턱대고 서두르지.
그러니까 사랑을 어린애라 하잖아,
선택할 때 그 애는 너무 자주 속으니까.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1막 1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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