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멸의 계곡’에서 길을 잃은 2차전지 테마주(상)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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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의 계곡’에서 길을 잃은 2차전지 테마주(상)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4.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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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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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 증시를 뜨겁게 달군 종목은 거의 대부분 ‘2차전지 테마주’에서 비롯됐다. 2차전지 관련주들을 제때 편입하지 못한 펀드매니저들은 극심한 수익률 부진에 시달리다 쫓겨나기 일쑤였고, 전기차 관련주 투자 열풍에 제때 편승하지 못한 개미투자자들은 오래도록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토록 뜨겁던 투자 열기는 지난해 7월 어느 날 폭죽처럼 요란하게 타올랐던 대량거래 이후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토록 맹렬했던 2차전지 테마주 투자 열풍은 엉뚱하게도 초전도체 관련주, 로봇 관련주, 인공지능(AI) 관련주 등으로 빠르게 확산했지만, 2차전지 테마주의 투자 열기에 비할 만큼은 아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뜨겁게 진행된 ‘2차전지 테마주’의 시세는 과연 얼마만큼 추락했으며, 앞으로는 또 어떤 흐름이 전개될까? 2차전지 테마주들도 결국 한때의 유행처럼 끝내 시들고 말 것인가?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예단할 수는 없을 듯하다. 왜냐하면 2차전지 테마주들은 그저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여느 테마들과는 뚜렷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전기차로 전환하는 흐름은 ‘디지털 혁명’이나 ‘인공지능(AI)’처럼 결코 되돌리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여름 이후로 지금까지 전개된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 흐름은 우려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리서치 전문 기관 가트너는 신기술의 가능성이 지나치게 홍보되는 걸 막기 위해 관련 신기술의 성숙도 등을 그래프로 제시해 왔다. 이른바 ‘하이프 사이클’이다. 기술의 성숙도를 ▲‘여명기’ ▲과도한 기대를 품게 되는 ‘절정기’ ▲‘환멸기’ ▲‘계몽활동기’ ▲‘생산성 안정기' 등 모두 다섯 시기로 구분하는데, 2차전지 기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산성 안정기에 접어든 단계다. 그럼에도 관련 기업들의 주가만큼은 마치 지난해에 절정기를 겪었고, 지금은 ’환멸의 계곡‘에서 허우적거리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제부터는 최근 5년 4개월(2019년 1월 2일∼2024년 4월 19일) 동안에 진행된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 흐름을 다시 한번 조목조목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분석을 통해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 변동이 과연 시대 변화를 주도했던 과거의 몇몇 사례들과 얼마만큼 유사한지를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2차전지 테마주에 대한 개략적인 접근에 그칠 뿐이다. 이러한 분석이 2차전지 테마주에 대한 때늦은 탈출 혹은 알맞은 진입 타이밍을 알려주는 유력한 판단 근거는 결코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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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테마주의 시가총액은 어느새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 규모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지난해 9월만 하더라도 2차전지 테마주의 합산 시가총액은 428조원에 이르렀으며, 당시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보다도 많았다). 현재 네이버에서 분류한 테마별 종목에 따르면 2차전지 테마주는 지난 19일 기준으로 총 128종목에 달한다. 초전도체 대장 주인 신성델타테크까지도 어느새 전기차 관련주에 편입되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업들이 2차전지 관련주로 계속 편입되고 있지만, 더러 테마주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발견된다. 지난 19일 종가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는 2차전지 관련 종목만 하더라도 무려 31개에 달한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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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테마주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가총액이 큰 종목들이 유난히 많은 데다가 시세 변동마저 극심하다는 점이다. 2차전지 관련주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50개 종목만 살펴보더라도 그런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들 50개사의 시가총액은 가장 바닥일 때 160조원 수준이었다가 최고점일 때 649조원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기차 대장 주인 테슬라 못지않은 급등 장세가 한국 증시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된 셈이었다. 바닥에서 최고점까지 시가총액 증가분은 무려 489조원에 이르는데,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가파른 주가 상승에 대한 반대급부로 적잖은 후유증도 뒤따랐다. 지난 19일 기준 시가총액 상위 50개사의 합산 시가총액은 310조원까지 급격하게 감소했는데, 최고점 대비로는 무려 339조원이나 사라진 셈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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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총액 상위 10개사의 시가총액 변화만 살펴보더라도 아찔할 정도로 가팔랐던 주가 급변동을 새삼 알 수 있다. 이들 10개사의 시가총액은 바닥권일 때 142조원 → 최고점일 때 515조원 → 현재 255조원 수준으로 급등락을 보였다. 상위 10개 종목에서만 시가총액이 최대 373조원까지 급격히 불어났다가 불과 9개월 만에 260조원이 공중으로 사라진 셈이니, 단일 테마주로 이만한 시세 부침을 겪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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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테마주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11위부터 20위까지 시가총액 변화를 살펴보더라도 주가가 얼마만큼 급격한 변동을 겪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들 10개사의 시가총액은 바닥권일 때 8조9400억원 → 최고점일 때 77조3332억원 → 현재 38조5982억원 수준이다. 이들 10개 종목에서만 시가총액이 바닥권 대비 최대 8.7배까지 급격히 불어났다가 불과 9개월 만에 고점 대비 정확히 반 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2차전지 테마주로 분류된 기업들은 업체 수도 많고 주가 흐름도 제각각이어서 한꺼번에 일률적으로 다루기가 몹시 까다롭다. 그나마 이들 종목에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면 대부분 급격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과 미국의 환경 규제 완화 움직임, 전기차 보조금 지급 축소,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선전, 테슬라의 판매 부진과 대규모 감원 소식 등등 지난해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장밋빛 일색이던 미래 전기차 시장 전망이 갑자기 잿빛으로 빠르게 뒤바뀌는 분위기다. 장기적으로 전기 자동차가 대세로 자리 잡으리라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주가만큼은 환멸의 계곡에서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2차전지 관련주들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10개사의 주가 흐름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배터리 제조업체와 배터리 부품 업체들 사이의 주가 흐름에 차별성이 나타나곤 했지만, 어느새 그런 차별성마저 주가 동반 하락 흐름에 휩쓸려 묻혀버리는 듯한 모습이다.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를 둘러싼 고평가 논란들을 종합하자면, 전기차 생산과 수요가 2030년 정도에 이르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견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좁혀진다. 그러나 현실과 제법 동떨어진 미래에 실현될 예상 수익이란 늘 다양한 가정과 온갖 조건들이 차질 없이 충족될 경우만 달성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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