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 관련주, ‘유커’가 봄바람 몰고 올까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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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비 관련주, ‘유커’가 봄바람 몰고 올까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4.0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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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나 더디게 온다. 남녘에 봄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어언 한 달은 지난 듯한데, 서울에서는 이제야 벚꽃이 개화한다는 소식이다. 봄에 들려오는 꽃소식만큼이나 반가운 게 있다면 기업들의 실적 호전 뉴스다. 한국 경제를 떠받쳐 온 기둥 같은 반도체 산업이 본격적인 턴어라운드를 맞이한 데 이어 중국 소비 관련주에도 봄기운이 조금씩 스며드는 분위기이다. 저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늘어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근래에 극심한 불황을 겪었던 제주도의 카지노, 호텔, 면세점들이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기 시작하니 호텔신라, 파라다이스, 롯데관광개발 등의 주가가 오랜만에 들썩인다. 중국 경기 침체로 인해 기나긴 겨울잠에 빠져들었던 화장품 관련주들도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4월의 첫날에 상승률 상위 종목을 휩쓴 종목들이 중국 소비 관련주 일색이라니, 만우절에 제법 어울리는 거짓말 같은 풍경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돌이켜 보면 2016년 여름에 느닷없이 터져 나온 ‘사드 보복 조치’가 이토록 오랫동안 한국 경제에 짐이 될 줄 몰랐고, 중국 소비 관련주들의 발목을 이토록 단단히 붙잡고 늘어질 줄도 몰랐다. 중국의 뒤끝이 그만큼 길었다. 사드 보복이 해제된 계기도 뜬금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어느 날 불쑥 단체관광이 해제됐지만, 정작 해제 효과는 미약했고 체감하기도 어려웠다. 중국 경제가 너무 나빠진 탓이 컸다. 설사 중국인들이 한국을 다시 찾아오더라도 국내 관광 인프라가 망가진 탓에 생각만큼 빠르게 회복되기도 어려웠다. 중국인 관광객들의 평균 연령대나 여행 패턴마저 변해버렸다. 20, 30대 젊은 연령층이 대거 늘었고 쇼핑보다는 음식 등 문화 체험 위주로 바뀐 게 대표적이다. 그래도 한국을 다시 찾는 중국인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소식은 봄소식 못지않게 반갑다.

멀리 제주도에서부터 들려오는 ‘입도 외국인 급증’ 소식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외국인들의 발길이 아예 끊어지다시피 했던 데 비해 최근의 외국인 관광객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입도 외국인이 월간 기준으로 2019년 이후 가장 많은 15만5835명에 달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던 2019년 8월의 17만8323명과 비교하더라도 87.4%에 육박하는 수준이며, 2019년 같은 달(3월)에 제주도를 방문했던 외국인 12만6611명 대비 오히려 23.1% 증가한 수치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연도별로 제주도를 찾는 외국인 숫자를 비교해 보면 올해 석 달 동안의 외국인 입도객은 36만5783명에 이른다. 지난 1년 내내 제주도를 찾은 외국인 숫자 70만9350명의 절반을 뛰어넘는 숫자다. 비수기임에도 이 정도로 많은 외국인이 제주도를 찾는 추세라면 본격적인 여행 성수기 이후부터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코로나 직전인 2019년 수준으로 매우 빠르게 회복될 전망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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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항공노선뿐 아니라 크루즈 선박을 이용한 외국인 입도객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더라도 한국을 방문하는 전체 외국인 숫자가 제주도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이제부터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숫자가 얼마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여기서 잠시, 방한 외국인 숫자를 살펴보기 전에 중국인이 방한 외국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부터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한 외국인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15년부터 올해 2월까지 누적 방한 인원은 약 9490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국인이 3276만명으로 34.5%를 차지한다. 그다음은 일본이다. 1605만명으로 16.9%를 차지한다. 이들 두 나라가 방한 외국인 전체의 51.4%라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셈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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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방한 중국인 숫자는 아래 그림과 같다. 코로나 발발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한 해 600만명을 뛰어넘었던 중국인 방한 숫자는 지난해까지 급격하게 쪼그라든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봄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빠르게 전환했음에도 연간 누적 방한 중국인 숫자가 2019년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 점이 ‘중국 소비 관련주들의 더딘 회복세’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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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지난해 여름부터 중국인 방한 숫자가 점차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2월의 방한 중국인 숫자는 2019년 2월에 비해 75.8%까지 회복된 모습이다. 최근 들어 중국인들이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난 모습이 자주 보도되는 이유가 다시금 확인되는 셈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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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중국인을 제외한 방한 외국인 동향을 살펴볼 차례다. 코로나 시기를 제외한다면, 중국인을 제외한 방한 외국인 숫자는 훨씬 안정적인 모습이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연속으로 꾸준히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2019년에는 중국인을 제외하고도 한 해 1147만명까지 기록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영향이 사라진 지난해에 회복하는 속도 또한 ‘방한 중국인 동향’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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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중국인을 포함한 방한 외국인 전체를 살펴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중국인이 차지했던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지난해 방한 외국인 전체 숫자는 2019년에 비해 63.0% 수준인 1103만명에 그쳤다. 지난해 전체 방한 외국인 가운데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8.3%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올해 2월까지 방한 중국인 숫자는 62만3754명인데, 어느새 같은 기간 전체 외국인 숫자의 32.3%까지 회복했기 때문이다. 향후 중국인 방한 숫자가 탄력적으로 회복된다면 전체 방한 외국인 숫자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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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로 방한 외국인 숫자를 살펴보면 회복세가 뚜렷이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기록했던 월간 123만명만 하더라도 2019년 10월 대비 74.3%까지 회복된 상태이며, 방한 외국인의 증가 추세는 점점 빨라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근래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고유의 음식 등 다양한 K-컬처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도 나날이 강해지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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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비 관련주들의 장기간에 걸친 주가 침체는 대체로 사드 보복과 한한령 때문에 방한 중국인들이 급감한 데 더해 코로나 팬데믹 사태까지 겹치면서 방한 외국인 전체 숫자마저 급격히 위축된 영향이 컸다. 그 때문에 아모레퍼시픽, 신세계, 호텔신라, CJ 등 한국의 내수 경기를 떠받치는 주요 기업들의 주가는 고점 대비 대부분 크게 하락했다. 이토록 극심한 주가 침체를 겪은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유커가 돌아온다’라는 뉴스 몇 번으로 ‘좋았던 옛 시절’로 재빨리 되돌아갈 수는 없다. 사드 보복과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인해 망가지고 훼손된 관광 인프라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에 가까운 심리적 타격까지도 어느 정도 복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빠른 속도로 회복 중인 한·중 사이의 항공노선, 중국인들의 여행 패턴 변화에 부응하는 K-콘텐츠 중심의 매력적인 관광 상품 개발, 통역 등 관광 업계의 부족한 인적 자원 확충 등이 뒷받침할 경우, 중국인뿐 아니라 전체 방한 외국인 숫자도 빠른 속도로 회복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중국 소비 관련주들이 겪은 부침들은 마치 거센 풍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위태로워 보일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천재 시인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한 대목이 떠오른다. 시인은 브루투스의 입을 빌려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전달한다.

인간사에도 간만의 차가 있는 법,
밀물을 타게 되면 행운을 붙잡을 수 있지만,
놓치면 우리의 인생 항로는,
불행의 얕은 여울에 부딪쳐 다른 불행을 맞이하게 되는 법이오.
지금 우린 만조의 바다 위에 떠있는 셈이오.
우리에게 유리한 이 조류를 타지 않으면,
우리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오.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4막 3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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