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제조 vs 부품업체, ‘2차전지’ 전쟁은 진행형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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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제조 vs 부품업체, ‘2차전지’ 전쟁은 진행형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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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식시장을 뜨겁게 뒤흔들었던 역사적 패닉 –2차전지 테마주, 어디까지 왔을까(상)

시대가 바뀌는 걸 체감할 수 있는 지표들은 대부분 증권시장을 통해서 빠르게 드러난다. 20세기가 저물어 가던 무렵의 시대 변화를 상징하는 용어는 '인터넷 혁명'이었다. 군사용으로나 쓰이던 인터넷이 빠르게 상용화되기 시작하자 온갖 신생기업들이 그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연관사업에 뛰어들었다. 어떤 업체들은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했고, 어떤 업체들은 검색 광고시장을 재빨리 차지했다. 갑자기 열린 온라인 게임의 무궁무진한 성장성을 엿본 게임의 천재들은 온갖 기발한 온라인 게임들을 마구 쏟아냈다. 소프트웨어가 발달하자 하드웨어 수요도 무섭게 팽창했다. 컴퓨터가 집집마다 깔리자 동네마다 컴퓨터 가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PC 수요 급증으로 D램 수요가 폭발하자 반도체 칩 제조업체뿐 아니라 장비 업체들까지 무섭게 팽창했다. 무선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고성능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자 거의 모든 산업이 스마트폰 기반으로 빠르게 전환됐다. 뉴스, 영화, 드라마, 쇼핑, 배달, 주식 및 금융거래, SNS 활동 등등 거의 모든 일상이 스마트폰을 통해서 이뤄지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러한 시대 변화의 흐름을 시시각각으로 전달해 주는 곳이 바로 전 세계 곳곳에 개설된 증권시장이다. 오늘날 전세계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미국 증시만 살펴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변화를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등을 제쳐두고 오늘날의 시대 변화를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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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말에 거세게 불어닥친 '인터넷 혁명'과 닷컴 버블 시대로부터 완전히 비켜나 있던 대표적인 투자가는 워런 버핏이었다. 닷컴 열풍이 거세지자 가치 투자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투자가도 마침내 '인터넷 혁명'의 폭풍 앞에 쓰러지고 마는 듯했다.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조롱받았다. 그가 집중적으로 투자해온 주식들은 일명 '굴뚝주'로 불렸다. 그는 한때나마 한국의 대표적인 굴뚝주였던 POSCO를 장기간 투자해온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삼는 기술주들은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투자를 외면했다. 그 대신 어떠한 시대 변화에도 흔들림이 없을 만한 주식들을 골라 투자했다. 질레트가 대표적이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들 '인터넷으로 면도를 할 순 없다'라는 게 그의 투자 철학이었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탭댄스를 추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전 세계 남성들의 수염이 밤새도록 자랄 테니까. 코카콜라, 월트디즈니, 시즈캔디, 철도회사, 석유회사, 은행 등등이 그의 포트폴리오를 채워주는 대표적인 종목들이었다. 그러니 단기간에 수십 배 혹은 수백 배씩 치솟는 닷컴 버블 시대의 주역들에 비해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주식들이 얼마나 초라해 보였겠는가. 워런 버핏이 사랑한 주식들이 폭락세를 맞은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완강하게 기술주 투자를 거부했던 워런 버핏도 훗날 주변의 권고를 받아들이면서 차츰 변화하기 시작했다. POSCO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회수하는 대신 IBM 등에 투자하기도 했고, 여러 해 전부터 중국의 전기차 업체뿐 아니라 애플에도 과감하게 투자하는 등 예전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에서 투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종목은 애플이다. 아메리카 은행(BOA),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쉐브론 등이 그 뒤를 잇는 것으로 나타났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미국 증시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기술 기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디지털 혁명 시대에 걸맞는 변신 능력까지 보여주는 워런 버핏의 행보가 경이롭기만 하다.

최근에 한국 증시를 뜨겁게 달군 종목들은 거의 대부분 '2차전지 테마주'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지난 7월 하순의 폭발적인 시세 분출과 대량거래 이후에는 그 기세가 한풀 꺾인 것도 사실이다. 2차전지 테마주의 바통을 이어받듯 등장한 초전도체 관련주, 맥신 관련주, 로봇 관련주, 인공지능(AI) 관련주 등이 빠른 순환매를 보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동안 뜨겁게 진행되어온 '2차전지 테마주'의 시세는 과연 앞으로 어떤 흐름을 보일까? 한때의 유행처럼 차츰 시들고 말 것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2차전지 테마주들은 마치 '디지털 혁명'처럼 결코 일시적인 유행일 수 없는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를 멈춰세우는 일은 어느덧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로 부상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가장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단이 친환경 전기자동차이기 때문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이제부터는 최근 4년 9개월(2019.1.02∼2023.9.22) 동안에 진행된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 등락을 (세 차례로 나누어)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분석을 통해 2차전지 테마주들의 놀라운 주가 상승 흐름이 과연 시대 변화를 주도했던 과거의 몇몇 사례들과 얼마만큼 닮았는지 또는 다른지를 조금은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기껏해야 2차전지 테마주에 대한 개략적인 접근에 그칠 뿐이다. 이러한 분석이 2차전지 테마주 투자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권유 혹은 배제의 근거는 결코 될 수 없다는 말이다.

2차전지 테마주의 시가총액은 어느새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네이버에서 분류한 테마별 종목에 따르면 '2차전지 테마주'는 지난 22일 기준으로 총 130종목에 달한다. 초전도체 대장주인 신성델타테크도 어느새 전기차 관련주에 편입되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기업들이 2차전지 관련주로 계속 편입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2차전지 사업'에 발을 들여놓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종가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는 2차전지 관련 종목만 하더라도 무려 32개사에 달한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2차전지 테마주로 분류된 기업들은 업체 수도 많고 주가 흐름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일률적으로 다루기가 몹시 까다롭다. 시가총액 규모 상위 50개 종목을 중심으로 2019년 이후 최근까지의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배터리 완성품 제조업체들의 주가는 2년 혹은 1년 전쯤에 일찌감치 고점을 기록한 뒤 꾸준한 하락세를 보인 반면, 부품 업체들인 에코프로 형제들과 포스코 그룹 주식들은 최근에 와서야 뒤늦게 주가가 급등했다는 사실이다.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최근의 2차전지 테마주 강세와는 사뭇 다른 주가 움직임을 보인 끝에 1∼2년 전 고점에 비해서도 적잖은 주가 하락폭을 기록 중이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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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CO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은 올해 여름에 대시세를 분출한 대표적인 종목이다. POSCO홀딩스는 2차전지 분야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더 이상 철강주로 보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제도권 애널리스트들은 여전히 철강업종 담당자가 POSCO홀딩스를 분석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토록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 벌어지는 곳도 여전히 증권시장의 일부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배터리 제조업체와 배터리 부품 업체들 사이의 주가 흐름이 이토록 현격하게 달리 나타난 까닭은 무엇인가? 에코프로 형제들을 비롯한 몇몇 특정한 종목들을 중심으로 주가가 급등세를 나타내자 그런 현상이 빚어진 원인을 두고 격렬한 공방이 벌어졌다. 이른바 제도권에 속하는 애널리스트와 배터리 아저씨를 구심점으로 하는 개인투자자들 사이에 '쩐의 전쟁'이 나타났다. 펀더멘털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주가라는 주장과 2차전지 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빚어진 오해일 뿐이라는 엇갈린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그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차전지 테마주들의 주가를 둘러싼 고평가 논란들을 종합하자면, 전기차 생산과 수요가 2030년 정도에 이르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미래에 실현될 예상 수익이란 늘 다양한 가정과 조건들이 차질 없이 충족될 경우에만 달성 가능한 법이다. 올해 들어 무섭게 폭등한 2차전지 테마주들이 역사적 고점을 또다시 경신할 수 있을지, 고평가 논란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점진적으로 하락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어쩌면 2차전지 분야에 대한 견해가 대체로 일치하는 지점인 낙관적인 미래 전망보다는 도리어 개별 기업들의 미래 환경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 장래의 주가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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