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까맣게 태워버린’ 2차전지 테마 광풍의 이유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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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까맣게 태워버린’ 2차전지 테마 광풍의 이유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7.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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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극소수 종목들로만 한정된 이상 주가 급등 현상… 고평가 논란이 공매도 세력과 연결

패닉과 광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동원해 좇고 상상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대단한 분량이 쓰여졌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시점마다 엄청난 금액의 멍청한 돈이 부지기수의 멍청한 사람들 손에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 당면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명분을 이유 삼아 이런 사람들의 돈-우리는 이 돈을 ‘눈먼 자본’(blind capital)이라고 부른다-이 주기적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나고 꿈틀대는 욕망에 주체를 못한다. 이 돈은 누군가가 자신을 집어삼켜 주기를 갈망하며 “흘러 넘친다”; 흘러 넘치는 돈이 누군가를 찾아내면 ‘투기’가 벌어지고, 투기가 이 돈을 다 먹어 치우고 나면 ‘패닉’이 발생한다. -월터 배젓 『에드워드 기번에 관한 소론Essay on Edward Gibbon』 중에서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2차 전지 관련주들의 폭풍 질주가 마침내 거대한 증시를 온통 새까맣게 불태워버린 형국이다. 코스닥 거래 대금은 기어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아우른 시장 전체의 하루 거래 대금도 무려 62조8294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거래 대금 상위 20종목이 차지한 비중이 무려 63.6%에 달했다. 그들 20종목 가운데 2차 전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종목은 단지 4종목(삼성전자·SK하이닉스·포스코엠텍·포스코DX)에 불과했다. 나머지 16개 종목이 온통 2차 전지 관련주 일색이었다. 그들 16개 종목의 거래금액만 무려 34조5495억원에 달했다. 역대 3위를 기록한 코스피 거래대금(36조3482억원)과 16종목의 거래 대금이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2차 전지 관련주들의 주가 변동이 극심했다는 방증이다. 거래량 상위 20개에 포함된 2차 전지 관련주 16개 종목의 거래금액만으로도 시장 전체 거래금액의 55%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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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더욱 무서운 기세로 폭주하기 시작한 2차 전지 관련주들은 과거의 테마주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 한국 증시에서 헤아릴 수 없는 테마주가 지나갔지만, 그 테마주들은 주가 등락 측면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시세가 발산하는 최정점에서는 약간씩 다른 행보를 보였더라도, 일정한 기간만큼은 사이좋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는 말이다. 최근 들어 급피치를 올린 2차 전지 관련주들의 상승 행보는 그런 면에서 과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몇몇 극소수 종목을 중심으로 상승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타났다. 대별하자면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POSCO홀딩스, 포스코퓨처엠이 2차 전지 관련주들의 시가총액 폭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전날 장중 고가 기준으로 따지면 에코프로 3형제의 합산 시총은 SK하이닉스를 훌쩍 뛰어넘어 대망의 100조원에 간발의 차이로 다가가는 수준(99조7719억원)까지 무섭게 치솟았다. 최근 2차 전지 관련주들의 시총 폭증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작성=오인경
/작성=오인경

에코프로 3형제에 이어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여온 나머지 4종목(POSCO홀딩스·포스코퓨처엠·엘앤에프·금양)까지 합산한 7개 종목의 시총은 어느새 193조원에 이르며, 전날 장중 고점 기준으로는 무려 240조원을 넘어섰다. 이들 7개 종목의 장중 고점 대비 저점과의 시총 차이만 하더라도 무려 60조원에 육박한다. 2023년 여름에 보여준 이들 종목의 격렬한 시총 변동은 앞으로도 쉽사리 재연되기 어려운 탐욕과 광기의 극치 가운데 하나로 오랫동안 기억될 듯하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몇몇 극소수 종목들로만 한정된 주가 급상승 현상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에코프로 3형제에 대한 고평가 논란이 자연스레 대규모 공매도와 연결되었고, 그에 대한 일반투자자 중심의 극심한 반발이 광범위한 호응과 함께 신규 매수세를 불러일으켰으며, 예상 밖의 주가 폭등은 공매도 세력의 대규모 숏커버를 유발했다. 외국인과 기관들의 과도한 공매도 베팅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숏스퀴즈를 연쇄적으로 초래했고, 다급한 자금 마련을 위해 여타 종목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매도를 불러일으킨 듯하다. 실제로 전날 온종일 양대 시장에서는 상승 종목 수 대비 하락 종목 수가 압도하는 현상이 이어졌다.(코스닥 종가 기준 88종목 상승, 1480종목 하락)

한국 증시를 온통 거대한 탐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2차 전지 관련주들의 격렬한 시세 변동은 앞으로도 적잖은 후유증을 남길 게 틀림없다. 2차 전지 관련주들에 대한 광풍은 아무리 먹어도 식탐을 그칠 줄 모르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에뤼식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풍요로운 숲을 이루는 거대한 참나무를 도끼로 베어버린 탓에 숲의 여신 케레스로부터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아무리 먹어도 끝끝내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형벌이었다. 2차 전지 관련주들의 폭등 시세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 투자자들의 탐욕과 광기가 대한민국 증시라는 숲마저 태워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스러울 정도다. 허기에 시달리는 형벌을 받은 에뤼식톤이 어떻게 파멸했는지를 노래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한 번쯤 찬찬히 음미해 볼 때다.

​그자는 더 많이 뱃속으로 내려보낼수록 더 많이 요구했소.
마치 바다가 전 대지로부터 강물을 받아들여도
그 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멀리서 흘러온 강물들까지 들이키듯이,
마치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이 영양분을 거절하는 일 없이
무수한 통나무들을 불태우고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요구하고
많을수록 그로 인하여 더욱더 탐욕스러워지듯이,
꼭 그처럼 불경한 에뤼식톤의 입은 그 모든 음식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소. 그에게는 음식이 곧 음식을
먹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먹을수록 늘 공복감을 느낄 뿐이었소.


하지만 마침내 재앙의 힘이 모든 재고를 다 먹어치우고
그의 중병(重病)이 더 많은 먹을거리를 요구하게 되자,
그 가련한 자는 제 사지를 찢어 그것을 제 입으로
물어뜯기 시작하더니 제 몸을 먹음으로써 제 몸을 먹였소.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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