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만 개미들의 형님’ 슈퍼개미, 또 솜방망이 처벌?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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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만 개미들의 형님’ 슈퍼개미, 또 솜방망이 처벌?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6.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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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달아오를수록 부패 발생도 증가… ‘재범률 23%’ 주가조작 막으려면 획기적 처벌법 필요

금융사기는 왜 반복되는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탐욕’ 때문이다. 속이려는 자는 쉽게 돈을 벌려는 탐욕을 앞세우고, 속는 자는 쉽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탐욕을 앞세우다가 결국 당한다. 늘 당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이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올해는 유난히도 추악한 금융사기 사건이 많이 발각되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드러난 증권 범죄들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마치 기적(汽笛)을 울리듯 일순간 터져 나온 라덕연발 초장기 주가조작 사건만 하더라도 아직 전모가 다 밝혀지진 않았다. 그 사건에 뒤이어 터져 나온 ‘5개 종목 하한가 사태’도 그저 한가한 간이역에 잠시 정차한 폭주 기관차의 인상을 줄 뿐이다. 신호만 울리면 언제든 내리막길을 향한 폭주를 거침없이 내달릴 가능성이 농후한 종목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축축한 숲속에서 버섯이 자라나듯 음습한 환경을 틈타 저질러진 부정이 여기저기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인위적인 주가조작과 닮은 듯 다른 범죄는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증권 범죄다. 이 방식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죽하면 1978년에 초판이 출간된 경제학 고전에도 이런 내용이 담겼겠는가.

아주 최근에는 인터넷이 주가조작을 위한 좋은 수단이 됐다. 17세 소년 조나단 레벡은 자신이 보유한 거래량이 극히 적은 종목들에 대한 ‘뉴스’를 인터넷 대화방에 올렸다. 해당 종목의 주가는 상승했고, 조나단은 자신의 보유 물량을 매도했다.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조나단에게 벌금 50만달러를 부과했다. MSNBC는 비즈니스 뉴스 전문 TV 방송이다. 이 방송 프로그램의 출연자들 다수가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을 추천하고 있다.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2006년 제5판)

킨들버거의 책에는 무수한 금융사기 수법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오프라인으로 배포되던 신문의 칼럼이 주된 선행매매의 창구로 활용되었다면서 사회 유력인사들이 얼마나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실명으로 언급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저명한 투자평론가와 국방부 차관보가 그런 정보를 활용하다가 체포됐고, 그런 범죄에 가담한 인물은 훗날 『거래의 비밀: 월스트리트저널에서의 유혹과 스캔들』을 써서 자신의 경험을 또 다른 기회로 활용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과거에는 주로 케이블 증권 방송 등 고전적인 매체를 통해 광범위하게 이뤄지던 선행매매 수법은 근래 들어 주식 리딩방, 인터넷 투자 카페, 텔레그램 등 단톡방 문자메시지, 유튜브 채널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엄청난 규모로 유입된 ‘동학개미’ 덕분에 우후죽순 생겨난 유튜브 증권 채널은 순식간에 공중파 증권 방송을 압도하는 기세로 급팽창했다. 순진한 개미들은 유튜브 증권 방송이 무슨 대단한 비법이라도 알려주는 ‘주식투자의 보고’나 된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단기간에 구독자를 수십만 명까지 끌어모은 유명 유튜버들은 그야말로 시대의 총아로 떠올랐고, 온갖 언론매체에서 앞다퉈 섭외할 정도로 귀한 몸 대접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유명 유튜버가 운영하는 채널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들은 심지어 대선 국면에서는 차기 대권주자들까지도 자신들의 채널에 출연시켜 ‘증시 대담’을 나눌 정도로 막강한 위상을 자랑했다. 주식으로 돈을 벌고 싶은 투자자들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칠세라 아침마다 몇만 명씩 실시간 시황 방송에 모여들었고, 증시 호황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해진 투자자들은 아침마다 기꺼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에게 자랑삼아 혹은 호기롭게 슈퍼챗을 마구 투척했다. 유명 유튜버들은 라이브 방송 때마다 쏟아지는 슈퍼챗, 매월 정기적으로 입금되는 유료 멤버십 회비, 구글에서 지급하는 유튜브 채널 광고 수입만으로 만족할 줄 몰랐다. 그들은 천진난만한 채널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삼아 ‘선행매매 수법’을 통해 추악한 금융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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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연신 터져 나오는 주가조작 범죄를 보다 못한 검찰총장이 직접 증권거래소를 방문하는 놀라운 이벤트까지 있었다. 일부러 그 일정에 맞춘 듯한 검찰의 금융사기 범죄 발표는 수많은 동학개미들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개미 투자자들의 진정한 우상이자 ‘형님’으로 대접받아온 슈퍼개미라는 인물이 선행매매 수법을 통해 거액의 부당 이득을 올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일부 투자자들에게는 라덕연 일당의 주가조작 사건 못지않게 충격적이었다. 슈퍼개미라는 인물은 한때나마 개미들의 롤모델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튜브라는 첨단 매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고, 주식투자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출간했으며, 다양한 언론매체에 얼굴을 내밀며 성공한 주식투자자로 행세해 왔던 인물이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컸으면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무려 55만명에 이르렀겠는가. 그처럼 번지르르한 투자 성과를 자랑했던 인물이 한낱 희대의 사기꾼이었다니,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닌 셈이다.

찰스 P. 킨들버거의 지적이 맞다. 부패 발생 건수는 증시가 달아오를수록 함께 증가하기 마련이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도 급속도로 불어나지만, 거짓말에 능숙한 양치기도 함께 증가한다.

부정행위는 경제가 호황기일 때 증가한다.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일 분마다 한 명씩 속아 넘어간다.”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중에서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올해 4월부터 연이어 터져 나오는 금융 범죄들을 보노라면 혼탁한 증시 풍토를 정화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들이 시급하다는 걸 새삼 절감하게 된다. 화이트칼라가 저지르는 금융사기 범죄는 들키더라도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게 특히 문제다. 수십억 혹은 수백억원씩 부당 이득을 올리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기 일쑤다. 그러니 걸려도 ‘반쯤 남는 장사’일 수밖에 없다. 최근에 ‘5개 종목 동시 하한가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도 주가조작 범죄를 저지른 끝에 실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주가조작 범죄로 제재를 받은 643명 중 149명이 재범 이상의 전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23%에 달하는 재범률이다. 이러니 주가조작 범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다년생 잡초처럼 끈질기게 자라나는 것이다.

부패 행위는 거의 모든 경제에서 그 일부를 구성하는 요소다. 도덕적인 규범과 법률적 규범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거래는 풍요로운 호황기에 증가한다. 주가와 부동산이 호황기를 맞아 개인적인 부가 증가할 때, 남들보다 더 빨리 부를 늘리고자 하는 개인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부정에 뛰어든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구경꾼들을 너무나 손쉽게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축제가 열리면 칼을 삼키는 묘기를 구경하도록 관람객들을 끌어모으는 바람잡이들과 비슷하다. 대중은 비싼 입장료뿐 아니라 재주꾼의 묘기에 홀려 터무니없이 비싼 물건까지도 즉흥적으로 구매하기 쉽다. 축제가 끝나면 바람잡이들은 모두 떠나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사들인 물건만 손에 남을 뿐이다.

전날에도 한 증권사 베스트 애널리스트의 추악한 선행매매 범죄가 발각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미 1990년대에도 가끔 발생했던 고전적인 범죄가 왜 지금껏 반복되는가. 정부 당국이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해마다 무산되는 것도, 이토록 후진적인 증권 범죄의 방지책이 허술하기 때문은 아닌지 궁금할 정도다. 마침 국회에서도 자본시장법 개정이 한창 논의 중이라고 한다. 뒤늦게나마 불법의 온상인 ‘온라인 주식 리딩방’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전날 국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차제에 주가조작 범죄에 대한 획기적인 처벌 강화 법안도 조속히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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