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끌어 올려? ‘셀트리온 닮은꼴’ 에코프로 3형제 주가 [오인경의 그·말·이]
상태바
하늘에서 끌어 올려? ‘셀트리온 닮은꼴’ 에코프로 3형제 주가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7.24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년쯤 전의 일이다. 당시 투자전략가로 명성을 떨쳤던 엄길청씨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주가가 피크 국면으로 치달으면 하늘에서 주가를 끌어 올린다”. 주가가 과열되면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폭등이 일어난다는 걸 재치 있게 표현한 말이었다. 그 이후 정말로 그분의 표현에 딱 맞는 ‘비현실적인 폭등’이 여러 차례 일어났다. 그때마다 매번 종목과 이유는 달랐지만 언제나 결론은 비슷했던 듯하다. 세상 사람들의 입에 널리 회자될 정도의 대시세는 계속 유지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증시 격언에도 그와 비슷한 말이 있다. “주가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나고 행복 속에 사라진다”. 한국 증시가 최초로 1000포인트 문턱에 도달한 때는 1989년 4월 1일이었다. 그때는 소위 트로이카 주식들이 날아올랐다. 건설, 무역, 금융주가 아니면 주식 취급도 받지 못할 정도였다. 증권업종 주식들이 모조리 상한가를 기록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만우절에 기록한 1000포인트는 사흘 만에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기나긴 증시 침제가 지속된 끝에 1992년 8월에는 459.07포인트대까지 추락했다. 증시 상승을 주도했던 트로이카 종목들이 가장 많이 떨어졌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1997년에 IMF 사태가 터진 이후 끝 모를 대추락을 경험한 한국 증시는 1999년 봄에 다시 한번 피어났다. 마치 패자부활전이 열리듯 드라마틱한 상승세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밀레니엄에 힘입어 나스닥에서 인터넷 기술주들이 붐을 일으키자 이내 코스닥 시장으로도 거센 불길이 옮겨붙었다. 워런 버핏이 선호하는 굴뚝주들은 철저하게 버림받은 대신 온갖 신생 기업들이 무슨 구세주인 양 증시를 휩쓸기 시작했다. 무선전화 서비스를 내세운 새롬기술,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음 등이 대표적이었다. 새롬기술은 아침 일찍 주문을 넣으면 오후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체결 확인이 뜰 정도였다. 주문 폭주로 증권 전산 시스템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벼락부자가 속출하면서 모든 게 미쳐 돌아가는 듯했다. 비상장 주식들은 매도 가능한 물량을 확보해서 매수자에게 전달하는 사이에 수십 %씩 가격이 치솟곤 했다. TV를 켜면 온통 주식 얘기뿐이었고, 전국 대도시의 강당마다 투자설명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바이코리아 펀드 등 온갖 펀드들이 TV 광고에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광고 카피는 이랬다. “여러분~ 부자 되세요~”. 그때 화려한 시세를 자랑하던 시대의 총아들은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증시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새롬기술, 핸디소프트 등은 우리나라 증시 버블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남았다.

우리나라 증시에서 수십 배씩 폭등하는 주식들이 또다시 대거 등장한 시기는 중국발 경제 호황기인 2003∼2007년 무렵이다. 이때는 철강, 조선, 해운 등 소위 ‘헤비 인더스트리’ 주식들이 대호황을 맞았다. 바닥권에서 수십 배씩 오르는 종목이 속출했다. 펀드매니저들은 벤치마크 수익률인 코스피 지수 상승률에 뒤처질까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도주들을 마지못해 편입했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조선주들을 살 수 없다면서 ‘낮술이라도 먹고 질러야겠다’라는 농담을 거리낌 없이 나눌 정도였다. 2000포인트를 넘어서며 뜨겁게 달아오른 증시는 2008년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가 닥치자 순식간에 900포인트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중국 경기에 가장 뜨겁게 반응했던 조선과 해운 주식들은 끝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로 가장 각광받았던 주식들은 씨젠을 비롯한 진단 기기 업체와 다양한 비대면 수혜주들이었다. 배출구를 찾지 못한 과잉 유동성은 가상화폐 쪽으로도 몰려갔다. 이때 등장한 신조어가 동학개미, 주린이, 벼락거지 등이었다. 증시가 3300포인트를 훌쩍 넘어설 때까지도 주식투자를 망설였던 투자자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증시 흐름을 주도했던 종목들을 외면한 투자자들, 가상화폐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던 투자자들이 까닭 모를 상실감에 우울감을 토로하는 일이 잦았다. 무서운 폭등세의 주역은 동학개미들이었다. 때마침 우후죽순 생겨난 주식 전문 유튜브 채널들은 순식간에 투자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유튜브 주식 채널에 얼굴을 자주 내밀던 일명 ‘배터리 아저씨’는 급기야 제도권 애널리스트들과 공공연히 맞설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배터리 관련주 투자에 열을 올리던 동학개미들은 2차 전지 관련 폭등주에 대해 고평가 진단을 내린 애널리스트를 향해 공공연히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 등에 대한 고평가 논란은 수조 원대의 자금력을 동원한 기관 및 외국인 공매도 세력이 대거 가세하면서 급기야 ‘쩐의 전쟁’ 양상으로 발전했다. 에코프로 투자자들은 어느새 공매도 투자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조원씩 자금을 투입하며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혈투를 벌였다. 1980년 1월에 종합지수 100포인트로 시작한 우리나라 증시가 2023년 7월에 지수 2600포인트에 이르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번처럼 양극단으로 나뉜 채 미증유의 ‘쩐의 전쟁’을 벌이는 풍경을 보게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사진=미지투데이
/사진=미지투데이

​이토록 거대한 쩐의 전쟁은 필시 오래도록 깊은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다. 증시 최초로 장기 상승 국면이 펼쳐졌던 80년대 말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뒤늦게 투기장의 막바지에 뛰어들었다. IMF 시절에는 대한민국 경제가 통째로 무너져내렸으니 주가 폭락의 피해가 어느 집단에 귀속되었는지를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멀쩡한 대기업들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기나긴 고통 끝에 마침내 경제가 소생하기 시작하자 버블이 다시금 찾아왔다. 1999년의 IT 버블, 2007년의 중국 경기 수혜주 폭등, 2021년의 코로나 수혜주와 비대면주 투자 열풍, 2023년의 2차 전지 투자 열풍 등이 무슨 시리즈마냥 이어졌다.

​지나간 수많은 투기 열풍과 현재진행형인 2차 전지 배터리 관련주들의 투자 열풍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런 투기 열풍에 가담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점이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들의 안락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흔들린다. 1720년대 남해회사 거품 당시에 등장했던 말이 그때마다 소환된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미쳤다면 어느 정도는 우리도 그들을 흉내 내야 한다”. 이 모든 소란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정상 상태로 회귀한다. 투기 열풍에 뒤늦게 참여한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옷자락이 어느새 악마의 손길에 붙잡히고 만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증시 투자자들의 이목을 온통 집중시키고 있는 <2차전지 배터리 관련주>들의 광기 어린 현주소를 조금만 살펴보고 넘어가자. 2차 전지 관련주들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 11개 가운데 6개를 차지할 정도로 몸집이 급격히 불어났다. 시가총액 상위 50위 이내로 범위를 넓히면 무려 9개 종목이 2차전지 관련주로 분류된다. 이들의 시가총액 합계는 무려 407조원에 달한다(삼성전자 시가총액의 97%). 에코프로 3형제의 시가총액은 어느덧 69조원을 넘어섰다.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의 82.5%에 해당한다.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셀트리온 3형제가 거침없이 진격하던 모습을 빼닮았다.

2차전지 관련주들의 시가총액 비중. /그래픽=오인경
2차전지 관련주들의 시가총액 비중. /그래픽=오인경

​이들 2차전지 관련주 가운데 최근 들어 주가 변동률이 유난히 가파른 종목들은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POSCO홀딩스, 포스코퓨처엠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들의 주가 변동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이미 불가능에 가깝다. 탐욕과 공포기 지배하는 영역으로 접어든 지 한참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쩐의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식의 강대강 대치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들 급등 종목들은 주가가 치솟을수록 손실을 감당하지 못하는 공매도 투자자들의 ‘숏커버 강제 매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틈을 비집고 투기적인 매수세가 편승한다. 어제보다 더 높은 가격은 더욱 좋은 공매도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이해관계가 정반대로 엮인 투자자들이 어지럽게 뒤섞여 하루 종일 대혼전을 벌이는 양상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까.

2차전지를 주도하는 4인방의 공매도 잔액 현황. /그래픽=오인경​
2차전지를 주도하는 4인방의 공매도 잔액 현황. /그래픽=오인경​

이들 4인방의 종목별 주가 움직임과 공매도 잔고를 살펴보면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이토록 가파르게 치솟는 주가를 도대체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에코프로 주가 추이. /그래픽=오인경
에코프로 주가 추이. /그래픽=오인경
에코프로비엠 주가 추이. /그래픽=오인경
에코프로비엠 주가 추이. /그래픽=오인경
POSCO홀딩스 주가 추이. /그래픽=오인경
POSCO홀딩스 주가 추이. /그래픽=오인경
포스코퓨처엠 주가 추이. /그래픽=오인경
포스코퓨처엠 주가 추이. /그래픽=오인경

​1720년대 남해회사 투기장에서 거금을 벌어들였다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훨씬 더 큰 금액을 베팅했다가 두고두고 <투기의 역사>에 불려 다니는 인물이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튼이다. 그는 1720년 봄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라고 탄식했다. 뉴튼은 그해 4월에 보유하고 있던 남해회사 주식을 매각해 7000파운드의 이익을 실현했다. 그러나 그해 여름에 그는 세상을 집어삼킨 거대한 광기에 휩쓸려 거의 최고점에서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한 끝에 2만파운드의 손실을 보고 말았다. 그는 남은 생애 내내 ‘남해’(South Sea)라는 이름을 듣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했다고 전해진다. 에코프로라는 단어가 훗날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결국 투자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부론』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의 진심 어린 충고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역사의 기록을 점검하고, 또 당신 자신이 경험한 테두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사적인 삶이나 공적인 경력에서 대단한 불행을 겪은 사람들 거의 모두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보라; 그들 가운데 절대다수가 겪은 불행은 형편이 좋았을 때,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자족했더라면 그저 좋았던 때를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The Theory Moral Sentiments』 중에서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