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 뛰어넘은 시총 33조 ‘한통프리텔’의 끝은?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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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 뛰어넘은 시총 33조 ‘한통프리텔’의 끝은?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8.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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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식시장을 뜨겁게 뒤흔들었던 역사적 패닉 –1999년 ‘닷컴 버블’의 교훈

한국 증시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역대급 버블 사례의 시초는 지난 세기말에 발생했다. 그 당시 한국은 전대미문의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아 수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급증하는 등 혹독한 경제난을 겪고 있었다. 1999년에 접어들자 바닥권을 헤매던 증시가 차츰 깨어나기 시작했다. 뉴스는 온통 워크아웃을 비롯한 우울한 구조조정 소식들로 넘쳐났지만, 머잖아 새로운 세기가 곧 열린다는 희망과 흥분이 차츰 사람들의 막연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전산 프로그램 수정을 비롯한 ‘밀레니엄 특수’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군사용으로나 쓰이던 인터넷 통신 기술이 차츰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로 확장될 가능성이 엿보이자 이내 관련주들의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닷컴 버블’이 시작된 것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첨단기술주들의 집합소인 미국 나스닥 시장이 연일 폭등을 거듭했다. 인터넷 장비 업체의 대명사였던 시스코와 퀄컴, 델 등이 닷컴 버블의 주도주로 나서기 시작했다. 나스닥 기술주들의 폭등은 이내 코스닥 시장으로도 옮겨붙었다. 다가올 21세기에는 온통 새로운 기술들이 세상을 모조리 바꿔놓을 기세였다. 1996년 새로 개설된 코스닥 시장은 1999년 4월 초순까지도 전체 시가총액이 10조원을 밑돌았지만(4월 9일 9조9066억원), 그해 말에 기록한 코스닥 시총은 무려 98조7044억원까지 불어났다. 물론 신규로 상장된 종목이 가세한 영향도 적지 않았겠지만, 코스닥에 상장된 종목들의 시가총액 합계액이 불과 8개월 만에 10배가량 폭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만큼 놀라운 폭등장세였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 닷컴 버블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주도주들의 면면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는 ‘버블 주역들’은 주가 상승률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13일에 증시에 데뷔한 코스닥 새내기였지만, 이듬해 2월 25일까지 폭발적인 주가 상승세를 멈출 줄 몰랐다. 코스닥 대장주의 위력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가장 바닥에서 정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불과 6개월 남짓이었지만, 시총은 무려 158배까지 불어났다. 닷컴 버블 덕분에 신흥 부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국인 부자 순위’는 하루가 다르게 뒤바뀌었다. 그러나 기업가치의 변화가 뒷받침되지 못한 폭등은 결국 대폭락으로 이어졌다. 새롬기술이 90%에 가까운 폭락세를 기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0년 3월에 정점을 기록한 미국 나스닥 시장이 돌연 폭락세로 돌변하자 닷컴 버블은 빠르게 냉각됐다. 새롬기술이 내세운 기술이라고 해봐야 고작 ‘무료 통화 기술’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투기 광풍에 빠진 일반 대중들이 도대체 그토록 평범하기만 한 기술에 왜 그토록 광분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이 당시를 대표하는 버블 주식 가운데에는 우리에게도 몹시 익숙한 ‘한글과컴퓨터’라는 종목도 있다. 버블 이전에는 불과 124억원에 불과했던 시총이 닷컴 버블 시대를 맞아 화려하게 꽃을 피운 끝에 무려 2조7831억원까지 무섭게 팽창했다. 1999년 10월까지도 비교적 잠잠하던 주가는 불과 석 달 만에 17배 이상 치솟았다가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1999년 10월 4일에 3320원에 머물렀던 주가는 석 달이 지난 2000년 1월 4일에 역대 최고가인 5만7000원까지 폭등한 뒤 2000년 12월 22일에는 출발점보다 더 내려간 2400원까지 주저앉았다. 닷컴 열풍에 휩쓸려 주식시장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수많은 초보 투자자들이 ‘한글과컴퓨터’라는 친숙한 이름 때문에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주식을 사들였다가 오랜 세월 동안 엄청난 금전적 심리적 고통을 겪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종목의 이름은 듣기도 싫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제1차 버블 시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종목 가운데 ‘다음’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종목은 코스닥 시장에 상장되기 이전부터 대중들의 관심을 한껏 고조시켜온 ‘장외 기대주’였다. 코스닥 시장은 이미 거대한 산불처럼 활활 불타오르는데 ‘새 시대 총아’로서의 면모를 지닌 신생 닷컴기업이 비상장 기업으로 머물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다음과 비슷한 대접을 받는 회사가 엔씨소프트와 넥센 등이었다. 1999년 봄에 투자 목적으로 다음과 엔씨소프트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의 숫자가 불과 20명도 채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들 신생기업을 이끄는 젊은 창업자들은 이미 상장 이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았던 터였다. 다음의 창업자는 나중에 당대 인기 최고의 여성 앵커와 결혼했고, 온라인 게임의 선구자였던 엔씨소프트와 넥센의 창업자들도 이미 학창 시절부터 일찌감치 남다른 재능을 드러낸 인물들이었다. 그런 기업들이 뒤늦게 코스닥 시장에 새내기로 데뷔했으니 후끈 달아오른 대중들의 투자 열기가 얼마만큼 맹렬했는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1999년 늦가을에 데뷔한 ‘다음’은 상장 이후 무려 26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1999년 11월 11일에 상장한 이후 26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기록한 것으로 모자라, 그해 연말까지 34거래일 연속으로 상승하는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줄곧 상한가로 마감했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그토록 무섭게 치솟던 다음의 주가는 이듬해인 2000년 1월에 접어들자 이내 급락하기 시작했다. 상장 이후 34일 동안 내리 상승하면서 19만3250원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이내 9만7000원(1월 27일)까지 폭락하더니 또다시 거기서 3배나 튀어 올라 27만3000원(2월 11일)까지 치솟은 다음에야 겨우 불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가가 고점에서 95%나 하락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개월이면 충분했다. 다음이 내세운 핵심 비즈니스는 ‘무료 이메일 서비스’였다. 그런 서비스 하나에 그토록 엄청난 투자 자금이 몰려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닷컴 버블 시기에 광풍을 몰고 온 또 하나의 그룹은 통신 업종의 기업들이었다. 무선통신 기술이 점차 빠른 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하자, 이내 세상이 온통 유선전화에서 무선전화로 모조리 대체될 듯한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했다. 이동통신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터무니없이 비싼 단말기 가격과 통신요금 때문에 가입을 주저했던 사람들은 ‘삐삐’를 통해서나마 유선의 한계를 잠깐씩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반쪽짜리 서비스 대신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무선 통화가 가능한 모바일 세상이 활짝 열린다는 기대가 통신주들을 폭등시켰다.

한통프리텔(32조9537억원), 한통엠닷컴(7조9307억원), 하나로통신(5조2800억원), 새롬기술(3조840억원) 등이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5위 이내에 대거 포진했다. 이 밖에도 한통하이텔, 한국정보통신, 드림라인, 텔슨전자, 세원텔레콤, 텔슨정보통신, 기산텔레콤 등등이 코스닥 시총 상위 50위 이내로 대거 진입했다.

그 당시의 통신주의 버블 현상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코스피를 포함한 시장 전체로 확대해 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시총 상위 10위 이내에 한국통신, 한통프리텔, SK텔레콤, 데이콤, 한통엠닷컴 등 무려 절반이 통신주로 채워졌다. 한통프리텔의 시가총액은 한때 SK텔레콤을 뛰어넘은 적도 있었으며, 데이콤의 시가 총액이 포항제철의 턱밑까지 추격한 끝에 전체 7위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한국 증시 역사상 처음으로 엄청난 버블을 형성했던 ‘제1차 버블 시기’는 대략 이 정도로 살펴보고, 다음에는 2007년 중국 경기 특수에 힘입어 하늘 높이 솟구쳤던 버블 주식들의 놀라운 급등 상황과 급락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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