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6일 2차전지 열풍, 5차 ‘코스피 버블’?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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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26일 2차전지 열풍, 5차 ‘코스피 버블’?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8.1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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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주식시장 뜨겁게 뒤흔들었던 역사적 패닉 사례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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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맨 뒤에 처진 사람을 잡아먹는 법이다(Devil take the hindmost)” “재주껏 도망쳐라(Sauve qui peut)” “맨 뒷사람이 개에 물린다(Die Letzen die Runde)”, 이런 말들이 패닉에 대한 처방들이다. 이와 비슷한 광경은 사람들이 들어찬 극장 안에서 불이 났다고 고함칠 때의 모습이다. 연쇄 편지가 연출하는 과정도 이와 닮은 꼴이다. 왜냐하면 그 연쇄 고리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소수의 투자자만 가격 하락이 시작되기 전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중에서

​인간의 미망과 광기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이야기가 쓰였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주로 황금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야기들이 많았다. 흑해 연안의 콜키스로 황금 양모피를 찾아 모험을 떠났던 <아르고호 원정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만지는 물건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디오니소스 신에게 말했다가 진짜로 그 소원을 이루게 된 미다스 왕 이야기도 있다. 그는 먹는 음식마저 황금으로 변하는 바람에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미다스의 손’이 도로 똥손(?)이 되게 해달라고 또다시 신에게 간청해야만 했다. 로마 역사상 최대 갑부였던 공화정 말기의 크라수스는 황금을 너무 탐내다가 파르티아 원정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그가 황금에 광적으로 집착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파르티아 왕이 그를 사로잡아 ‘황금을 녹인 물’을 목구멍으로 부어 넣어 죽였기 때문이다. 황금을 둘러싼 이야기의 교훈은 이렇다.

이 긴 역사의 가장 놀라운 점은 금이 역사의 주인공 대부분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역사 속에는 금을 끌어안은 채 물에 빠져 죽으면서 뒤늦게야 자신이 금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금이 자신을 소유했음을 깨달은 러스킨의 주인공과 같은 인물들이 자꾸만 등장했다. 미다스, 이아손, 크로이소스, 비잔틴의 황제들, 흑사병의 생존자들, 피사로와 그의 황제 카를 5세…. 이들은 모두 금 때문에 바보가 되어 환상을 좇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이 원했던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다. -피터 번스타인 <황금의 지배>

역사상 최초로 증권거래소가 생겨났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는 광기 어린 ‘튤립 투기’가 일어났다. 이 유명한 투기 이야기는 에드워드 챈슬러가 쓴 <금융투기의 역사>에서도 상세히 다뤄진다. 금융투기나 튤립 투기나 본질은 똑같기 때문이다. 튤립 한 뿌리가 살찐 황소 4마리와 맞먹을 때도 있었고, 튤립 뿌리 1파운드가 단 1주일 만에 당시 노동자의 한 달 치 월급 수준에서 5년 치 연봉에 상응하는 값으로 치솟기도 했다. 그토록 광기 어린 투기가 무려 13년씩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튤립 투기는 1637년 2월 3일에 단 하루 만에 붕괴했다고 전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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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기의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원조는 ‘남해회사 투기’였다.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는 당초 영국의 재정 위기를 타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관한 특권을 부여받은 이후 금융회사로 변질하면서 투기 붐을 폭발시켰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 경이 이 역사적인 투기판에 뛰어들었다가 거액의 손실을 본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의 할아버지도 남해회사 사기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거액의 재산을 몰수당하고 귀족 신분마저 박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기록적인 버블은 20세기 말에도 다시 한번 거대한 폭죽처럼 한껏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꺼져 내렸다. 인터넷 기술 혁명이 세기말의 묘한 분위기와 겹치면서 닷컴 버블을 촉발한 것이다. 미국 증시에서 오랫동안 터줏대감 역할을 떠맡았던 전통 경제 주식들은 하루아침에 ‘굴뚝주’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 대신 다가오는 21세기를 온통 새로운 세상으로 뒤바꿔 놓을 듯한 새로운 IT 기술들이 마치 캄브리아기 대폭발처럼 마구 세상에 쏟아져 나왔다. 미국 나스닥 지수는 1998년 10월에 1343.87P에서 2000년 3월 10일 5132.52P까지 무섭게 치솟았다. 우리나라의 코스닥 지수는 한술 더 떴다. 1998년 11월에 605.60P에서 2000년 3월 10일 2925.50P까지 치솟았다. 코스닥 지수가 지금도 900P 부근에서 움직이는 걸 보더라도 그 당시의 닷컴 열풍이 얼마만큼 뜨거웠는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위의 그림에서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듯이, 1999년 세기말을 장식했던 IT 버블 당시의 코스닥 지수는 지금까지도 거대한 첨탑처럼 난공불락의 높이를 자랑하면서 우뚝 서 있다. 지난달 26일 축제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듯 엄청난 거래량을 수반하면서 대폭발했던 2차전지 관련주들의 주가 피크 국면 또한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하는 버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그 당시에 기록했던 기록적인 코스닥 거래대금(26조4812억원)은 증시 역사상 최고 기록으로 당당히 남아 있다. 역대 2위와 3위 기록이 20조8000억원과 20조4000억원 대 수준이니, 그날의 거래대금 기록이 얼마만큼 대단했던지를 가늠할 수 있다.

​코스피 시장에서도 숱한 역사적 버블이 생겨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IMF 이후로만 따져보더라도 대략 다섯 차례에 걸쳐 극심한 버블이 형성됐다. 제1차는 앞서 코스닥 시장에서도 언급했던 1999년 말의 IT 버블이었다. 제2차는 중국 경기 호황이 세계 경제를 좌우했던 2007년에 일어났고, 제3차는 바이오 투자 열풍이 불었을 때였다. 제4차 버블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초저금리로 시장 유동성이 급팽창하면서 동학개미를 중심으로 주식 투자 열풍이 불었을 때였다. 제5차는 약 3주 전에 일어났던 2차전지 관련주 투자 열풍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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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코스피 흐름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코스피 기준으로 역대 최대의 거래대금이 폭발했던 시기는 2021년 1월 11일(44조4338억원)과 2021년 1월 8일(40조9095억원)이었다. 역대 3위의 거래대금 기록은 가장 최근인 지난달 26일에 있었던 36조3482억원이었다. 2차전지 배터리 관련 투기 열기가 얼마만큼 뜨거웠는지를 다시금 엿볼 수 있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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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2차전지 투자 열풍이 기록적인 버블인지 아닌지를 지금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에 숱하게 반복되었던 투기 열풍과 여러 측면에서 몹시 닮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기록적인 투기’로 기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시장은 어느새 초전도체 관련주 투자 열풍에 휩싸여 있다. 어느 유튜버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 테마는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초강력 울트라 테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무려 1세기 후에나 이런 기회가 찾아온다는 듯한 뉘앙스다. This time it’s different!(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말이 바로 이것이다. 참으로 익숙한 패턴이다. 버블은 늘 그런 식으로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사라진다. 투기적 대중은 구제불능이다. 인간만이 같은 덫에 1000번 이상 걸려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상처를 안겨줬던 일을 또 하려고 한다.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광적인 투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기적인 버블이 어떤 참담한 결과를 빚었는지를 한 번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증시를 장식했던 기록적인 버블 사례들을 연재식으로 몇 차례 더 다뤄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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