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미안” 김진태 데자뷔, 흥국생명의 ‘콜옵션 번복’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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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미안” 김진태 데자뷔, 흥국생명의 ‘콜옵션 번복’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2.11.08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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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자본증권 5억달러 조기상환권, 결국 행사하기로 결정… 금융당국 책임론 확산 부담된 듯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흥국생명의 신종자본권 콜옵션 행사 결정에 누리꾼들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당국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사진=뉴스웰DB
흥국생명의 신종자본권 콜옵션 행사 결정에 누리꾼들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당국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사진=뉴스웰DB

“당사의 기존 결정으로 인해 야기된 금융시장의 혼란에 대해 사과드리며…”

어제(7일) 흥국생명 누리집 알림창에 뜬 문구입니다. 제목은 <해외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 결정>. 2017년 11월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조기상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지 엿새만의 번복입니다. 레고랜드 사태로 “좀 미안하게 됐다”라는 김진태 강원지사의 발언이 곱씹어집니다.

8일 흥국생명에 따르면, 당초 행사하지 않기로 했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다시 행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나라 채권에 대한 해외 투자자의 신뢰를 깨뜨렸다’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사과문 한 장 내면서 뒤집은 것입니다. “경영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라며 흥국생명을 두둔한 금융위원회가 머쓱해진 순간입니다.

흥국생명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같이 결정하고, “대주주인 태광그룹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본 확충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신종자본증권 상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4000억~5000억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RP는 국내 대형 은행 또는 보험사들이 매수했거나 매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흥국생명은 7일 누리집을 통해 2017년 11월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다시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흥국생명은 7일 누리집을 통해 2017년 11월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다시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신종자본증권 발행 당시 환율로 약속한 콜옵션은 5571억원인데, 이를 RP로 조달한 자금과 자체 보유자금을 합쳐 먼저 갚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모회사인 태광산업과 대한화섬·티엔알 등 계열사들도 힘을 보탤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흥국생명의 입장 번복은 그만큼 국내외 금융시장에 미치는 후폭풍이 컸다는 방증입니다.

흥국생명뿐만 아니라 국내 은행과 보험사들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가격이 일제히 하락했다. 내년 8월 조기상환 예정인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 가격은, 지난 4일 기준 일주일 사이에 8.9% 내렸습니다. 같은 기간 내년 10월 조기상환이 돌아오는 우리은행 신종자본증권 가격은 11.1%, 2025년 9월 만기인 동양생명 신종자본증권 가격은 37.2% 급락했습니다.

보험업계는 이번 ‘콜옵션 번복’ 결정은 금융당국 책임론으로까지 확산하면서, 흥국생명의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합니다. 따라서 다른 보험사들도 뒤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 5월로 연기했던 DB생명은 오는 13일 예정대로 콜옵션을 행사할 계획입니다. 내년 상반기 예정인 한화생명과 KDB생명도 일정에 따라 진행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에 당국은 지난 2일 보도자료까지 내놓으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자료=금융위원회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에 당국은 지난 2일 보도자료까지 내놓으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다. /자료=금융위원회

한편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흥국생명의 번복 결정으로도 돌아선 시장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내다봅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은 주식과 다르게 시장 신뢰로 만들어지는 자산인데 그걸 어겼다는 게 가장 큰 이슈”라며 “이번 RP 매입으로 차입한다고 해도 이미 망가진 시장의 심리를 되돌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도 “콜옵션 미이행 계획을 철회했다고 해서 리스크가 없어진 건 아니다”라며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안 한 것보다는 낫지만 효과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며 당국까지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이 정부는 일을 키우는 데는 짱이다. 기재부하고 상의하고 옵션 행사 안 한다더니 일이 커지니 다시 상환하라고 했다던데. 신용만 잃고 이게 뭐 하는 거냐” “핵폭탄 터뜨려놓고 이제 와서 수습이 되나? 해외 금융시장에 시그널은 다 날리고?” “레고랜드 때문에 시장 돈 씨(를) 말리고, 콜옵션 미행사한다고 KP물 가격 낮추고, 부동산가격 폭락시키려는 빅픽처인가요? 아니면 콘트롤타워 부재인가요?” “지금 상환한다고 달라지나?” “이미 엎질러 놓고 뭐 하자는 건지”.

“이번 일은 김진태가 잘못한 거다. 지방채 연대 보증한 지난 민주당 자치단체장들의 잘못이 있다 해도. 세계 금융시장이 경색일 때 간과한 것이 큰 문제를 야기한 게 아닐까? 영국 총리도 물러나는 시점이다. 아마추어처럼 행동 말고 신중을 기해서 해라” “태광그룹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게 무슨 사회적 책임이냐? 계열사 재무 자금 상황 악화에 따른 지원이지. 사회공헌 활동하냐?” “자체 보유자금이 아니고 보험가입자들 예수금이겠지”.

지난해 12월 16일 박춘원 당시 흥국생명 대표(오른쪽 3번째) 등 관계자들이 ‘차세대 시스템 구축 착수 보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흥국생명
지난해 12월 16일 박춘원 당시 흥국생명 대표(오른쪽 3번째) 등 관계자들이 ‘차세대 시스템 구축 착수 보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흥국생명

지난해 12월 16일, 흥국생명은 ‘차세대 시스템 구축 착수 보고회’를 가졌습니다. 내년 4월 오픈을 목표로 ▲상품 개발 ▲보험 계약·심사 등 보험 핵심 업무를 간편화하고, ▲경영관리 ▲재무회계 등 업무 전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스템 개편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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