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기술 탈취” 승소했지만… 또 지루한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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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가 기술 탈취” 승소했지만… 또 지루한 다툼
  • 김인수 기자
  • 승인 2021.12.29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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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뒤집고 에스제이이노테크에 징벌적 배상 인정… 한화 “상고”
에스제이이노테크 “한화가 태양광 전지 제조라인 설비기술 유용”
한화 “공개된 정보 활용, 경력 직원 채용해 자체 개발한 기술”
공정위 “한화가 기술자료 유용”… 검찰에 고발했는데 불기소
한화가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한 혐의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사진=한화
한화가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한 혐의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사진=한화

태양전지 스크린 프린터 기술을 놓고 대기업인 한화와 중소기업 에스제이이노테크가 기나긴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는데요. 만약 한화가 패소할 경우 중소기업 기술을 탈취해 기업을 성장시켰다는 치욕적인 오명을 쓰게 돼 상당한 타격이 예상됩니다.

한화그룹에서 태양광 사업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1심에서는 한화, 2심에서는 에스제이이노테크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특히 2심 법원은 한화에게 중소기업체의 기술을 유용했다며 징벌적 배상을 물리는 판결을 내려 업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기술유용 배상액 5억원에 징벌적 배상 2배를 적용해 1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인데요.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탈취 분쟁 민사 소송에서 일부라도 중소기업이 승소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화 측은 이번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상고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결국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내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와 한화 간의 법적 분쟁은 2011년 태양광 설비제조에 관한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발단이 됐습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태양광 전지 제조라인 공급 시 그 일부인 스크린 프린터를 제조 위탁하는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문제는 계약 첫해부터 벌어졌습니다. 2011년 11월 한화가 관련 기술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 요구는 2014년 9월까지 이어졌는데요. 이에 에스제이이노테크는 관련기술 설계변경, 기능개선, 테스트 등의 기술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화는 2014년 9월 26일 에스제이이노테크로부터 마지막 기술자료와 견적을 받고 불과 며칠 뒤인 10월 초부터 에스제이이노테크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신규인력을 투입해 자체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화가 태양광 전지 제조라인 설비기술을 유용해 태양광 제품을 만들고 한화 계열사에 납품했다는 게 에스제이이노테크의 주장입니다.

기술을 탈취당한 에스제이이노테크는 계약이 만료된 이듬해인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에 하도급법 위반으로 한화를 제소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한화와 한화솔루션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법적 분쟁이 시작됐습니다.

공정위는 2019년 9월 한화가 에스제이이노테크의 기술자료를 유용해 제작한 스크린 프린터를 한화큐셀 말레이시아 법인에 출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화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82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관련 임직원 3명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해당 대구지검은 불기소 결정을 내렸고, 이후 항고와 재정 신청도 기각돼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1진 1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8월 열린 1심에서는 한화가 승소했습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가 한화 측에 전달한 승인 도면, 매뉴얼, 레이아웃 도면 등은 하도급법으로 보호되는 기술자료가 아니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정형찬 에스제이이노테크 대표는 법원의 판단에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정 대표는 “오직 대기업의 일방적인 주장과 특허수사자문관 의견만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1심 판결은 태양광전지 프린팅 기술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내린 판단으로 태양광 프린트 장비기술의 경험과 노하우를 인정하지 않고 경력직 기술자 몇 명만을 채용해 독자 기술을 개발했다는 한화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는 즉각 항소했습니다. 항소심은 지난 23일 열렸는데요.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에스제이이노테크 손을 들어줬습니다.

한화 측이 에스제이이노테크의 기술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다만 매뉴얼 첨부 도면을 제외한 기술자료는 특허에 의해 이미 공지된 기술이라고 보고 나머지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한화는 이번 판결에 불복하고 상고한다는 입장입니다.

한화는 “공개된 정보를 활용하고, 6명의 경력 직원을 채용해 자체 개발한 기술임을 사법 절차를 통해 여러 차례 확인 받았다”며 “이번 판결이 1심 등 종전의 사법적 판단과 상이하다”면서 상고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 측은 이번 판결에 만족하는 분위기입니다. 정 대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민사 소송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법원이 일부라도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이 의미가 있다”며 “이번 판결이 그동안 만연된 대기업의 기술탈취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재판부가 기술유용을 인정하면서도 개발비 15억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손해배상액으로 산정한 것은 문제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에스제이이노테크에 법률 지원을 한 재단법인 경청의 장태관 이사장은 “이번 판결은 대기업들이 대형 로펌을 선임해 시간끌기 소송으로 피해 중소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던 파렴치한 관행을 뿌리 뽑을 결정적 판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던 법원이 기술유용 배상액에 징벌적 배상 2배를 적용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때문에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어떤 결과로 나올지 재계의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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