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의 그래픽저널] ‘마이너스 유가’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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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의 그래픽저널] ‘마이너스 유가’의 패러독스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0.05.0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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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은 어떤 주장이나 주장에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결과를 낳는 것을 말한다. 패러독스(paradox) 또는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 거주하는 필자가 “서울 사는 사람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라고 하면 이율배반이 발생한다. 필자도 서울에 사니 지금 필자의 말 자체가 거짓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은 이런 논리적 모순을 찾는 것을 즐겼다. 재미있지만 부질없는 말장난을 파고 파다 보니 그리스 사람들은 철학을 만들었다. 철학뿐 아니라 경제에도 역설이 발생한다. 경제는 철학적 말장난과는 달리 먹고사는 것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케인즈의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절약과 저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오래된 삶의 교훈이었다. 그런데 이 경제적 행위가 수요를 위축시키고 성장을 억제하는 전혀 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의 학설이라는 것이 시대적 상황과 배경, 즉 가정이 필요하므로 항상 맞지 않는다. 즉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역설을 만들어내는 시작과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과정이다. 이 변화무쌍한 동태적 과정 즉 다이내믹스(Dynamics) 때문에 예기치 못한 결과는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 WTI 선물로 본 석유가 뭐길래

4월 21일 국제유가 WTI 선물이 역사상 초유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일반인은 이 뉴스를 들으며 무슨 물건 가격이 마이너스가 되느냐고 의아했고 경제 기사도 석유를 돈을 주고 팔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식으로 제목이 달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마이너스가 된 것은 석유의 가격이 아니다. 석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금융투자상품인 선물계약이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가상의 금융계약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편 갑자기 닥친 마이너스 국제유가의 의미와 전망을 놓고 전문가들은 갑론을박하고 있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WTI 선물의 역사와 석유 시장의 배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WTI 선물은 미국 금융시장에 상장되며 1983년 3월 시작됐는데 그 자체만으로 세계 석유 시장의 판도를 바꾼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는 두 차례의 석유 위기를 겪으며 석유 시장의 가격 조정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OPEC이 결정했었다.

미국에서 WTI 석유 선물시장이 만들어지고 북해산 원유 개발 후 1988년 런던에서도 브렌트유라는 이름으로 선물시장이 개설되며 석유 시장의 가격 조정권은 금융시장으로 넘어갔다. 선물시장은 상상으로 만들어지는 파생금융시장이므로 채굴량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선물시장 거래량이 현물의 10배에 이르면서 시장가격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물론 OPEC과 러시아 등을 포함한 'OPEC+'의 생산량 조정도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만 예전처럼 회의 테이블에서 결정되는 권한은 금융시장으로 넘어갔다.

이런 배경으로 생겨난 WTI 선물 유가는 파생금융상품답게 큰 변동성을 보였다. WTI 선물 유가는 1998년 배럴당 10달러 선에서 2008년 금융위기 전에 140달러를 넘으며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발발로 32달러까지 하락했다가 2011년 다시 110달러를 기록했으나 2014년 사우디가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셰일오일 고사를 위한 치킨게임을 시작하며 2016년 26달러까지 폭락했다.

이 폭락으로 큰 손실을 본 산유국 그룹, OPEC+는 2016년 생산량 감축을 위한 협상을 2020년 3월까지 이어왔고 글로벌 경제성장 영향과 함께 유가는 50~80달러를 유지하다가 이번 4월 21일 -40달러를 갑자기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전례가 없는 WTI 선물 유가의 마이너스 진입을 놓고 놀란 경제 전문가들은 세계적 경기 위축, 즉 디프레션(depression)을 경고하는 상황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WTI 유가 폭락으로 금융당국이 국제 유가에 기초한 금융투자상품인 ETF, ETN에 대한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아직도 시끄러운 독일 국채금리 DLF, 해외 무역금융 펀드에 투자한 라임 펀드에 이어 다시 한번 금융투자자는 고통이 예상된다.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금융소비자는 앞으로 유가가 더 떨어질 것인지 걱정이 태산일 것이다.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은 투자 세계에서는 모른다는 것을 '불확실(uncertainty)'이라고 하며 이 상태의 투자는 바보 짓이고 가장 나쁜 것으로 평가한다.

특히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최근 유가 변동성이 커지면 금융소비자가 혹할 수 있는 고수익·고위험 금융투자 상품이 출현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금융소비자가 유가에 대한 상황을 알고 독일 국채 DLF처럼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본 칼럼을 적어본다. 금융투자 피해 방지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세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인 석유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아주 필요하다. 또한 석유 시장을 이해하면 WTI 마이너스 유가가 의외의 결과, 즉 역설을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먼저 석유산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석유란 천연으로 생성되는 탄화수소 혼합물이며 광의로는 원유, 천연가스, 석유제품을 포함하고 협의는 천연가스를 제외한다. 석유의 용도는 수송용, 동력용, 가정·상업용 및 취사용, 원료용, 발전용으로 구분해볼 수 있는데 현대사회에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 석유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하는 재생에너지는 수송용, 발전용 일부만 대체 가능하며, 2040년까지도 석유 에너지는 절대적 영향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석유공사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은 1.7조 배럴, 채굴 가능 연수는 50년으로 추정된다. 매장량의 48%는 중동 지역에 치중해 있고 생산량 비중은 중동 34%, 북미 22%, 유럽과 러시아 19%이며, 소비는 아시아태평양 35% 북미 25%, 유럽과 러시아 20%으로 생산지역과 소비지역이 다른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세계 석유 시장의 대표적 가격지표는 WTI, 브렌트유, 두바이유로 구별된다. WTI는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를 기준으로 뉴욕선물거래소 NYMEX에서, 노르웨이, 북해산 원유인 브렌트유는 런던 상품 거래소 ICE에서 선물로 거래된다. 두바이유는 중동지역 생산 원유로 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고 OPEC 생산국과 직접적인 현물, 선도거래의 기준 가격이다. 한국 등 아시아가 주로 두바이유를 수입한다.

석유는 생산방법에 따라 전통, 비전통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비전통 석유는 전통적인 시추 외의 방식으로 채굴하는 원유이며 셰일오일, 오일샌드, 초중질유, 오일셰일, 타이트오일 등이 있다. 미국은 수평 분쇄(fracturing) 기술을 통한 셰일 혁명으로 2018년 석유 수출국으로 전환하며 단일 국가로는 최대 산유국으로 등극했다.

무엇보다 석유산업은 독특한 산업 구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석유의 공급을 증가하는데 소요되는 시간, 리드 타임은 5년에서 10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유의 탐사부터 개발, 시추, 채굴까지 막대한 장비와 자금이 소요되고 시추 성공률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유산업은 가격 변화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고 유가는 가격 변동 폭이 큰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렇게 긴 리드 타임 때문에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 쉽지 않아서 시장점유율 선점과 유지가 중요하므로 생산비가 낮은 산유국이 저가의 치킨게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장 저렴한 생산비를 보이고 셰일 오일은 생산비용이 높다. 최근처럼 20달러의 유가가 장기간 유지될 경우 신규 탐사나 석유 개발사업은 채산성이 없어 지연되고 특히 미국 세일오일 산업은 부실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코로나19 기업 지원 패키지에서 셰일오일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다음 석유산업을 둘러싼 몇 가지 이슈를 알아야 하는데 먼저 석유는 국제 정치와 안보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1, 2차 석유 위기를 통해 중동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미국, 러시아 등 선진국의 석유 안보 전쟁과 이슬람 세계의 수니파, 시아파 사이의 종교 분쟁이 복합 작용하며 중동분쟁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정학적 불안정으로 유가와 세계 경제 변동성은 증가하고 있다.

또한 석유를 통한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는 미국에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1971년 달러의 금 태환 폐지 후 원유 결제 수단으로 사우디가 달러를 지목한 후 달러는 세계 원유시장의 주요 결제 수단이다. 그 대가로 사우디는 미국 석유회사 아람코를 장부가에 인수할 수 있었고 지정학적으로 불안한 중동에서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적 보호를 받고 있다.

한편 사우디가 벌어들인 오일 머니는 미국의 군수 물자와 미국 국채 매입에 주로 쓰이며, 달러는 다시 미국경제가 회수하는 글로벌 달러 순환구조를 만들었다. 이 시스템으로 달러는 석유를 통한 가치 안정으로 세계 거래 통화 지위를 유지하며, 미국은 지폐 발행 이득(시뇨리지)을 얻고 있고 달러 발행국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월한 지위도 갖고 있다.

또한 석유 시장은 현물거래보다 선물거래라는 금융시장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슈이다. 이미 얘기한 것처럼 1983년 상장된 WTI 선물이 세계 원유시장 지표 역할을 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생산의 OPEC과 금융시장을 가진 미국, 런던이 석유 시장의 지배력을 양분하고 있으나, 미국이 셰일 혁명과 국제에너지기구인 IEA를 통한 전략적 석유 재고 조정으로 우월한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이슈는 석유산업과 금융시장의 연관성이다. 산유국은 석유 판매로 대량의 수입이 발생하며 이것이 바로 오일머니다. 쉽게 버는 탓인지 산유국 대부분 석유 수입의 재정 의존도가 높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의 재정의존도는 65% 이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일머니로 사우디 등 주요 산유국은 미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국제 금융 시장에 국부펀드를 통해 직·간접 투자 하는 한편, 글로벌 산업의 수요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석유 시장은 국제금융 시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는데 저유가 지속 시 산유국 재정 악화로 해외 달러 자산과 투자 자금이 회수되는 경우 국제 금융시장은 불안해지고 외환 안정성이 취약한 신흥국은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유가 하락은 중동 수출 위축으로 인해 세계경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석유와 글로벌 경제는 하나의 산소통을 메고 심해에 들어간 다이버와 같다.

◆ 석유시장의 역설로 본 다음 시나리오

이제 석유산업의 구조와 이슈를 이해했으면 지난 4월 21일 WTI 선물시장에서 마이너스 유가가 왜 발생했는지 알아보자. WTI 선물은 만기일에 현물 인도가 필요한 금융계약이다. WTI 선물 거래자는 현물 보유를 원치 않는 투자자가 대부분인데 만기 전에 팔거나(청산) 다음 달 선물로 대체(롤 오버)가 필요하다. 주로 롤 오버는 금융상품의 만기가 남은 ETF나 ETN 등이 한다.

이런 가운데 갑자기 석유 시장의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다. 전 세계 석유 수요는 약 '1억 배럴/일'로 추정되지만, 코로나19 위기로 25~30% 수요가 감소했다. 이 석유 수요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OPEC+와 주요 산유국은 생산을 20% 내외 감축할 예정이나 수요 감소분 대비 공급 감축이 부족해서 초과 공급 상황이다.

초과 공급으로 원유 재고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저장설비 부족으로 석유의 보유 비용은 상승했다. 보관 비용을 높인 재고 증가의 원인은 바로 코로나19 영향에 의한 석유 수요 감축이다. 재고 증가로 매주 5천만 배럴의 저장공간이 필요하지만, 현재 저장능력은 6월 말 모두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WTI 만기일 전에 당일 청산을 받아 줄 매수가 실종되었다. 4월 초 가격 급락으로 저가매수가 유입한 석유 관련 ETF, ETN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지금 6월 만기 물 가격은 1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으나 석유 수요감소가 지속하면 5월 선물 만기일에 유가는 다시 마이너스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4월 초 저가 매수한 투자자들은 이미 상당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석유 시장 역설을 들려주기 위해 아주 긴 해설이 필요했다. 이제 마지막 단계다. 유가가 마이너스까지 추락한 경험이 있는 석유 시장은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이미 설명한 석유산업 구조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만들어보자. 석유의 고유가가 지속되면 이윤 동기의 생산량, 생산설비가 증대된다. 비싼 석유제품의 수요는 감소하고 고유가로 석유 대비 경쟁력이 생긴 대체 에너지 개발이 가속된다. 이러한 산업 상황은 과잉 설비와 과잉 공급을 만들고 장기적으로 유가는 하락한다.

반대로 저유가가 지속되면 싸진 석유제품의 수요는 증가하고 경쟁력이 약화한 대체 에너지는 개발이 제한되며 영업손실로 생산설비는 감축된다. 결국 수요 대비 생산설비가 부족하고 석유산업은 구조적인 생산설비 증가 지연이 발생하며 유가는 단기 급상승(오버 슈팅)하는 사이클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는 아주 심각한 후자 상황이다. 유가의 하락이 역사상 유례없이 급격하고 깊게 추락했고 석유 수요 감소 원인인 코로나 19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아직 생생하다. 셰일 오일을 비롯한 세계 석유 공급능력은 심하게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회복되고 글로벌 산업활동이 재개될 경우에도 석유산업은 저유가로 폐쇄된 석유 설비 재가동 지연으로 상당기간 공급 부족이 발생한다. 석유 설비를 폐쇄하기는 쉽지만 공급을 증가시키기에는 천문학적인 노력과 자금이 소요된다. 이런 이유로 2021년에는 배럴당 60달러 이상의 유가 상승이 기대된다. 즉 지금의 마이너스 유가로 걱정할 것은 저유가로 인한 디프레션(경기둔화)보다는 코로나19 위기 이후의 고유가 시대라는 것이다.

독자가 역설을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앞서 말한 석유산업에 대한 해설을 모두 따라온 독자만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석유 시장과 세계 경제가 벌이는 다이내믹스는 복잡하고 이해에 인내가 필요하지만 산업 측면이나 금융 측면에서 너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국제 지정학을 이해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같은 방 안에 있는 파리와 개가 방안의 전경을 보고 뇌가 인지하는 것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기억난다. 뇌가 대상을 인지하는 만큼 세상을 해석한다는 것으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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