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와 ‘슬기로운 의사생활’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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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와 ‘슬기로운 의사생활’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0.06.11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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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했다. 많은 금융소비자가 금융회사의 금융상품 판매직원에 전적으로 의존해 금융상품에 가입하며, 금융상품의 성과가 좋지 않을 경우 사람을 잘못 만난 것을 탓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금융회사는 공적 기관이 아니며, 금융상품 판매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난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에 금융소비자의 책무라는 조항이 생기면서 이제는 금융소비자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금융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은행이나 증권회사 등 금융투자상품 판매회사에 가서 금융상담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가입 절차에 지칠 수밖에 없다. 약 30분 이상 걸리는 수많은 설명과 서류 기록 과정을 거치면서도 사실 왜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금융회사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당연히 법적으로 필요한 과정이라고 하니 듣고 쓸 뿐이다.

◆ 친절한 상담? ‘슬기로운 의사’는 잊어라

요즈음 인기를 모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그동안의 의학 드라마는 숨가쁜 의료 현장에서 권위적인 의사가 놀라운 의학상식으로 생명을 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슬기로운 의사들은 전혀 다르다. 감성적이고 자상하며 스마트하다. 무엇보다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의사가 환자에게 수술과 진료 과정의 이유와 의미를 알기 쉽고 자상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소재나 스토리가 드라마틱해서 드라마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점은 아마 모든 환자가 의사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금융현장에도 적용된다. 금융소비자는 금융상담 과정의 의미와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용어를 알기 쉽고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것을 원할 것이다.

필자가 고객상담에 입문하던 1990년 초에는 고객 관련 서류는 직원이 작성하는 것이 서비스였고 관례였다. 금융상담도 신뢰의 눈빛 교환으로 완성됐던 시절이다. 금융 서류가 너무 어렵고 설명하다 보면 많은 시간이 지체되니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효율성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금융이 호시절이던 시절에 양쪽의 이해를 충족하는 금융상담의 생략과 금융 서류 대필은 하나의 서비스였다.

그러나 90년 후반부터 외환위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금융시장 동요가 빚어지며 금융상품의 손실이 자주 발생하기 시작했다.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사이의 소송전에 ‘대필’과 ‘설명 의무’가 화두가 되면서 금융상담은 길고 어려워졌고 그 동안의 관행들은 금지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커지면서 금융상담 과정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결국 금융시장의 부침이 심해지며 금융상담은 금융회사 판매직원과 금융소비자 모두에게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금융은 시시각각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다. 금융상품 판매직원은 수개월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고 나서야 금융상품판매가 가능한데, 사전 교육이 거의 없는 대부분의 금융소비자는 진화하는 금융상담의 내용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내용도 어려운 금융상담을 무엇 때문에 하는지 금융소비자는 모르기 때문에 금융상담의 필요성에 대해 의심과 오해가 쌓인다.

아마 가장 많은 오해는 이 불편한 금융상담의 목적이 첫째는 금융회사가 다른 상품을 추가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금융상품에 손실이나 환금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한 소송용 서류를 징구하는 절차라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용도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 ‘최적 투자점’을 찾아가자

금융소비자보호법은 물론 이전부터 적합성, 적정성, 설명 의무 원칙을 기준으로 금융상담을 반드시 하도록 법은 규정하고 있다. 왜 금융상담은 필요한 절차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금융상담은 금융소비자에게 (적어도 현재 과학적 결론으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법적 강제로 시행하는 것이다.

금융상담 과정의 필요성은 현대 투자론 교과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1990년 샤프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마코위츠의 포트폴리오 투자이론 또는 분산투자이론이 그 과학적 근거이다. 마코위츠는 이 공로로 현대 투자론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필자가 가진 최운열이 지은 '투자론'은 관련 내용이 수학적 표기를 포함해서 150쪽 정도 되는 분량이니 투자론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그런 근거가 있다는 정도로 들어두면 좋겠다.

현대 투자론은 금융이라는 경제활동을 위험과 기대수익률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한다. 경제학 관점에서 사람들은 가장 큰 효용을 얻기 위해 소비를 하는데 이것이 소비자 효용이론이다. 이러한 금융의 소비 행동을 기대수익률과 위험을 축으로 표시한 2차원 평면에 표시하면 우상향하는 효용곡선이 나타난다.

영화 속 조커를 제외한 정상적인 사람은 위험이 증가하면 그 보상으로 높은 기대 수익률을 바라기 때문이다. 같은 기대 수익률에 대해 감수하는 위험의 크기에 따라 사람을 위험 선호(risk-lover)형, 위험 회피( risk-averter)형으로 구분 가능한데(펀드 투자설명서에는 사람들의 위험 성향을 매우 높은 위험부터 6단계로 구분한다), 이것은 상담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또한, 사람들은 소득과 자산 상황에 따라 자본의 배분선을 가진다. 이 직선은 가진 투자금을 100% 주식 등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점을 중심으로 대출받아서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경우와 여유 소득의 일부만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를 나타낸다.

앞의 두 가지 이론에 추가로 위험자산의 투자 가능 패키지를 표현하는 투자 가능 곡선을 도입하고, 이 세 가지 이론의 선이 같은 기울기로 접하는 점을 ‘최적 투자점’으로 정의하며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투자 상태라고 마코위츠는 제안한다. 즉 개인의 위험에 대한 태도와 자산, 소득 상태 그리고 금융시장의 투자 가능한 금융투자상품의 상태를 고려해서 최적 포트폴리오를 찾는 과정이다. 한편, 이 전체 과정을 구현한 금융상담을 통해 금융소비자는 최적 투자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복잡한 금융상담과 가입 과정은 주로 금융소비자에게 필요한 과정이다. 왜 필요한지를 이해했으면 앞으로는 금융상담 과정을 불편하게 생각 말고, 오히려 금융상담 과정이 빠짐없이 정확하게 진행되는지 금융소비자가 점검하며,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기를 바란다. 또한 이것이 금융소비자의 책무라는 것도 알아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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