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에 대한 향수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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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에 대한 향수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0.05.29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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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시작한 미-중 무역 분쟁이 세계 경제에 깊은 주름을 남겼다. 2020년 1월 일단락하는가 싶더니, 2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고 대량 사망자가 발생하며 세계 경제는 크게 동요했다. 5월 들어 주식시장은 정지했던 경제활동의 재개와 백신 개발 희망으로 2월 폭락을 90% 이상 만회하기도 했으나, 미국 행정부가 중국과 다시 전면전 의지를 연일 과시하며 금융시장에 잠재한 위험은 커졌다.

또한, 경제활동 재개 후 코로나19가 재확산할 경우 충격은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전문가는 경고한다. 전 세계 구석구석 위험 발생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하다. 많은 사람이 안전(safety)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시점이다.

◆ ‘안전’의 가치 높이 평가할 때

금융시장의 대표적 자산을 손꼽으라면 주식, 채권, 외환, 석유 그리고 금을 들 수 있다. 금융자산은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금융투자론에는 금융자산 선택 행위가 인간의 위험에 대한 속성 즉 위험 선호형(Risk-Lover)인지 또는 위험 회피형(Risk-Averter)인지에 근거를 둔다.

위험에 대한 인간의 속성 파악이 투자 결정 과정의 80~90%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이 위험 성향 구분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람은 항상 위험을 경계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금융투자론은 전제한다. 모든 인간은 위험을 싫어하고 회피한다.

최근 금융소비자 문제와 관련해 많은 관심을 받는 행동경제학은 손실의 부정적 가치를 같은 크기의 이익의 가치보다 더 크게 측정하기도 한다. 물론 절벽 끝이나 한계를 넘는 스피드가 좋다는 익스트림 스포츠 애호가인 독자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금융은 한 마디로 위험을 다루는 분야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화폐와 교환 가능한 금융자산 중 위험을 가장 완벽하게 방어하는 자산은 단연 금일 것이다. 도처에 위험이 가득한 시대인 만큼 오늘은 위험 방어를 위한 팁(tip)으로 금에 관해 얘기를 해보자.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금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주는 곳은 세계금위원회(world gold council. 이하 WGC)이다. 마침 이곳에서 코로나19 이후의 금 가격의 전망 보고서를 내놓았다. 금에 대한 2020년 전망 등 또 다른 WGC의 보고와 함께 안전 자산, 금에 대해 정보 제공 차원에서 정리할 생각이다.

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돌 때부터 금을 선물할 만큼 금은 기원전 약 5000년부터 독특한 색과 불변성, 희소성의 특성으로 인류의 사랑을 넘어 탐욕의 대상이었다. 먼저 뉴욕시장 선물가격 기준으로 금 가격의 추세를 보자.

국제적으로 금 가격은 온스(1온스는 0.02835kg, 약 7.6돈)라는 단위를 기준으로 사용한다. 금 가격은 1980년 초 이란혁명과 2차 석유 위기 이후 온스당 1000달러를 찍고 2000년 닷컴 버블 전 250달러까지 하락했다가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재정 위기 무렵 1900달러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후 2016년 1000달러까지 하락했다가 2018년 이후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 증가, 최근 코로나19 위기 영향으로 금 수요가 증가하며 1700달러를 돌파했다.

금 가격의 변동이 크지만 대체로 금 가격은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달러가 금과 관계(금본위제)를 완전하게 결별하고 국제 자유 변동 환율 체제가 도입된 1976년 무렵보다 지금의 금 값은 약 40배 상승했다. 이것으로 시간이 갈수록 위험의 빈도와 수위가 높아지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겠다. 과거 달러 금본위 체제에서 금 가격을 30~40달러 선에서 고정하려고 했는데 뒤돌아보면 부질없는 짓이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2019년 말 전 세계 황금은 약 19만7000톤이고 가치로는 9.6조달러에 이른다. 금은 소멸하지 않는 금속으로 이 규모는 인류가 캐낸 모든 금의 총량이며 올림픽 경기 전용 수영장 규모라고 한다. 2019년 인류는 연간 약 4700톤의 금을 생산하고 약 4400톤의 금을 사용했다. 사용처 대부분은 장신구와 가치저장, 산업 소비 수요이지만 최근 세계 경제의 위험증가로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금 투자 ETF 등의 금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WGC 보고서에 의하면 금 가격은 전략자산 측면에서 경제성장과 위험 및 불확실성의 변수에 영향을 받고 기술적 측면에서 기회비용과 모멘텀(추세)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성장은 금의 보석류 등 소비 수요와 산업 수요, 장기 저축 수요를 지지하고 위험과 불확실성은 안전자산인 금의 매력을 부각한다. 기회비용은 채권, 통화 및 다른 자산 가격의 영향으로 금에 대한 투자자 태도를 결정하며 추세, 모멘텀은 국제 자금흐름과 포지셔닝, 가격 추세로 금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 ‘GA 딜레마’에 깊어지는 향수

WGC는 2020년 연간 전망에서 금융 및 지정학적 불확실성과 결합한 저금리가 안전자산 금 투자수요를 확대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분석했다. 미-중 신냉전, 미-이란 충돌 등 점증하는 글로벌 지정학적 위험과 코로나19의 충격 등으로 발생하는 불확실성 때문에 망가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은 무제한 통화 공급과 이에 대응하는 사상 초유의 저금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금은 이자, 배당 등 미래 현금흐름을 만들지 못하는 자산이다. 유일한 무기는 제로의 신용위험과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이다.

현재 전 세계 많은 국채의 명목금리가 네거티브인데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금리를 고려하면 마이너스금리 국채는 70%에 달한다. 사실상 금의 기회비용은 거의 사라졌고 오히려 마이너스금리 국채와 비교해 (+) 보유이익(positive cost of carry)을 시현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실질 금리 마이너스 채권 양과 금 가격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역사적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2020년은 물론 앞으로 상당한 기간 FED를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할 전망이다. 즉 금 가격에는 아주 우호적인 환경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위기로 안전자산인 금의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다. WGC는 5월, 영국 옥스퍼드 경제연구소의 코로나19 영향보고서에 근거하여 금에 대한 영향을 분석했다. 신속한 회복(swift recovery), 미국 기업 위기(US corporate crisis), 신흥국 위기(EM downturn), 심각한 경기침체(deep recession) 네 가지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한 WGC의 추정에서 신속하게 경제가 회복할 경우 2020년 금 가격은 40% 상승하고, 심각한 경기 후퇴가 올 경우 2020년 금 가격은 70~80% 상승하며 2023년까지 상승세가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사실 대부분의 가격 추정 모델은 틀리는 경우가 더 많으니 구체적 수치보다는 추세를 보기 바란다. 가격은 원래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유의할 것은 우리 주변의 위험 발생이 빈번하고 그 수위가 높아질수록 안전자산 금을 더 매력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과거 달러가 금본위제였던 시절에 미국의 골칫거리로 알려진 딜레마가 있다. 세계교역의 확대 속에서 기축 통화인 달러는 거래에 필요한 화폐 수요 증가로 인해 국제수지의 적자와 달러 가치 안정화를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다는 ‘트리핀의 딜레마’가 그것이다.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관련해 지금도 등장하는 용어인데 더 자세한 것은 골치 아프니 알려고 하지 말자. 그러나 지금은 또 다른 달러의 딜레마가 미국 이외의 세계 경제를 괴롭힌다. 미국의 세계 경제체제 훼손과 지정학적 충돌 촉발로 세계 경제에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오히려 달러, 미 국채를 투자자는 안전자산으로 인식하며 자금이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세계 경제는 물론 미국에 위기가 발생하고 이 해결을 위해 미국이 통화를 무제한 발행할수록 미국은 더 많은 시뇨리지(화폐발행이익)가 생긴다.

더불어 미국의 금융자산 가격은 지속 상승한다. 그러나 이 위기의 후유증을 부담하는 기타 국가들은 불이익을 받고 일부 국가들의 불만과 함께 발생하는 지정학적 충돌로 세계 경제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필자는 이것을 트럼프가 좋아하는 구호 ‘위대한 아메리카(Great America)’의 약자를 붙여 ‘GA 딜레마’라고 부르고 싶다.

이러한 세계 경제 구조의 변화도 안전자산 금 가격에 우호적 환경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삶에 예기치 않은 위험이 계속되며 블랙스완과 항상 공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류의 황금에 대한 향수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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