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60년대 이름 ‘한경협’으로 바꾼다고 정경유착 끊을까 [사자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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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60년대 이름 ‘한경협’으로 바꾼다고 정경유착 끊을까 [사자경제]
  • 이광희 기자
  • 승인 2023.08.2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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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만에 명칭 변경, 류진 회장에 김병준은 고문으로… 내부통제 ‘윤리위원회’ 거수기 우려

[사자경제] 각주구검(刻舟求劍). 강물에 빠뜨린 칼을 뱃전에 새겨 찾는다는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뜻하는 사자성어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입니다.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게 경제 이슈마다 네 글자로 짚어봅니다.

류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임 회장이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전경련
류진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임 회장이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전경련

‘이정림, 김용완, 홍재선, 유창순, 김각중, 손길승, 강신호, 김병준’

위에 나열된 인물의 공통점은 뭘까요.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음 인물도 포함됩니다. ‘이병철, 정주영, 구자경, 최종현, 김우중, 허창수’.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기업의 전·현직 총수들이라고 하기에는 유창순 전 국무총리와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빠져야 합니다. 정답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줄여 전경련이라 부르는 경제단체의 회장(직무대행 포함)을 지낸 이들입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이 55년 만에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꾸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새 회장으로 공식 선임했습니다. 한경협은 1961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당시 삼성물산 사장)가 만든 경제단체와 이름이 같습니다. 박정희 군사정부가 산업정책에 협력할 것을 요구하면서 탄생한 조직이 한경협입니다.

한경협 명칭은 다음 달 산업통상자원부가 정관 개정을 승인한 뒤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류진 회장은 지난 22일 임시총회와 함께 열린 취임식에서 “G7 대열에 당당히 올라선 대한민국을 목표로 삼겠다”라면서 “글로벌 무대의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이 기업보국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며, 앞으로 출범할 한경협이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누리꾼들은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새 출발을 해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사진=뉴스웰DB
누리꾼들은 전경련이 한경협으로 새 출발을 해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사진=뉴스웰DB

류 회장은 그러면서 “어두운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잘못된 고리는 끊어내 신뢰받는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나기 위한 첫걸음으로 윤리위원회를 신설한다”라며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분을 위원장과 위원으로 모시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전경련을 끊임없이 쫓아다니는 정경유착을 차단하기 위해 내부통제 시스템인 ‘윤리위’ 설치를 정관에 명시한 것입니다.

하지만 윤리위원회가 단순 거수기로 전락하거나, 오히려 정경유착 과정에서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여기에 직전까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을 맡은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상근 ‘고문’으로 남으면서 세간의 의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김 고문에게는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때문입니다.

한편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한경협이 흡수 통합하면서 한경연 회원사들을 넘겨받게 됩니다. 이에 따라 4대 그룹(삼성·SK·현대자동차·LG)은 일부 계열사가 형식상 회원사로 합류하는 방식으로 한경협에 가입했습니다. 전경련 탈퇴 이후에도 한경연 회원사로 남아 있던 4대 그룹의 계열사는 모두 16곳입니다.

그룹별로는 ▲삼성 계열사 5곳(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SK 4곳(SK㈜·SK이노베이션·SK텔레콤·SK네트웍스) ▲현대차 5곳(현대차·기아·현대건설·현대모비스·현대제철) ▲LG 2곳(㈜LG·LG전자)입니다. 다만, 이 가운데 삼성증권은 합류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협약사가 아니어서 통합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에 따른 것입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협약사가 아닌 삼성증권은 전경련 후신인 한경협에 합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진=삼성증권
삼성준법감시위원회 협약사가 아닌 삼성증권은 전경련 후신인 한경협에 합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진=삼성증권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누리꾼들은 한경협이 출범해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 물음표를 던지고 있습니다.

“껍데기를 바꾼다고 알맹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보나 마나 또 정경유착의 본부가 되겠지” “사면 감형 이런 것들 때문에 정경유착 국정농단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름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지금도 정권에 아부하는 리포트나 내면서 이름 바꾼다고 정경유착이 없어지나” “또 또 또 정치권과 권력에 아부하려는 압력단체가 생겼네. 피는 못 속인다” “될지 모르겠지만, 외압 차단 장치는 만들었는데... 자기들의 돈을 이용한 정치권 로비 방지책은?”.

“동종업계의 상인들이 모이는 것은 매우 드물지만, 모였다 하면 음모를 꾸민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의 형성과 그 본질에 관한 연구>(국부론)에서 문제 삼은 것 가운데 하나가 ‘독과점’입니다. 이 낱말과 ‘재벌’은 서로 묶여 대한민국 경제사의 대부분을 이어왔습니다. 한경협이 과거 재벌들의 나팔수였던 전경련에서 벗어나, 개과천선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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