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돈, 잠들지 못하는 당신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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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않는 돈, 잠들지 못하는 당신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4.2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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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단일한 실체이다. 돈은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을 선사하는 사랑과 같은 반열이고, 인간에게 무한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죽음과 같은 선상에 있다.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불확실성의 시대』 저자)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머니(Money)라는 말은 로마 신화의 여신 유노의 별칭인 모네타(Moneta)에서 유래되었다. 금융투기의 역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패닉은 신의 이름인 판에서 유래되었다. 돈이 뭐길래 돈이 전혀 필요 없을 듯한 신들과 연관된 걸까. 사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온갖 기쁨과 탄식 가운데 돈이 함께 얽히지 않는 경우도 드물다. 최근의 2차 전지 투자 열풍이나 SG증권발 느닷없는 주가 폭락도 결국은 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이다.

돈은 잠들지 않는 속성이 있다. 사람이 잠자는 동안에도 돈은 스스로 증식한다. 그런데 잠들지 않는 돈이 결국 사람까지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전세계에 개설된 자본시장에서 시시각각으로 오르내리는 시세 변동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코로나 이후 대거 등장한 서학개미들이 요동치는 해외 증시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는 얘기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오래전에 개봉된 영화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는 영화 내용보다 부제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딸꾹질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발작에 가까운 최근의 주가 변동들을 보노라면 <머니 네버 슬립스>가 아니라 <매니 네버 슬립스>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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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도 역동성 측면에서는 세계 그 어떤 증시 못지않다. 이번 주 증시가 열리자마자 하한가로 직행한 8종목의 격렬한 소용돌이를 보노라면 공포의 도가니가 따로 없다. 그 잘나가던 주식들이 왜 갑자기 낭떠러지로 급전직하하고 있을까. 필시 무슨 대규모의 금융 범죄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 주식들은 최근까지 너무나 오랫동안 아주 잘나갔다. 증시 전체가 심하게 출렁거릴 때조차 철갑을 두른 듯 꿋꿋이 오르기를 거듭한 끝에 <52주 신고가 경신 종목 리스트>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다들 그 종목군의 화려한 비상에 눈을 떼지 못했지만, 정작 그 주식들의 상승 원인은 뚜렷이 밝혀진 게 없었다. 이유 없이 오르는 게 더 무섭다는 말도 있지만, 이토록 처절한 폭락을 잉태하고 있었다니 세상사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어렵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워런 버핏과 함께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99세의 찰리 멍거(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 할아버지는 어리석은 투자자들을 연못 속의 오리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 까닭 모를 주가 상승 때문에 우쭐해진 투자자들에게는 탐탁잖게 들리겠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임엔 틀림없다.

“당신이 만약 연못 속의 오리라면, 폭우가 쏟아지면 점점 위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올라가는 것은 연못의 물이지 당신이 아니다.”

연못의 물이 쫙 빠지고 나면 들뜬 오리들은 원래 자리로 내려오기 마련이다. 워런 버핏은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이 무분별하게 투기에 가담하는 모습을 수영복도 입지 않고 수영장에 뛰어드는 장면에 비유한 적이 있다. 수영장에 물이 다 빠졌는데 수영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우글거린다면 그보다 민망한 일도 없을 듯하다. 주가는 장기적으로는 펀더멘털에 수렴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온갖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일 때도 많다. 헝가리 태생의 전설적인 투자자였던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말대로, 펀더멘털과 주가와의 관계는 산책에 나선 개와 주인의 관계와 몹시 닮았다. 개는 산책 중일 때는 주인이 곁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갖가지 대상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봤을 때 주인이 저만치 떨어져 있으면 황급히 되돌아온다. 주가가 꼭 그렇다. 주가는 펀더멘털(주인)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수가 없다. 산책이 끝나면 개는 언제나 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여기서 잠시 눈을 돌려 우리가 최근에 경험했던 가까운 과거를 되돌아보자. 너무 먼 과거까지 들춰낼 필요는 없다. 딱 지난 ‘1000일’ 동안의 주가 흐름만 되돌아보자. 저 극심한 요동과 부침이 진행되는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기업과 사람들의 ‘목숨’이 간당간당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아찔한 느낌마저 든다. 저 그림 속에는 ‘탐욕과 공포’라는 상투적인 용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인생 전체가 달린 문제들(햄릿이 말한 대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자주 제기되었음이 틀림없다.

1000일 동안의 증시 흐름. /이미지=오인경
1000일 동안의 증시 흐름. /이미지=오인경

​돈 때문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담긴 이야기만 하더라도 ‘돈’ 때문에 ‘피와 살’을 얼마만큼의 무게로 도려내야 하는가를 따지지 않던가. 베니스와 그리 멀지 않은 도시인 피렌체에 살았던 단테는 그의 작품인 『신곡』에서 '돈' 때문에 온갖 다양한 죄악(절도죄, 사기죄, 횡령죄 등등)을 저지른 나쁜 인간들이 온갖 다양한 스타일의 지옥 속에서 얼마나 끔찍한 형벌로 고통받고 있는가를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단테는 지상에서의 범죄가 운 좋게 죽을 때까지 덮어져 드러나지 않는 요행을 누린다 해도 결국 삶이 끝나는 그 너머에서부터 시작되는(never ending) ‘지옥에서의 가혹한 형벌’을 반드시 받게 될 것이라고, 그것이 신의 섭리라고 말한다. 그러니 죄짓고 살지 말라는 얘기다.

셰익스피어.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셰익스피어.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의 주인공인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는 ‘탐욕’ 때문에 결국 감옥에 간다. 그는 ‘탐욕은 좋은 것이다’란 제목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노련한 투자가이다. 그렇지만 오랜 형기를 마치고 그가 감옥 문을 나설 때 이 세상에서 반겨주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보란 듯이 재기하기 위하여 딸과 사위 될 사람마저 속이지만, 결국 나중엔 돈보다 더 소중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액의 돈을 포기한다.

‘돈’에 관한 철학에 있어 참고할 만한 훌륭한 결론은 워런 버핏의 견해를 차용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돈을 사회에 돌려줘야 할 수많은 보관증이라고 본다. 이 작은 종이 조각들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원하기만 한다면 만 명쯤의 노동력을 고용하여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매일 내 초상화만 그리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GNP(국민총생산)는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상품의 유용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만 명의 노동력을 고용하여 AIDS 치료약을 개발하도록 하거나 교사나 간호사로 활동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보관증을 별로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물질적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그 보관증은 아내와 내가 죽은 후에 전부 자선단체에 기부될 것이다.

돈의 철학. /사진=오인경
돈의 철학. /사진=오인경

<월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또 다른 문제 한 가지는 ‘탐욕과 공포’ 그리고 ‘극심한 변동’에 대한 대처 방법인데, 그 점에 관해서라면 월가의 위대한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한테서 얼마든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뛰어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의 여부는 당신이 투자에 투입하는 지식과 노력 그리고 투자 도중에서 만연하는 어리석은 주식시장의 가격변동에 있을 것이다. 시장의 움직임이 더 어리석을수록 실제 투자에서 더 많은 투자 기회가 있다. Graham을 따르라. 그러면 당신은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그것에서부터 이익을 얻을 것이다.(워런 버핏)

​기본적으로 가격변동은 진정한 투자가에게 있어 오직 한 가지 중요한 의미만을 갖는다. 그것은 가격이 급격히 하락했을 때 현명하게 사고, 엄청나게 상승했을 때 현명하게 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벤저민 그레이엄)

​이번 주의 격심한 주가 변동을 보면서 월스트리트의 오래된 격언 가운데 두 가지가 다시금 생각났다. 욕심 많은 돼지에 관한 유명한 격언은 <머니 네버 슬립스>라는 영화에서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자막’으로 등장하여 깜짝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두 번째 격언이 어쩌면 요즘 시국에 훨씬 더 실감 날지 모르겠다. 회의 속에서 자라나 난관 속에서 성숙해 행복에 도취한 주식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증시에 넘쳐나는 듯했는데, 어느새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으니.

“황소나 곰은 돈을 벌지만, 돼지는 도축당할 뿐이다.”

“강세장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고 낙관 속에서 성숙해 행복감 속에서 사라져간다.”

​이래저래 올해 사월도 잔인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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