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가슴속의 동거인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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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 가슴속의 동거인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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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우리에게 꺼내 보였다. 그것도 딱 한 번!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은유는 오늘날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원리'로까지 격상됐다. 스미스에 따르면, 경제 주체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통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합리적인 가격 형성'이다. 가격이 왜곡되면 시장 경제 체제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독과점의 폐해를 극구 강조하기에 이른다. 동업자들은 담합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동업자들은 오락이나 기분전환을 위해 만나는 경우에도, 그들의 대화는 공중에 반대되는 음모나 가격 인상을 위한 모종의 책략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거의 없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애덤 스미스. /사진=픽사베이
애덤 스미스. /사진=픽사베이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의 저자로 유명하지만, 사실인즉 그의 전공 분야는 '도덕 철학 강의'였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쓴 슘페터는 『국부론』이 매우 중요한 저작임을 인정했지만, 성공 요인에 대해서는 불만 섞인 평을 남겼다. "스미스의 분석은 깊지 못했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웠고, 스미스의 주장은 모호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해서 역설적으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릴 수 있었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사진=오인경
‘국부론’과 ‘도덕감정론’. /사진=오인경

​『국부론』보다 훨씬 더 심혈을 기울여 쓴 『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가 강조한 핵심 개념은 '공감'과 '공정한 관찰자'를 통해서 전개된다. '공정한 관찰자' 또한 보이지 않는 손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가상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설명이야말로 『도덕감정론』에서도 핵심이므로 해당 원문 내용을 축약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가슴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

​그것은 이성(理性), 천성(天性), 양심, 가슴속의 동거인(同居人), 내부 인간, 우리 행위의 재판관 및 조정자(調整者)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우리 내심의 가장 몰염치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처럼 수치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정당한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방관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 방관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애(自愛)에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不正)의 추악성, 우리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우리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 방관자이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이 짧은 대목 속에는 실로 인간의 도덕감정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이지 않는 가슴속의 동거인'은 '보이지 않는 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인간에게 내재한 도덕감정이 바로 양심이다. 까마득한 옛날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키케로의 『의무론』에서부터 칸트가 쓴 『실천이성비판』에 이르기까지, 인류 사회를 보다 살 만한 세상으로 이끄는 핵심 원리가 도덕감정이다. 『도덕감정론』(1759년)이 출간되고 정확히 100년 뒤에 출간된 『종의 기원』(1859년)에서도 애덤 스미스가 설파한 도덕감정의 중요성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도덕철학을 다룬 책들. /사진=오인경
도덕철학을 다룬 책들. /사진=오인경

​"제아무리 복잡한 방식으로 이 감정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서로 도와주고 지켜주는 모든 동물에게 고도로 중요한 것의 하나이기 때문에 자연선택에 의해 증가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동질적인 성원을 최대로 가지는 공동체가 가장 번영하고 최대수의 자손을 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 다음 명제는 고도로 개연적이라고 생각된다. 즉 부모와 자식의 애정을 포함해 현저한 사회적 본능이 풍부한 동물이라면, 어떤 동물도 그 지적인 능력이 인간과 같거나 혹은 그에 가까운 정도까지 발달하면 당장 도덕감각, 혹은 양심을 획득할 것이다." (찰스 다윈)

찰스 다윈. /사진=픽사베이
찰스 다윈. /사진=픽사베이

​애덤 스미스가 '국가의 경제와 부'에 관해 쓴 국부론에서 자유로운 경쟁, 즉 '시장의 원리'를 주장했다고 해서 자칫 『꿀벌의 우화』를 쓴 맨더빌과 같은 인물로까지 비치는 건 애덤 스미스에 대한 크나큰 착각에서 비롯된 오해일 뿐이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쓴 스티븐 핑커는 일련의 도덕적 감정들(좋아함, 노여움, 감사, 동정, 죄의식, 수치 등)을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한 바 있다.

​'노여움anger'은 친절함의 대가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막아 준다. 착취 행위가 발견되면 당사자는 그 불쾌한 행동을 불공정한 것으로 분류하고 분노와 도덕적 공격의 욕구-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그리고 때때로 사기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벌을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노여움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노여움이 정당한 노여움, 즉 의분이라는 것이다. 격노한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었고, 그래서 부당함을 시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스티븐 핑커의 책들. /사진=오인경
스티븐 핑커의 책들. /사진=오인경

​2023년 4월의 막바지에 터져 나온 초대형 금융 사기 사건의 여파로 대한민국 사회의 치부가 영역을 불문하고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나날이 그 영향력과 중요성이 커지는 자본시장을 철저히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기관들은 3년씩이나 진행된 초장기 주가조작 범죄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음습한 곳에서 수십 명씩 모아놓고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수익을 얻는 방법을 강의하는 데도 돈깨나 있는 자산가들은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울 궁리에만 바빴다. 몇몇 중견기업의 회장들과 유명 연예인의 이름이 무슨 불법적인 투자에 대한 면죄부인 양 신뢰를 악용해서 주변 사람들까지 범죄에 마구 끌어들였다. 심지어 증권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점유율 1위의 증권업자까지도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욕심에 눈이 멀어 감독기관에 신고할 생각보다 자신의 주식을 비싸게 내다 팔 궁리에만 바빴다. 개미들이야 죽든 말든! 이보다 더한 도덕불감 부패 사회의 민낯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우리의 모든 도덕감정을 타락시키는 가장 크고 가장 보편적인 원인을 <부자와 권세가에 대해서는 감탄하고 또 거의 숭배하기까지 하는 성향, 그리고 가난하고 비천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무시하는 성향> 때문이라고 보았다. '지혜와 미덕에만 바쳐져야 할 존경과 감탄으로 부와 권세를 대하는 것, 그리고 부도덕한 행위와 우둔함만이 그 대상이 되어야 할 멸시(蔑視)가 극히 부당하게도 흔히 빈궁과 연약함에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모든 시대의 도덕철학자들의 불만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학문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던 인물이다. 『국부론』의 저자로 훨씬 더 유명한 그가 자신의 묘비명(墓碑銘)을 “『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에 잠들다”로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이야말로 『도덕감정론』에 대한 가치를 증명한다. 『도덕감정론』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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