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주식에 도대체 무슨 일이?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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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주식에 도대체 무슨 일이?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4.25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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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다 들통났으니 빨리 도망쳐!”

​유머 감각이 남달랐던 조지 버나드 쇼가 살아생전 장난삼아 런던의 높으신 양반들에게 무작위로 보낸 전보 내용은 딱 한줄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전보를 받고 잠적하는 바람에 영국 사회가 한동안 아수라장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라고는 하지만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다니 그게 더 놀랍다.

이번주의 시작은 우울했다. 개장 직후부터 일제히 하한가로 곤두박질친 여덟 종목 때문이었다. 급락한 종목들의 시가총액도 적지 않은 데다가 나름대로 인지도가 상당한 종목들이어서 증권가에서는 급전직하한 원인을 분석하느라 하루종일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굳이 이들 종목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급등한 2차 전지 테마주들의 불안정한 주가 움직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마당에 난데없이 번지점프하듯이 추락한 8인방의 주가 흐름은 가뜩이나 불안한 투자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기 충분했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도대체 이들 8인방은 왜 느닷없이 하한가로 직행했을까. 다양한 원인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답을 알긴 어렵다. 버나드 쇼가 보낸 전보를 받은 런던 신사들이 만사 제쳐두고 냅다 도망친 이유가 얼마나 다양했겠는가. 꼭 그처럼 이번 주가 폭락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도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가장 신빙성 높은 쪽은 주가 조작에 대한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설인 듯하다. 혼비백산하듯이 주식을 내동댕이치고 도망치기에 급급한 모습이야말로 무슨 중죄를 짓지 않고서야 일어나기 힘든 법이니까. 어쨌든 이들 종목의 갑작스러운 시세 붕괴가 마치 금융 범죄를 연상시킬 만큼 급작스럽게 돌출된 건 분명한 만큼 앞으로의 파장도 그리 간단치는 않을 듯하다. 훗날의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라도 이들 종목의 부자연스러운 장기간의 주가 상승과 급작스런 붕괴는 한 번쯤 자세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래픽=오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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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종목은 무엇보다도 뚜렷한 이유 없이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특징이 있다(주가 상승 기간이 비교적 짧은 종목들도 있지만, 하나같이 증시 흐름과는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올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에 걸쳐서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한 끝에 이들 종목의 시가총액은 바닥권일 때 2조5324억원에서 최고조에 이르렀을 땐 13조3674억원까지 급팽창했다. 평균적으로 5.3배나 상승했고, 대성홀딩스와 선광은 각각 17.4배, 10.4배까지 상승했다. 이들 종목의 펀더멘털이 해당 기간 동안 눈이 부실 정도로 좋아진 것도 아니어서 더더욱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번주를 시작하자마자 급추락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개별 종목들의 주가 상승 흐름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주가가 시장 전체의 부침에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움직여 왔다는 사실이다. 인위적인 컨트롤이 의심되는 가장 유력한 근거다. 두 번째로는 펀더멘털과의 상관관계도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는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주가 상승이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상승할수록 신용잔고가 더욱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레버리지 투자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주가 상승 추세만 보고 뒤늦게 상승 시세에 투기적으로 편승했거나, 남모르는 비밀스런 거짓 정보에 현혹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둘 다 극도로 위험한 투자방식이 아닐 수 없는데, 두 번째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면 금융감독 당국의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이들 8개 종목에서 이번주 이틀 동안에 증발해버린 시가총액만 하더라도 벌써 6조원에 이르는데, 8350억에 달하는 대규모 신용잔고까지 반대매매를 통해 청산될 게 뻔한 사정까지 감안하면 이번 사태의 여파가 결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온갖 협잡과 사기가 판치는 증권시장은 때때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장으로 돌변할 때도 많다.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는 1720년에 극성을 부렸던 <남해회사 투기>에서 돈을 얼마만큼 잃었는지 혹은 벌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지만, 후세 사람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남해회사 투기 열풍이 휩쓸 당시에도 자본시장이 얼마만큼 혼탁했는지를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말이다.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를 쓴 찰스 P. 킨들버거는 부정직한 수단을 통해 일확천금을 노린 투자자의 사기나 횡령, 혹은 주가의 가파른 하락이 등장할 때를 ‘위기를 격발하는 특수한 신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비교적 소수의 투자자들만 주가의 정점 부근에서 주식을 매도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순간 패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책에는 광기와 패닉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가득하지만 패닉에 대한 처방만큼은 그다지 신통하지 못한 듯하다. 패닉에 대한 처방전은 이렇다. “재주껏 도망쳐라(Sauve qui peut)”

찰스 P. 킨들버거는 패닉이 꼭 부정적인 성격만 지닌 것은 아니라면서 '페닉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놓아두어야 '유해하고 유독한 열대 기후에서' 공기를 정화할 수 있다고 봤다. “패닉은 상업과 금융세계의 독소들을 정화해 활력과 건강을 회복시키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무역과 건전한 진보, 영구적인 번영으로 이끈다.”

올해 들어 유난히 뜨겁게 달아오른 2차 전지 테마주 투기 광풍과 나날이 급증하는 신용잔고를 보노라면 시장이 다시 한번 크게 출렁거릴 가능성이 엿보인다. 느닷없이 불거진 8개 종목의 급락이 불러올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하다. 이들로부터 생겨난 파열음이 굉음으로까지 더 크게 확대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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