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가 들려주는 ‘파리에서 출세하는 법’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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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가 들려주는 ‘파리에서 출세하는 법’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5.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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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사진=위키백과
발자크. /사진=위키백과

​“나폴레옹이 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펜으로 정복하겠다”. 이 말은 젊은 시절의 발자크가 나폴레옹의 초상화 밑에다 연필로 써넣은 다짐이다. 이런 결심에 걸맞게 그는 20여 년 동안 작품을 쓰고, 쓰고, 또 쓰다가 결국 51세에 과로로 죽고 말았다. 그는 하루에 열네 시간에서 열여덟 시간을 일했다고 하는데, 20여 년 동안에 쓴 작품이 총 350권이 넘는다고 한다.

발자크는 당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하여 거대한 벽화를 그리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내 머릿속에 19세기의 사회가 들어 있소”. 1834년에 발자크가 어느 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다.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 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내려는 큰 뜻을 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연애를 하느라 엄청난 정력을 소진했고, 별 사업 수완도 없으면서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느라 아주 많은 빚을 진 채 평생을 경제적 압박 속에 살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돈 문제’에 특출난 관심을 보인 작가였다. 발자크 이전에는 그 어떤 작가들도 그처럼 돈의 세계를 잘 아는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도 현대 경제경영 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발자크는 『인간 희극』을 통해 무려 2000여명에 이르는 인물을 등장시켰는데, 셰익스피어가 37편의 희곡 작품을 통해 대략 1100명의 인물을 창작했다고 하는 걸 보면 발자크는 그보다 한술 더 뜬 셈이었다. 그런데 애당초 발자크가 구상했던 인물은 무려 4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작가의 머릿속이 어떻게 구성되었길래 그 많은 인물을 창작하고 소설에 녹여낼 생각을 했는지 기가 막힐 정도다.

​그는 몇몇 저명한 작가들로부터 ‘엉터리 작가’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지만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가 『인간 희극』의 서문에서 미리 밝혔던 ‘나를 공평하게 평가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발자크만큼 예리하고도 능숙하게, 객관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떠오르는 부르주아 사회'를 그려낸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예술가적 신념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발가벗겨서 독자들에게 당차게 들이댔고, 그런 진실성과 역사성이 끊임없이 독자들을 매혹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발자크는 작가 자신이 남들로부터 '연구 대상'이 될 만큼 흥미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다. 글 쓰는 일 말고도 수많은 사업을 벌였지만 판판이 망하고 큰 빚을 졌다. 그 때문에 평생 '돈 문제'에 시달렸다. 그는 '돈' 때문에라도 끊임없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열정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살았던 작가도 드물었다. 걸출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남긴 많은 평전 가운데서도 『발자크 평전』이 유독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 또한 그의 삶이 그만큼 특출 난 때문이었다.

그의 대표작 『고리오 영감』은 19세기에 초반에 발표된 고전이지만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인 고리오 영감과 시골에서 상경한 대학생 라스티냐크는 과부가 운영하는 파리의 고급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고리오 영감은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다 겪은 끝에 제면업자로 크게 성공해서 번 상당한 재산을 두 딸의 결혼 지참금으로 다 쏟아붓는다. 그의 노후대책이라곤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연금이 고작이다. 두 딸을 시집보내고 아내와 사별한 그는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하숙방에서 생활하는 외롭고 불쌍한 노인이다. 그런 그에게 화려한 몸치장을 한 젊은 귀부인이 가끔 몰래 드나든다. 같은 하숙집에 사는 하숙생들은 그 노인네가 '돈'을 주고 그 여자들을 불러들인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들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알아주는 백작 부인과 은행가의 부인이자 영감의 사랑하는 두 딸이었다. 그녀들은 화려한 저택에 살고 있지만 남편 말고 따로 사귀는 정부(情夫)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딸들은 자신의 정부가 떠안은 거액의 빚을 갚아주기 위해서 친정아버지인 고리오 영감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린다. 영감은 그런 두 딸을 위해 은식기마저 우그러뜨려 내다 팔아 돈을 보태주고 종신연금까지 저당 잡혀 도와준다. 고리오 영감이 두 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퍼붓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똑 닮았다.

​고리오 영감은 두 딸에게 무엇 하나 남김없이 탈탈 털어준 끝에 끝내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두 딸조차 외면한 상태로' 쓸쓸하게 하숙집에서 죽게 되지만 아주 잠깐 딸들을 원망할 뿐이다. 두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대사 못지않게 감동적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리어 왕은 자신의 권력과 영지를 아양 떠는 두 딸에게 내주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막내딸 코델리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매몰차게 대한다. 그런데 막대한 영지를 물려받은 두 딸은 이내 아버지를 배신하고 내쫓지만 정작 막내딸 코델리아는 불쌍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는다. 두 딸에게 버림받아 황야에 버려지다시피 한 리어 왕은 일견 고리오 영감과 닮았다. 그러나 리어 왕의 비극이 막내딸 코델리아의 죽음에 이르러 절정과 동시에 파국에 이르렀다면, 고리오 영감은 스스로 아낌없이 두 딸을 위해 도움을 주면서도, 그런 도움을 줄 능력이 고갈되는 걸 도리어 안타까워한다는 점에서 덜 비극적이다. 고리오 영감은 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한다.​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인 법대생 라스티냐크는 시골에서 상경하여 '파리 생활'을 익히느라 몹시 바쁘다. 그가 머무는 하숙집엔 수백만 프랑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처녀 빅토린 양도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은근히 라스티냐크에게 호감 어린 눈길을 자주 보내온 터였다. 그러던 차에 하숙집에서 가장 독특한 인물인 보트랭이 어느 날 라스티냐크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빅토린 양이 '수백만프랑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그녀의 오빠를 제거해 줄 테니 나중에 그녀와 결혼해서 갑부가 되고 나면 자신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라스티냐크는 보트랭의 제안에 몹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용케 자신의 신념이나 도덕관념을 지켜내면서 보트랭의 제안에 굴복하지 않고 견뎌낸다.

​보트랭의 '인생 강의'는 여러 날에 걸쳐 라스티냐크를 계속 흔들어 댄다. 파리에서 출세하는 법, 좋은 자리가 오만 개밖에 없는 사정, 파리 사회를 이루는 계층 구조, 파리에 도사린 온갖 지옥 같은 함정들까지도 보트랭은 훤히 꿰고 있다. 라스티냐크가 뛰어들고 싶은 100가지 직업에서 재빨리 성공하는 사람이 10명쯤 있다면 바로 그 사람들을 '도둑놈'으로 부른다는 말까지, 그의 강의는 참으로 친절한 데가 있었다.

이제 자네가 결론을 끌어내 보게! 인생이란 지금까지 얘기한 그대로야.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한국 사회는 과연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연일 언론에서 봇물 쏟아내듯 보도하는 전대미문의 주가조작 사건에 관한 추악한 내막들을 지켜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토록 속속들이 썩어버렸는지 참담한 생각부터 앞선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고 각계각층의 명망 있는 인사들이 양심은 개나 줘버리라는 식으로 재주껏 손을 더럽혔는데, 제때 손을 씻지 못하고 뒷덜미를 덜컥 붙잡히고 말았다면 그들을 과연 피해자라고 불러줘야 마땅할 일인가.

​이번 사건의 주역으로 의심받는 인물은 "제가 죽는 날까지 손해 볼 가능성이 제로다. 이 판에서 리스크는 뭐냐, 제가 없어지는 게 리스크"라며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오만불손한 말인가. 어리석음에 어리석음을 더하고, 자만에 자만을 더하고, 허영에 허영을 더하더라도 어느 누가 이만큼이나 까마득한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우리는 이따금 허영심의 천박하고 주제넘은 과시(誇示)가 오만의 가장 악독하고 유치하고 가소로운 무례함과 함께 결합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어떤 특정한 성품을 어떤 것에 귀속시켜야 할지, 즉 그것을 오만으로 간주해야 할지 아니면 허영심으로 간주해야 할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흔히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

​다시 고리오 영감 이야기로 되돌아오자. 두 딸을 아낌없이 도와주다가 끝내 완전한 빈털터리가 된 노인의 장례를 치를 인물은 이제 라스티냐크 밖에는 없었다. 고리오 영감은 일가친척도 없이 해가 질 무렵에서야 간신히 파리 외곽의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그가 고리오 영감을 매장한 후 어둑어둑해진 묘지의 언덕에 올라 센 강의 두 기슭을 따라서 꾸불꾸불 누워 있는, 등불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파리를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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