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입 거래’ 투기 판치는 한국증시, 이대로 괜찮은가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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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입 거래’ 투기 판치는 한국증시, 이대로 괜찮은가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5.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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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이미지=픽사베이
셰익스피어. /이미지=픽사베이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말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독백이다. 이 문장은 대개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에 나오는 수많은 명문장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구절이다. 우리 모두가 햄릿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때때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월의 마지막 한 주를 보내면서 불현듯 저 심란하면서도 무거운 햄릿의 독백을 새삼 떠올려본 이들이 아예 없지는 않을 듯하다.

햄릿이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는 시점은 숙부가 죽은 선왕을 독살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직후였다.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나면 예전처럼 살 수가 없는 법. 오이디푸스 왕이 꼭 그랬다. 스핑크스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고 나서 테바이의 영웅이 되고, 그 나라의 왕비와 결혼하여 일국을 통치할 때만 하더라도 행복했다. 그러다가 나라에 다시 큰 역병이 돌자 상황이 변한다. 신탁에 물으니 선대왕인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징벌해야 역병이 그친단다. 그리하여 해결사를 자처한 인물이 바로 오이디푸스였고, 알고 보니 지난날 ‘운명의 삼거리’에서 사소한 시비 끝에 살해했던 인물이 자기 아버지가 아닌가. 그는 도저히 믿기 힘든 엄청난 현실을 마주하자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바이에서 스스로 추방되어 방랑길을 떠난다. 새카맣게 몰랐던 진실을 알고 나면 이처럼 가장 행복했던 일들이 가장 비극적인 운명으로 뒤바뀌고 마는 것이다. 햄릿의 불행도 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알고 나서 시작된다. 훌륭한 아버지를 창졸지간에 잃고 어머니마저 숙부에게 빼앗긴 것도 감당 못할 지경인데, 그 모든 게 숙부의 악독한 범행 때문임을 알게 된 햄릿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 이제 남은 일은 복수를 하느냐 마느냐만 있을 뿐이었다.

스핑크스. /사진=픽사베이
스핑크스. /사진=픽사베이

햄릿은 일부러 미친 척 가장하면서 복수하기 좋은 때를 기다린다. 그때부터 수많은 번민이 그의 정신세계를 뒤흔든다. 그러는 동안에도 햄릿은 누에가 명주실 뽑아내듯 명대사를 줄줄 뽑아낸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등등. 햄릿이 내면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복수를 지연하는 건 더 좋은 명분과 때를 기다리기 때문이지 무슨 결정 장애가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철학자 니체도 바로 그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나는 셰익스피어보다 더 가슴을 찢는 비통한 작가를 알지 못한다 : 어릿광대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그 인간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만 했단 말인가! - 햄릿을 이해하겠는가?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확실성이다…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 있으려면 깊이가 있어야만 하고, 심연이어야만 하며, 철학자여야만 한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니체. /사진=픽사베이
니체. /사진=픽사베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놓인 극중 인물은 햄릿 말고도 여럿 더 있다. 베니스의 기독교 상인 안토니오도 그런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자본을 대부분 모험사업에 투자해 놓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돈을 급하게 융통해 달라는 절친 바사니오의 부탁을 받고는 평소 알고 지내던 유태인 상인한테서 자금을 빌린다. 치밀한 유태인 상인은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지만, 채무 불이행 시 가슴살 1파운드를 잘라낼 권리를 계약서에 명기한다. 안토니오는 자신이 해외로 내보낸 배들이 차례대로 유실되면서 결국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지고 만다. 석 달이라는 상환 기한이 닥쳤지만 그로서는 돈을 갚을 방도가 없다. 결국 유태인 상인은 계약 불이행의 대가로 채무자의 살을 요구한다. 1파운드의 가슴살! 재판이 벌어지고 계약서에 쓰인 대로 살을 도려내라는 판결이 내러진다. 죽기 직전에 가서야 그는 변호인의 기지로 목숨을 부지한다.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선 안 되고 오직 살만 1파운드 도려내야 한다는 변호인의 기발한 요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베니스. /사진=이미지투데이
베니스. /사진=이미지투데이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가 위기를 자초한 건 제때 돈을 갚을 가능성을 너무 낙관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투자한 해외 모험사업이 성공하면 그 돈쯤이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너무 쉽게 믿은 게 화근이었다. 외국에서 값진 물건들을 가득 싣고 돌아와야 할 그의 무역선들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전부 가라앉고 만다. 온갖 멸시를 다 겪으면서도 빌려준 돈과 이자만큼은 떼여본 적이 없는 샤일록은 경쟁관계였던 기독교 상인에게 앙갚음할 절호의 기회를 붙잡자 한사코 계약서에 쓰인 대로 안토니오의 살점을 요구한다. 원금의 몇 배를 상환하겠다고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냉혹한 샤일록은 요지부동이다. 안토니오는 결국 삶을 포기하고 가슴살을 내민다. 그래, 죽여라 죽여! 다 자업자득이니 내가 다 떠안고 가겠노라는 말과 함께.

『햄릿』은 비극이고 『베니스의 상인』은 희극이지만 두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하나 발견된다. 베니스의 안토니오나 덴마크의 햄릿 왕자나 둘 다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이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햄릿 왕자는 언젠가는 결행에 옮겨야 할 복수극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온갖 고려 요소들을 다 검토하다가 결국 좋은 때를 놓치고 만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했던 오필리어는 반쯤 미친 끝에 익사했고, 장인 될 사람은 뜻하지 않게 자신의 칼에 찔려 죽는다. 여동생과 아버지를 잃은 레어티스는 햄릿과 원수지간으로 바뀐다. 끝내 그 둘은 검술 시합 끝에 함께 죽는다. 베니스의 안토니오 또한 만기일이 석 달 후인 거액의 빚을 지고도 그걸 갚을 방도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항구에 배 들어올 날만 기다린다. 결국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끝에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지경까지 내몰린다. 가까스로 화를 면하긴 하지만 베니스의 이름난 상인이 그런 험한 꼴을 당하다니 위신이 말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인간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을 ‘오래전부터 미리 넉넉히 알고 있었다는 듯이’ 숱한 작품들 속에 기가 막힌 언어로 인간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해 놓았다. 가령, 『햄릿』의 5막 2장에 나오는 다음 대사 하나만 봐도 그렇다. 이건 마치 한국 증시를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 SG증권발 주가 조작의 끔찍한 말로를 웅변하는 대사처럼 들린다.

“와야 할 것이 지금 오면 나중에는 오지 않는다. 나중에 오지 않는다면 지금 오겠지. 지금은 아니라도 반드시 올 것은 언젠가 온다.”
- 『햄릿』, <5막 2장> 중에서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도대체 이번 사태를 도모한 세력들은 이토록 어마어마한 죄악을 저질러놓고도 어떻게 저토록 태연스레 범행을 숨겨올 수 있었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한둘이 아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닥칠 일이었다면 왜 지금보다 훨씬 일찍 터지지 않고 왜 하필 이번만큼은 이토록 뒤늦게서야 알려진단 말인가. 자신들이 달콤한 수익을 향유하는 동안에 불법성을 넉넉히 인지했을 덴데, 이토록 오랫동안 꽁꽁 숨겨온 저들의 철통같이 완강한 이익 카르텔은 또 뭔가.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투기 열풍이 고조될 때마다 어김없이 폭증하는 신용 잔고의 가파른 추세를 보노라면 그 또한 걱정거리다. 저토록 불어난 차입 거래는 언젠가 찾아올 급격한 주가 하락과 함께 기어코 청산되고 말 텐데, 그때 만에 하나 원금마저 갚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그 불행을 어찌 감당할 텐가? 지난 주에 눈앞에서 빤히 펼쳐 보였던 사례들만 보더라도 그런 사태가 이미 넉넉히 예견되고 있지 않는가?

/그래픽=오은경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햄릿』의 확장성은 참으로 놀랍다. 꼭『햄릿』만 그런 것도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이 현대에 와서도  끊임없이 무대에 올려지는 까닭은 그 어떤 작품이든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이 호소하는 목소리’를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이 짧은 문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냥 살거나 아니면 이대로 죽자는 식으로 생사 여부를 곧장 결정해야 한다는 느낌보다는, 이대로 괜찮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좀 더 근원적으로 따져보자는 문제의식도 함께 담겨 있다. 한국 증시도 이대로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심각하게 되살펴볼 때다.

인간에게 전후를 살피도록 풍부한 판별력을 부여하신 분이,
그런 능력과 존엄한 이성을 주었을 땐,
사용도 못 해본 채 곰팡이가 생기도록
하시려 함은 확실히 아니렷다.

 - 『햄릿』 4막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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