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이유없이 시총 7배… ‘수상한 급등주’ 또 있다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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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이유없이 시총 7배… ‘수상한 급등주’ 또 있다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5.1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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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000억→고점 기준 합산 시가총액 2조3000억
SG증권발 8개 종목과 유사 ‘이유 없는 주가 급등’ 의문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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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의 저자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서 아주 재미있는 개념을 소개한다. 잠행성 정상 상태(creeping normalcy)와 풍경 기억 상실. 용어부터 어려운데, 쉽게 설명하자면 느리게 진행되는 변화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걸 뜻하는 용어다. 경제 문제든 교통 체증 문제든 그 어떤 문제가 매우 천천히 악화되고 있을 경우, 한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매년 조금씩 변동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가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까지 오래 진행되고 나면 어떻게 될까. 현재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가 사실은 악화된 상태임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게 된다. '풍경 기억 상실(landscape amnesia)'도 비슷하다. 변화가 너무 느리게 진행됨으로써 몇십 년 전의 풍경이 지금과 얼마나 달랐는지 깨닫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변화가 대표적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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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에서도 이런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몇십 년 전에는 가격 제한폭이 하루 5% 남짓이었다. 상장 종목수도 몇백 종목에 불과했다. 연속 상한가를 닷새나 열흘쯤 지속한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시가총액이 작은 종목일수록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지레짐작할 뿐이고, 그게 뭐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잠깐 저러고 말겠지 하는 분위기였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자면 시가총액이 자그마한 종목들의 '단기적인 시세 급변동'은 따분한 시장 분위기를 흔들어 깨우는 어릿광대의 애교쯤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는 얘기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증권시장에는 넉넉한 점심시간까지 있었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펀드매니저들은 매일 2시간에 가까운 '넉넉한 점심'을 즐길 수 있었다. 맛집을 찾아서 여의도에서 마포로 건너가기 일쑤였고, 영등포나 김포 등지로도 다녀오곤 했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니 만사 제쳐두고 '점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토요일에도 오전장이 열렸기 때문에 주 6일 근무의 피곤함도 있었다. 어느덧 그런 풍경을 상실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시절을 회상할 겨를도 없이 현재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이런 게 바로 풍경 기억 상실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독특한 심리 체계 중에 하나는 '패턴 인식'이다. "마음속에는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패턴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궁극적인 무질서에 대항해서 일어나고 있다." 조지 존슨(George Johnson)이 쓴「마음속의 불(Fire in the Mind)」에 나오는 설명이다. 투자자는 패턴을 찾아내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계획을 짜고, 대응책을 세우기를 열망한다고 존슨은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증권시장을 공부하면 금방 그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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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비록 선사시대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때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에도 우리는 대체로 인간 역사를 통해 우리가 해 왔던 바 그대로 기능하고 있다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사람들이 여전히 주술적 사고에 굴복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패턴을 찾는 동물인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조차 설명을 요구한다. 우리는 혼돈과 무질서를 싫어한다. 그래서 답변을 요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믿는가(How We Believe)》라는 책에서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는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의 생존은 바로 그 패턴 인식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패턴(바람을 등지고 사냥감을 쫓는 것은 좋지 못하며 소똥으로 만든 사료는 곡식에 좋다 등)을 가장 잘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후손을 남기게 되니 우리가 바로 그들의 자손이다." 진화의 힘을 통해 우리의 회로에는 세상을 설명해 줄 패턴을 추구하도록 영구적인 배선이 깔려 버렸다. 결국 그런 패턴들이 믿음 체계의 기반을 형성한다. 본질적인 측면에선 피상적인 패턴에 불과할 경우에라도 말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사월의 마지막 한 주를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은 역대급 주가 조작 사건은 아직도 활화산처럼 부글거리고 있다. 한때는 너무 거대한 규모의 폭발이 일으킨 파장 때문에 온종일 쏟아져나오는 관련 뉴스를 다 챙겨 보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주범 일당이 구속되고 나서는 피해자인지 공범인지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는 인물들로 수사범위가 점차 확대되는 국면에 접어든 모양새다. 지난주 금요일에 또다시 터져나온 두 종목(디와이피엔에프, 신대양제지)의 이상한 급락 현상은 SG증권발 후폭풍이 언제든지 새로운 연쇄하락을 불러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지난 주말 오후에 발표된 새로운 뉴스는 이런 불안감을 더욱 키우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는 약 3400개 차액결제거래(CFD) 계좌를 대상으로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 연계 여부에 대해 집중점검에 착수한다고 또다시 언명했는데,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과에서 지난달 중순부터 혐의가 의심되는 종목들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상당수의 CFD 계좌가 관여됐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기간에 걸쳐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8개 종목이 폭삭 내려앉으면서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시가총액과 투자자들의 피해규모만 하더라도 실로 엄청나다. 더군다나 이들 8개 종목에 덧붙여진 신용융자 규모만 하더라도 폭락 직전(4월 21일 기준) 8233억원까지 급팽창했다가 순식간에 180억원까지 쪼그라들고 말았다. 이들 8개 종목에서 발생한 신용융자 감소액만 무려 8053억 원에 이른다. 레버리지 투자의 속성상 실제 투자자들의 피해액은 신용융자 감소액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SG증권발 폭락 종목의 현주소. /그래픽=오인경
SG증권발 폭락 종목의 현주소. /그래픽=오인경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좋은 속담이 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2700여개에 달하는 종목들을 일제히 점검해 봤다. 장기간의 주가 상승을 나타낸 종목 가운데 뚜렷한 이유를 알기 어려운 사례가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몰라서였다.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2020년 1월부터 최근까지 무려 3년 이상 꾸준히 상승한 종목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상승 이유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분석한 종목들 가운데 <장기간 주가 상승이 두드러진 5개 종목>의 경우, 합산 시가총액은 2020년 상반기 저점 당시에 비해 3년 동안 무려 7배 이상 불어났다. 최저점 기준으로 이들 5개 종목의 합산 시가총액은 3000억원대에 불과했지만, 최근 고점 기준으로 합산한 시가총액은 어느덧 2조3000억원에 육박한다. 참고로, 이들 5개 종목의 합산 영업이익은 2019년 기준으로 200억원대 초반에 머물렀고, 지난해 실적 기준으로도 400억원대 중반에 불과했다. 이들의 합산 시가총액은 고점 기준으로 따졌을 때 합산 영업이익의 50배에 가깝다. 이런 종목들이 과연 이토록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상승한 이유가 뭘까. 증시 주변에서는 이번에 문제가 된 8개 종목 말고도 주가 상승 이유가 의심스러운 경우가 더 있다는 소문이 퍼져있다고 한다. 그저 막연한 기우일지도 모른다. 시장은 늘 침소봉대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투자자들은 더욱 경계심을 가지고 자신의 투자를 면밀하게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하루아침에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무너져내린 SG증권발 8개 종목이 일으킨 거대한 폭풍이 언제 또다시 재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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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p. 킨들버거는 <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 축축한 숲속에서 버섯이 자라나듯 부정이 피어오른다고 말한다. 사기, 부정행위, 정교한 사취 수법은 시장경제에서 늘 반복되는 '삶의 일부'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번에 터진 사건은 범행의 대담함이나 규모의 방대함에서 단연 역대급이다. 과거에는 주가 조작이 주로 상장 기업의 대주주와 기관의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이 함께 연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증시를 좌지우지해왔기 때문이다. 자생적으로 생겨난 주가조작 세력들은 무슨 신약개발이다, 보물섬을 건져올린다는 식의 풍문을 띄우고 바람잡이들을 동원해서 완력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다. 그런 식의 부정행위는 대개 한탕주의여서 단기간에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히 진화된 신종수법이 등장했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그것이 그들의 주된 전략이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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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은 패턴을 낳고 모방은 모방을 낳는다. SG증권발 폭락 종목의 상승 패턴은 대체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통물량이 적고, 기업실적이 안정적이면서도 큰 변동이 없으며,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주가가 상승했으며, 상승할수록 신용잔고가 급격히 불어났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상승 패턴을 보이는 종목들이 있다면 차제에 한 번 더 기업 실적을 꼼꼼히 체크해 보고 자신의 종목 선택이 건전한 투자인지 탐욕을 앞세운 투기는 아닌지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금융 부정이 대담해지는 경우는 보상 대 위험 비율이 현격하게 커 보일 때다. 그럴 땐 경계선에 바짝 붙어서 스케이트를 타는 선수들이 늘어난다. 규정 위반이 발각되지만 않으면 큰 부를 챙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서거나, 붙잡히더라도 절반쯤은 챙길 가능성도 계산에 넣을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급등 주식을 매수하려는 욕구가 훨씬 크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사기는 신뢰를 악용한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절도와 다르다. 『로빈슨 크루소』의 저자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는 주식 사기꾼은 아는 사람들(종종 그 친구나 친척)을 등치면서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상강도보다 1만 배 더 나쁘다고 말했다.

​남해회사 거품 때 하원의원이었던 모울스워스(Molesworth)는 의회가 남해회사의 경영진을 존속살해급의 유죄로 선언해야 하며, 이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고대 로마에서 집행했던 가혹한 처형방식(이들 각각을 원숭이와 뱀 한 마리씩을 집어넣은 마대 주머니에 함께 넣어 물에 던져버리는)에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처형방식은 지나칠 정도로 무자비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가뿐하게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 대부분은 부정하게 획득한 재산의 대부분을 그대로 가져간다.
-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중에서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관련성을 찾아내고 음모를 추측하는 본성을 지닌, 패턴을 추구하는 영장류"라고 말했다. SG증권발 8개 종목의 급격한 추락을 보면서 혹여나 다른 종목들은 그와 유사한 케이스가 없을까 하고 살펴보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이번에 터져 나온 8개 종목의 주가 조작 사건만으로도 한국 증시는 부끄러운 오점을 남겼다. 하루에도 수십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거래되는 거대한 자본시장이 관리 감독 체계에서 커다란 허점을 드러냈다. 또한 수많은 투자자들이 이번 사건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손실을 입었다. 대규모 주가 조작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의 면면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역대급이다. 이토록 엄청난 사건조차도 이제 겨우 진상 규명 단계에 본격 착수했을 뿐이다. 이번 사건을 크나큰 계기로 삼아 다시는 이처럼 낯부끄러운 주가 조작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획기적인 대책들이 마련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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