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 오른 ‘2차전지 신용 팽창’, 견딜까 폭발할까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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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점 오른 ‘2차전지 신용 팽창’, 견딜까 폭발할까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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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이 일반투자자를 위해 쉽게 쓴 책은 1949년에 출판된 『현명한 투자자』였다.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레이엄이 그 책에서 처음으로 소개한 혁명적인 개념은 세 가지 정도다. 투자와 투기의 구분, 안전마진(Margin of Safety), 그리고 '마켓 아저씨(Mr. Market)'라는 개념이다. 그가 이런 개념을 제시한 건 현역 시절 펀드를 운용하면서 겪었던 엄청난 가격 변동 경험 때문이었다. 그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최악의 시절에 겪었던 고통과 낙담이 얼마나 컸을 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가 겪은 시련 가운데 1929년 대공황 시절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걸 몇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월스트리트. /사진=픽사베이
월스트리트.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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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펀드의 자본금이 250만 달러로 늘어남. 그 해 펀드는 20%의 손실을 기록.

1930년 펀드 최악의 해로 50% 손실. 이후 5년간 펀드에서 급여를 받지 못함.

1931년 펀드 16% 손실

1932년 펀드 3% 손실.(당초의 자본금 250만 달러 중 이때까지 70% 손실).

1935년 대공황 시기의 손실을 전액 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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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증시도 여느 증시 못잖게 주기적으로 극심한 변동을 겪어왔다. 불과 3년 전 이맘때만 하더라도 극심한 투자 손실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이 많았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엄습하는 바람에 증시가 빠른 속도로 추락했고,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폭락장 앞에서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아마도 대공황 시절에 그레이엄이 겪은 엄청난 손실보다 더한 손실을 본 투자자도 많았음에 틀림없다. 그 당시의 투자 손실이 얼마나 심각했는 지는 아래의 그림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데, ① 국면에서 신용융자 잔고는 불과 15일 만에 10조원대에서 6조3000억원대로 급감했다. 담보 부족으로 인한 반대매매가 매일 수천억원씩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투자가 얼마나 무서운 지를 이때 뼈저리게 느낀 투자자가 아주 많았을 것이다.

2020년 1월 이후 신용잔고와 코스피 추이. /그래픽=오인경
2020년 1월 이후 신용잔고와 코스피 추이. /그래픽=오인경

그 이후에 뜻밖의 대반전이 일어났다. 외국인과 기관의 거센 매도 공세를 뚫고 동학개미 주도로 무서운 상승 랠리가 펼쳐진 것이다. 진격에 진격을 거듭한 증시는 이듬해 6월에 3300포인트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2021년 9월 15일 신용융자 잔고는 25조5342억원으로 바닥일 때(2020년 3월 25일 6조3381억원)와 비교해서 무려 4배나 폭증했다. 증권사들은 신용공여 한도가 차는 바람에 더 이상 돈을 빌려주고 싶어도 빌려줄 수 없는 ‘대출 불능’ 상태에 한동안 빠지기도 했다. 주가가 3000포인트를 넘나들자 다시 한번 외국인과 기관이 봇물처럼 주식을 마구 쏟아냈으나 탐욕스러운 동학개미들은 아무리 먹어도 식욕이 그칠 줄 몰랐던 에뤼식톤 마냥 계속 주식을 받아넘겼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작년 가을까지 기나긴 폭락장이 이어졌다. 전세계적인 금리 인상 랠리가 이어졌고 환율은 마치 금융위기가 재발한 것처럼 요동치며 급등했다. 폭락장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게 있다면 급팽창했던 신용잔고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점이다. 2년 가까이 급팽창했던 신용잔고는 또다시 고점인 25조5342억원 대비 10조원 가까이 축소된 15조8237억원으로 주저앉았다. 마치 에뤼식톤이 먹을 게 바닥나자 제 살을 뜯어먹듯이 신용투자자들은 산산조각 난 주식 위에 자신의 주식을 내던졌다. 떠받쳐도 모자랄 판에.

2020년 1월 이후 신용잔고와 코스닥 추이. /그래픽=오인경
2020년 1월 이후 신용잔고와 코스닥 추이. /그래픽=오인경

이런 시장의 흐름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보다 뚜렷한 그림이 드러난다. 신용잔고와 양대 지수 사이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부러 보조를 맞춘 듯한 ‘동행 관계’가 명백히 나타난다. 우리나라 증시 구조는 어찌 보면 신용잔고의 급증과 더불어 증시를 밀어올렸다가 정상에 이르렀다 싶으면 그렇게 불어난 신용잔고의 거대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모습과 닮았다. 이건 마치 꾀 많은 시쉬포스가 신들을 속였다가 그 벌로 지옥에서 영원히 바위를 굴려올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시쉬포스. /사진=픽사베이
시쉬포스. /사진=픽사베이

그리스에서도 유서 깊은 도시인 코린트(성경에 나오는 ‘고린도’)의 창건자 시쉬포스 왕은 인간 중에서는 제일 꾀가 많은 인물로 전해진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도 잠깐 등장하고, 『오뒷세이아』에서는 훨씬 더 구체적으로 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아무래도 오뒷세우스의 실제 아버지가 시쉬포스였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일 터. 이 대목에서 잠시 지옥에서 열 일 하는 그의 모습을 잠깐 살펴보자.

나는 또 시쉬포스가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도 보았소.
그는 두 손으로 거대한 돌덩이를 움직이고 있었소.
그는 두 손과 두 발로 버티며 그 돌덩이를 산꼭대기 너머로
밀어 올렸소. 그러나 그가 그 돌덩이를 산꼭대기 너머로
넘기려고 하면 그 무게가 그를 뒤로 밀어내는 것이었소.
그러면 그 뻔뻔스런 돌덩이가 도로 들판으로 굴러 내렸고
그러면 또 그는 기를 쓰며 밀었소. 그의 사지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그의 머리 위로는 먼지가 구름처럼 일었소.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11권 저승> 중에서

​이토록 부질없고 헤어날 길 없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는 시쉬포스를 보고도 삶의 희망을 애써 찾아낸 인물이 있었으니 프랑스 문학 역사상 최연소로 노벨상을 받은 알베르 카뮈였다. 그는 『시지프 신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화란 상상력으로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으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다. 시지프의 신화에 있어서는 다만 거대한 돌을 들어 올려 산비탈로 굴려 올리기를 수백 번이나 되풀이하느라고 잔뜩 긴장해 있는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 등 온통 인간적인 확신이 보인다. 하늘 없는 공간과 깊이 없는 시간으로나 헤아릴 수 있는 이 기나긴 노력 끝에 목표는 달성된다. 그때 시지프는 돌이 순식간에 저 아래 세계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 아래로부터 정점을 향해 이제 다시 돌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또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중에서

​자신이 투자한 주식을 저 높은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느라 낑낑거려본 경험을 해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식을 자신이 희망하는 높은 곳까지 밀어올리는 일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노력으로도 성공할까 말까 하는 지난한 과제다. 설사 시쉬포스처럼 용케 밀어올렸다손 치더라도 이내 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만다. 그럴 때 누군가는 ‘레버리지’를 쓰면 좀 더 쉬울 거 아니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긴 지렛대만 주어지면 지구도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인물도 있었으니 과학적으로는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마침 증시에서도 적당한 길이의 지렛대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게 바로 신용융자다. 그런데 그 지렛대야말로 몹시 위험한 도구다. 신용잔고가 폭증한 다음에는 반드시 가파른 수축 과정이 뒤따랐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어쩌면 앞서 소개한 <신용잔고와 주가지수 추이> 그래프는 레버리지를 많이 쓰는 사람들한테는 일종의 경고성 그림으로 보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증시에서 쓸 수 있는 레버리지는 신용이 전부가 아니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곱버스, 선물, 옵션 등등이 모두 지렛대를 쓰고 싶은 인간 심리에 호소하는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레버리지는 청산할 때를 놓치면 가혹한 청구서를 내미는 무서운 도구다.​

전기차. /사진=이미지투데이
전기차. /사진=이미지투데이

이쯤에서 다시 증시로 되돌아오자. 최근에 우리나라 증시는 예상 밖의 강세장이 전개되고 있다.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2차전지 관련주들의 불꽃 랠리가 가장 큰 기여를 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조금 찜찜하다. 어느새 2600포인트가 목전일 만큼 꿋꿋하게만 보였던 주가 상승이 신용잔고라는 지렛대의 힘에 의지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15조원대까지 대폭 축소된 신용잔고가 어느새 20조원에 육박할 만큼 급팽창했다. 더군다나 신용잔고가 잔뜩 부풀어 오른 종목들이 상당수 2차전지 테마주가 아닐까 싶어서 더욱 염려스럽다. 아니나 다를까. 네이버 증권에서 2차전지 테마주로 분류해 놓은 80여 종목 가운데 시가총액 상위 20개사만 조사해 봤는데도 결과가 너무 놀랍다. 상위 20개사만으로도 시가총액이 430조원을 가뿐히 넘을 뿐만 아니라, 최근 6개월 동안에만 신용잔고가 2배 이상 급격히 불어났으니 말이다. 그 가운데 몇몇 종목은 보기만 해도 아찔할 만큼 가파른 신용팽창과 주가 급등이 진행됐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과도한 레버리지를 써서 급격하게 밀어올린 주가가 과연 중력의 압박을 이겨내고 오래도록 안착할 수 있을까?​

2차전지 테마주 시가총액 상위 20개사 신용잔고 추이. /그래픽=오인경
2차전지 테마주 시가총액 상위 20개사 신용잔고 추이. /그래픽=오인경
POSCO홀딩스의 최근 주가 및 신용잔고 추이. /그래픽=오인경
POSCO홀딩스의 최근 주가 및 신용잔고 추이. /그래픽=오인경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탐욕에 빠져든 어리석은 투자자를 양에 비유한 적이 있다.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특정 시점마다 엄청난 금액의 멍청한 돈이 부지기수의 멍청한 사람들 손에 주어지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돈을 흔히 눈먼 자본이라고 부른다. 이런 돈은 누군가가 자신을 집어삼켜 주기를 갈망하면서 ‘흘러넘친다’. 흘러넘치는 돈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면 '투기'가 벌어지고, 투기가 이 돈을 다 먹어치우고 나면 ‘패닉’이 발생한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창조한 미스터 마켓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증시를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미스터 마켓은 투자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미스터 마켓이 어느 날 특별히 어리석은 분위기로 나타난다면 그를 무시해 버리든 이용하든 선택은 우리의 자유다. 그러나 미스터 마켓에 휘둘린다면 그건 투자자의 잘못이지 시장(미스터 마켓)의 잘못은 아니다. 시장은 자주 비합리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며, 시장을 부조리하게 만드는 건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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