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미스토클레스의 공명심과 이강인을 향한 삭지 않는 분노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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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토클레스의 공명심과 이강인을 향한 삭지 않는 분노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2.2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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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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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두 명의 축구 스타가 주먹다짐을 벌인 사건이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면 사소한 언쟁이 순식간에 멱살잡이와 주먹 휘두르기로 크게 번진 듯하다. 그 바람에 손흥민 선수는 손가락이 탈골되는 부상을 했고, 하루아침에 세상 사람들의 모진 비난을 뒤집어쓴 이강인 선수는 결국 사과문까지 올리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도 사태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다가 이제야 겨우 일단락되는 듯하다. 이강인 선수가 직접 런던까지 찾아가 진심 어린 사과를 했고, 손흥민 선수가 후배를 흔쾌히 용서하고 따뜻하게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훈훈한 용서와 화해가 갑작스레 찾아올 줄 몰랐던 많은 사람은 이 소식을 접한 뒤 격하게 안도하며 기뻐했다. 극한의 갈등이 해소된 뒤에 찾아오는 행복감을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이토록 흐뭇하고도 극적인 화해 장면을 보면서 여전히 적잖은 불안과 불만을 느끼는 듯하다. 왜 그럴까?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우선은 두 사람이 거세게 충돌한 사실 자체가 상궤를 너무 크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고작 탁구 때문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싸움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무릇 어떤 조직이든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일하는 곳에서는 갈등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 갈등을 최소화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통솔력이 뛰어난 감독이 필요하고 조직 내 기강 또한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중요한 국제 대회를 치르는 국가대표 축구팀이라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 중차대한 경기를 하루 앞두고 그토록 볼썽사나운 다툼이 벌어졌으니 다들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하루 앞둔 전날 저녁만큼 긴장의 끈을 최대한으로 조일 필요가 있다는 걸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동서양의 온갖 이름난 전쟁을 살펴보노라면 내분과 갈등, 내통과 음모 때문에 전쟁의 승패가 뒤집힌 경우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서양 문명사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저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만 보더라도 그렇다. 양국의 군대가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살라미스 앞바다에 총집결해 있을 때, 동서양 사이의 대충돌이 끝내 그리스 연합군의 극적인 승리로 마무리된 까닭은 무엇인가. 대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밤 페르시아 진영에서 일어난 ‘혼란’ 때문이었다.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 영웅은 테미스토클레스였다. 그의 인생이 영광과 치욕을 극적으로 오르내린 까닭은 공명심 때문이었다. 공명심이 그를 키우고 그를 망쳤다고 말할 수 있다. 살라미스 해전을 극적인 승리로 이끈 후에 그의 인생은 점점 더 꼬이기 시작하더니 끝끝내 조국을 배신하고 페르시아에 몸을 의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테미스토클레스. /출처=위키백과
테미스토클레스. /출처=위키백과

테미스토클레스가 얼마나 공명심에 마음을 빼앗기고 위대한 업적에 가슴을 불태웠는지는 마라톤에서 치른 페르시아와의 전쟁 때 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한 밀티아데스 장군의 훌륭한 지도력을 칭송하는 것을 본 테미스토클레스는, 어린 나이임에도 홀로 고민을 거듭했다. 밤마다 잠 못 이루고 언제나 나오던 연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변화를 이상히 여겨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밀티아데스 장군이 승전하는 것을 상상하기만 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테미스토클레스 편’

이번에 발생한 ‘탁구 사태’ 소동은 다시금 되돌아봐도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한둘이 아니다. 소동이 일어난 타이밍도 몹시 나빴고, 순식간에 급발진한 다툼의 전개 양상도 고약하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또한 그 소동으로 인한 부정적인 여파가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64년 만에 찾아온 대륙컵 우승 기회를 날려버렸을 뿐만 아니라, 약체로 여겨지던 요르단에게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참패한 게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게다가 참패 이후 곧바로 터져 나온 선수들끼리의 다툼이 알려진 경로와 사태를 수습하는 방식마저도 꼴사나웠다. 분란을 일으킨 당사자는 진정성이 결여된 일회성 사과문을 덜렁 내놓았을 뿐이다. 문제가 커지자, 법적 대리인을 통한 어설픈 해명을 내놓은 것이 도리어 분노를 부추겼다. 이번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마땅할 국가대표팀 감독은 차마 믿기 어려운 ‘선수 탓’만 뱉어놓고 경질되었다. 이 모든 사태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축구 협회장도 사태 악화를 부추겼다는 비난이 들끓는 데도 그 어떠한 수습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수많은 축구 팬이 느끼는 공통적인 감정 가운데 하나는 ‘분노’였다. 많은 이들은 새까만 후배가 감히 팀 내 최고참 선수에게 달려든 행위에 분개했다. 또 다른 이들은 그들 사이의 다툼이 실제로 다음날 경기력에 악영향을 끼친 점을 용납하기 어렵다고 목청을 높였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고통까지 더해진 손흥민 선수가 안쓰러워 후배 선수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이강인 선수를 열렬히 응원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내에서 활동 중인 연예인급 프랑스인을 비난하기도 했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사리 분별도 없이 분노를 쏟아냈을까.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인간의 도덕 감정을 깊이 연구했던 애덤 스미스를 다시금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애덤 스미스. /출처=위키백과
애덤 스미스. /출처=위키백과

분개(憤慨)의 감정

분개(憤慨)는 방어를 위해서, 그리고 오직 방어만을 위해서, 천성이 우리에게 부여해 준 감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정의를 지키는 보호장치이자 죄 없는 사람을 지키는 안전장치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가해지려는 해악을 물리치고 이미 가해진 것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도록 촉구한다. 그리하여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반성하도록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처벌을 받을까 봐 두려움을 갖도록 함으로써 유사한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다.

전 세계의 수많은 축구 팬이 이번 사건에 대해 유별난 관심을 내보이는 까닭도 어쩌면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 오늘날 그 어떤 종목과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종목이 바로 축구라는 스포츠다. 세계 최고의 유럽 빅리그 팀들 간의 경기뿐 아니라, 국가 간의 대항전에 그토록 많은 축구 팬이 밤잠을 설치며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이유도 다 까닭이 있다.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나 느껴봄 직한 흥분과 통쾌함을 안겨주는 초대형 이벤트가 바로 축구라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대중적인 열광과 인기 덕분에 유명 스포츠 선수들은 엄청난 경제적 수입과 명성과 인기를 동시에 누린다. 물론 그만한 부와 명예를 누리기 위해 스타 선수들이 쏟아부은 엄청난 노력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국가 대표로 선발된 선수라면 수천만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에 걸맞은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일러스트=이미지투데이

전설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특별한 재능 때문에 일반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들을 두고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이 사회 덕분에 벌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서 일한다면, 똑같은 능력을 갖고도 형편없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내가 특별히 잘할 수 있는 일에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시장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있다. 마이크 타이슨도 마찬가지다. 10초 안에 상대를 때려 눕히고 1,000만 달러를 번다면 이 사회로부터 후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 하지만 이 시장 시스템이 당신에게 후한 보상을 해준다면, 당신의 독특한 재능에 대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마음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쏟아부어 준다면 -예를 들어 특이한 콧소리 하나로 텔레비전이나 어디서 노래를 부르고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 사회는 당신에게 많은 걸 요구할 권리가 있다.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으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온 슛돌이 이강인 선수가 하루아침에 대역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취급받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러나 그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을 두고 대중들의 지나친 변덕 탓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중들은 이번 사건 때문에 귀염둥이 막냇동생 같은 축구 스타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다소 엉뚱한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벌써 이강인 선수를 두고 ‘스포츠계의 유승준’으로까지 빗대는 사람들도 있다.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인물들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대중적인 분노에 직면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들춰낼 필요조차 없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숱한 빅히트 상품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경우도 많았다. 축구라는 흥미로운 경기를 구경조차 못 해본 애덤 스미스가 ‘분개의 감정’에 대해 날카롭게 통찰한 문장들은 다시 살펴봐도 놀랍다. 찰스 다윈은 애덤 스미스가 고찰했던 분개와 같은 ‘도덕 감정들’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발달한 제2의 천성으로 보았다. 한번 터져 나오면 좀처럼 억누르기 힘든 분노라는 감정이 사회적 동물에게 필수 불가결한 본능으로 진화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셈이다.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은 우리의 적으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의 과거의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또한 그로 하여금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도록 만들고, 그로 하여금 그가 해악을 가한 그 사람이 그와 같은 식으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드는 데 있다. 우리를 해치거나 모욕을 준 사람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분개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우리를 무시하는 태도, 우리보다 자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불합리한 태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의 편의에 따라 또는 기분에 따라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의 터무니없는 자애(自愛: self-love) 등이다. 그의 행동에 나타난 두드러진 도덕적 부적정성, 그의 행동에 담겨 있는 큰 오만과 불의는 종종 우리에게 우리가 당한 해악 그 자체보다도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우리를 격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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