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티엔디 사례로 본 ‘코리아 디스카운트’(하)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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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티엔디 사례로 본 ‘코리아 디스카운트’(하)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3.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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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일찌감치 <증권분석> 초판(1934년판)에서 ‘극단적인 저평가 기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주주, 시장, 그리고 경영진의 관점에서 주가의 극단적인 저평가 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주가가 계속해서 청산가치보다 낮다면, 이는 주가가 터무니없이 낮거나 회사가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1. 주주는 기업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나은지 고민하게 된다. 2. 경영자는 청산가치와 주가의 부조화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경영 방침을 수정하고, 비즈니스의 지속 여부를 주주에게 물어야 한다. 위 결론은 별도의 검증이 필요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주가가 지속적으로 청산가치보다 낮게 형성될 이유는 없다. 기업의 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더 낮다면 이 기업은 청산되어야 한다. 기업의 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더 높다면 주가는 청산가치보다 더 높아야 한다. 결국 청산가치보다 더 낮은 가격은 정상이 아니다.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초판(1934년판)

​이미 90년 전에 월가의 스승이 이토록 명백한 주장을 내놓았지만, 한국 증시에서 청산가치보다 기업의 가치가 턱없이 낮은 주식은 여전히 많다. 올해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몇몇 특정 섹터에 포함된 일부 대형주들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될 필요는 없는 이유다. 기업의 가치를 향상하기 위해 경영진이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한다면 저평가된 기업들이 적정한 가치를 받을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제부터는 서부티엔디의 실적 개선 흐름이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보고 주가가 침체 국면을 탈피할 가능성이 얼마만큼 잠재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서부티엔디는 흔히 부동산 디벨로퍼로 불리지만, 부동산 개발뿐만 아니라 개발이 끝난 사업장을 직접 운영하거나 임대하는 사업도 병행한다. 자체 소유 부지 가운데 이미 개발이 끝난 사업장은 2017년에 개장한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과 2012년에 개장한 인천 쇼핑몰(스퀘어원)이 있다.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 /출처=드래곤시티 홈페이지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 /출처=드래곤시티 홈페이지
인천 스퀘어원. /출처=스퀘어원 홈페이지​
인천 스퀘어원. /출처=스퀘어원 홈페이지​

인천 쇼핑몰은 100% 임대로 운영 중이고 오픈 이후 지금까지 가장 꾸준한 영업 실적을 보이고 있다. 1700 객실을 갖춘 용산 호텔은 덩치도 클 뿐 아니라 서부티엔디 매출의 71%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갖는 분야다. 그동안 사드 보복과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호텔 부문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한 바 있지만, 이미 2년째 급격한 매출 호조세를 나타내는 중이다. 짐 덩어리가 아니라 복덩어리로 전환된 셈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호텔 부문의 급격한 실적 호전에 힘입어 회사 전체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또한 빠르게 호전되는 모습이다. 호텔 부문이 좋아진 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행 정상화에 따른 방한 외국인 회복세, 세븐럭 카지노 입점에 따른 신규 수익원 발굴, 호텔 객실 단가 급상승에 따른 영향이다. 호텔 공급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힘든 속성, 방한 외국인 수요의 꾸준한 회복, 용산 일대 개발이 가속화되는 흐름 등에 따라 향후로도 실적 개선 흐름은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개발이 완료된 이들 두 사업장을 제외하고 나면, 향후 서부티엔디의 실적을 획기적으로 레벨업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신정동 서부트럭터미널 개발 사업’이다. 동사는 이미 지난해 8월 말에 서울시로부터 개발 사업 승인을 획득한 바 있다. 개발 신청 이후 무려 7년 만에 얻어낸 성과였다. 대지 3만1500평에 연면적 24만여평으로 개발되는 총사업비 1조7500억원에 이르는 초대형 개발 사업이다.

신정동 복합단지 개발 조감도. /출처=서울시​
신정동 복합단지 개발 조감도. /출처=서울시​

물류·판매 및 주거시설 등이 복합된 도시형 첨단 물류 단지가 조성되면 서남권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 부동산 경기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회사 측에서는 984세대(공공임대 92세대 포함)의 아파트 건축 사업을 통해 복합단지 개발 비용의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실시 설계 단계에 있으며 올해 하반기 건축 인허가, 내년 상반기 중 착공 예정이다. 아파트 평당 건축비는 700만원대, 평당 분양가는 4000만원 수준으로 예상되는데, 분양 면적이 3만평 수준이므로 단순 계산으로도 수천억원의 분양 차익을 예상할 수 있다. 연면적 24만평에 이르는 부지 개발이 모두 완료되면 지원시설(업무동, 오피스텔, 체육시설 등)을 제외하고도 14만여평에 이르는 대규모 물류 시설과 유통·상업 시설이 생겨나고, 이로부터 매년 1000억원에 이르는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신규로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신정동 개발이 마무리된 2028년 이후부터는 기존의 호텔 및 쇼핑몰 사업과 더불어 회사 전체 영업이익이 매년 1500억원대까지 올라설 전망이다.

신정동 개발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서부티엔디에서 보유 중인 용산 나진상가 부지(1826평)에 대한 개발도 구체화할 전망이다. 부지 면적만 15만평에 이르는 용산정비창 부지는 2025년 하반기부터 기반 시설 착공에 들어갈 전망인데,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의 입지 여건 또한 획기적으로 레벨업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뒤바뀔 전망이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출처=서울시​
용산 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출처=서울시​

서부티엔디는 지난해 11월 30일을 기준으로 자산재평가를 실시한 바 있다. 관련 공시자료에 따르면 동사는 현재 약 18만평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토지는 5만4408평, 건물은 12만6472평이다. 투자 부동산에 대한 재평가차액은 2023년 결산에 반영되었지만, 유형자산에 대한 재평가차액 2671억원은 올해 결산기 말에 반영될 예정이다(자산재평가 이후 유형자산에서 투자부동산으로 대체된 호텔 자산 일부는 미반영된 기준임). 여기에 더해 신정동 부지(2만6896평)이 건축 허가를 얻으면 최소 3000억∼4000억원 가량이 올해 말 ‘투자부동산 평가이익’으로 추가 반영될 예정이다. 2024말 자기자본 추정치는 ▲2023말 자기자본 9972억 ▲유형자산 재평가차액 미반영분 2671억 ▲신정동 토지 평가이익 최소 3000억원을 합하면 대략 1조5643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의 시가총액 4519억원으로 계산하면 올해 결산기 말 PBR이 0.29까지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서부티엔디는 오래전부터 용산과 신정동 등 서울 시내 요지에 미개발된 대규모 토지를 보유한 덕분에 자산 가치 우량주로 널리 인정받아 왔던 회사다. 2012년에 인천에서 쇼핑몰을 오픈하고, 2015년에 용산에 국내 최대 규모의 호텔을 지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연금을 비롯한 여러 기관투자자들이 5% 이상의 지분을 투자할 정도로 각광받던 주식이었다. 기관들이 점차 이 주식을 외면하기 시작한 때는 대략 2017년 무렵부터였다. 과다한 차입금을 끌어다 지은 국내 최대 규모의 호텔이 오픈을 목전에 둔 시점에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이 시작됐고, 중국인 단체관광 금지 조치는 호텔 및 관광 산업에 오래도록 나쁜 영향을 미쳤다. 2017년 여름에 갑작스레 발표된 유상증자도 시장의 신뢰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승만호 회장이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공언했던 ‘유상증자 배제 약속’이 보란 듯이 뒤집혔기 때문이다.

서부티엔디는 공매도 금지 조치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극성스러운 공매도에 시달려 왔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는 동안 극심한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에 지친 투자자들은 지난해부터 확연히 달라진 실적 개선 흐름과 ‘신정동 개발사업 승인’ 발표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상황은 도리어 정반대로 전개됐다. 동사의 숙원사업이나 마찬가지였던 ‘신정동 복합단지 개발사업’이 서울시 승인을 얻자마자 그다음 날부터 주가가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서부티엔디를 오래도록 분석해 왔던 베테랑 애널리스트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주가 움직임이었다. 동사의 주가 흐름이 상식 밖인 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공매도는 전면 금지된 지 어느새 4개월이 지났고, 공매도 잔액도 고점에 비해 절반 이하로 크게 줄었으며, 회사에서는 지난해 주가 급락 이후 자사주를 70만주나 매입했는데도 주가는 좀처럼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와 경영진의 탐욕이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말미암아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기업이 다시금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부티엔디의 경우, 오래전부터 대주주 1인 지배기업으로서의 이미지가 유난히 강했던 기업이다. 부동산 개발 기업의 속성상 최고경영자의 과감한 의사결정과 강한 추진력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경영진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주가로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말대로, 주가가 오래도록 청산 가치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그건 경영진의 잘못이 가장 크다. 서부티엔디도 이번 주에 주총이 열린다. 기관투자자들이 이번 주총에 참석한다면 회사에서 보유 중인 자사주(약 292만주) 전량 소각과 더불어 향후로도 실적 개선에 상응하는 추가적인 자사주 매입 소각까지도 적극 검토할 것을 요청할 만하다. 바야흐로 주주 환원 정책이 앞다퉈 쏟아져 나오는 형국이니, 투자자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에 이번만큼 좋은 기회도 드물다 싶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잘못을 공격하면, 이를 개인적인 목적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비판받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본래 금융에서 이타주의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진을 상대로 한 싸움에는 시간, 에너지, 돈이 들어간다. 개인의 노력으로 이런 일이 해결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한 정도의 지분을 소유한 집단이 나선다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들은 그 회사에 많은 돈을 걸어두고 있어서 자신의 이익을 지켜야 하며, 그래서 일반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위한 행동에 나서게 된다.

“경영진이 주가와 무관하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논리는 기본적으로 진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위선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자가 특정 종목을 매입할 때 시장성은 중요한 사항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도 이는 진실이 아니다. 시장성은 본래 처분할 수 있는 장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가격에 매도할 가능성을 전제한다. 적정 가격 매도 가능성은 적절한 배당, 실적, 자산 가치만큼이나 주주에게는 중요하다.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초판(1934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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