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티엔디 사례로 본 ‘코리아 디스카운트’(상) [오인경의 그·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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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티엔디 사례로 본 ‘코리아 디스카운트’(상) [오인경의 그·말·이]
  • 오인경 후마니타스 이코노미스트
  • 승인 2024.03.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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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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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문제가 대한민국 증시를 관통하는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점점 더 구체성을 갖추면서 증시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이 발표된 초창기 무렵만 하더라도 만년 저평가된 일부 저PBR 종목군들을 중심으로 급등세가 나타나더니, 곧이어 밸류업 프로그램이 ‘주주 환원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배당금 확대와 자사주 매입 소각 문제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주총 시즌을 맞아 주주행동주의 펀드들의 활동도 예전보다 주목도가 훨씬 높아졌다.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 소각 문제뿐 아니라 이사 선임 문제 등 주주 이익을 강화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대주주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 내지는 지배구조로부터 벗어나 소액주주들에게 부여된 주주로서의 권리를 되찾자는 ‘경제 민주화 요구’가 뒤늦게야 분출하는 형국이다.

한국 증시가 만년 저평가 상태에 머물러 온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테마성 주식들에 대한 과도한 쏠림 현상과 투기적인 성향, 주가조작 세력들의 약탈적 불공정 거래, 주주 환원 정책 미흡, 과도한 상속세 부담 등에 따른 고의적인 저평가 상태 방치 등등. 이토록 다양한 원인 때문에 만년 저평가 상태에 지친 개인투자자들이 근래에 한국 증시를 떠나 해외 선진 증시로 발걸음을 옮기는 경향도 점차 강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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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단순히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권고 수준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소각 등에 대해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까지 검토한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가 만년 저평가된 상태에 머물렀던 핵심적인 원인이 이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과정에서 다양하게 노출되고 실질적인 해법이 모색될수록 한국 증시 자체가 레벨업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이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해마다 충분히 배당금으로 지급되고, 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으로 저평가된 자사주를 꾸준히 매입하여 소각한다면 기업의 주가가 만년 저평가에 머물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회사의 경영진이 적극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지금껏 소홀하게 다룬 까닭이 있다. ‘대주주와 소액주주와의 이해 충돌’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회사의 자금으로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것을 ‘사외 유출’로 여기는 인식이다. 사내 유보 대신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함으로써 사내에 축적될 투자 재원이 자꾸만 회사 밖으로 ‘빠져나간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주주 환원에 그토록 인색한 것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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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소액주주들이 주총 때마다 갈등을 겪는 이유도 턱없이 낮은 배당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소유와 경영이 덜 분리된 회사일수록, 다시 말하자면 회사의 경영진들이 오너 일가 중심으로 구성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대주주가 받는 배당금은 일반적으로 소액주주들이 부담하는 세율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근래에 주주행동주의 펀드들이 나서서 주주 환원 정책을 강하게 요구하는 흐름도 넓게 봐서는 대주주와 소액주주 사이의 이해 충돌이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되는 흐름의 일환이다. 소액주주가 마땅히 받아야 할 배당금이 사내에 유보되는 걸 용인받기 위해서는 기업의 재투자수익률이 특출나게 높은 경우에 한정되어야 마땅하다.

배당에 대한 자의적인 결정권은 비정상적인 저가에 자사주를 매입해 고가에 팔아치우는 기만적인 방법으로 남용되기도 한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고소득에 대한 중과세 때문에 기업 이익을 배당으로 지급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대주주의 과세 상황에 따라 배당 정책이 결정되기도 한다. 특히 지배주주가 높은 보수를 받는 경영진에 포진되어 있는 경우 이런 일은 종종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는 회사의 이익이 다른 주주에게도 귀속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순이익을 회사 금고에 남겨두려고 한다.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초판(1934년판)

대주주는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하지 않는 이상 반영구적으로 기업을 소유하는 데 반해 소액주주들은 일반적으로 대주주보다는 훨씬 더 짧은 기간 동안만 주식을 소유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주식 소유 기간의 현격한 차이가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구분하는 또 다른 요소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번 창업하면 자자손손 후손에게 물려줄 기업의 오너 입장에서는 ‘회삿돈=내 돈’이라는 관념이 소액주주들보다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주주들을 대신해서 회사의 경영을 떠맡은 이사회 멤버가 단지 회사에 대한 책임만 지는 게 아니라 ‘주주에 대한 책임과 의무’까지도 떠맡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을 상법에 명시하자는 논의가 그래서 중요하다. 이사회가 아무리 회사를 위한 최선의 의사결정을 한다손 치더라도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자신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우호적인 제3자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회사의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는 경우, 발행 주식 수 감소에 따른 주당 가치 상승효과는 모든 주주들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그렇지만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를 백기사에게 넘기는 경우는 오로지 대주주에게만 이익이 될 뿐이다. 주가가 낮은 수준에 머물 때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하기만 하고 소각하지 않는다면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는 그저 잠깐의 주가 하락 방어 효과만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자사주 소각을 병행하지 않는 자사주 매입은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주주는 그들이 투자한 자본에서 발생한 순이익 중에서 일부 재투자하기로 한 부분만 제외하고 모두 배당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 자발적으로 사내 유보한 기업 순이익은 이에 상당하는 부분을 정기 주식배당을 통해 자본화하고, 이때 배당 주식의 시장가치가 자본전입한 순이익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더 이상 이 증자 자본금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기존의 발행 주식을 매입 소각하여 주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 초판(1934년판)

​최근에 진행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또 다른 주제 가운데 하나는 ‘대주주의 전횡’ 문제다. 대주주는 실질적으로 회사 경영에 관한 모든 정보를 독점하기 때문에 일반투자자들과는 자금력이든 정보력이든 경쟁이 안 된다. 그렇기에 전 세계 어느 증시든 은밀한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당 내부자 거래’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그럼에도 대주주는 끊임없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매매 차익을 얻고 싶은 욕구에 노출된다. 시가총액 수십조원의 대그룹인 에코프로 회장이 임직원들과 함께 차명으로 주식을 매매하다가 적발되어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들이 공시 전 공급 계약을 활용해서 얻은 시세 차익은 고작 11억원에 불과했다. 대주주의 파렴치한 범행에 대한 판결은 시의적절하고도 옳았다.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라덕연발 주가조작 사건’이 터져 나왔고, 키움증권의 대주주는 주가조작에 연루된 계열사 주식을 폭락 직전에 대거 처분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서부티엔디라는 종목을 사례 연구 삼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종목은 코로나 팬데믹 사태 때문에 급격한 실적 악화를 겪은 이후 최근까지 놀라운 실적 회복 흐름을 보이는 중이다. 그럼에도 주가는 지난해 3분기의 급락세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주가 부진이 최근에 본격화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과는 별 관계가 없는 종목들이 겪는 단순한 역차별 때문인지, 그게 아니라면 장차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화되면 주가가 다른 움직임을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부티엔디의 지난해 말 기준 장부가치는 9972억원이다. 현재 시가총액이 4519억원이므로 PBR은 0.5배 수준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과거 주가를 살펴보면 상장 이후 2015년까지 장기간 우상향하는 양호한 주가 흐름을 보여왔음을 알 수 있다. 주가가 고점을 형성했던 몇몇 시기(2007, 2012, 2015년)의 시가총액만 살펴보더라도 해당 기간의 영업실적에 비해 주가가 상당한 고평가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자산 가치가 뛰어난 알짜 부동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한때나마 PBR이 1.8∼5.2배 수준에 달했다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그런데 2015년 이후 동사의 주가는 줄곧 하락세를 지속한 끝에 시가총액이 고점 대비 반 토막 이상으로 급감했다. 사드 보복에 따른 방한 중국인 급감과 코로나 사태 등으로 실적이 나빠진 때문이다. 지난해 자산재평가에 따라 보유 중인 부동산의 장부가치가 급증했고, 영업실적 또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음에도 주가는 좀처럼 바닥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나마 1조원을 넘나들던 회사의 시가총액이 이토록 급격하게 쪼그라든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대주주의 도덕성에 적잖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201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국민연금을 비롯한 몇몇 기관투자자들이 동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났다. 2017년 이후로는 기관투자자의 지분 대량 소유 보고는 아예 사라진 모습이다. 시장에서 그만큼 외면당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주주의 도덕성을 의심해 볼 만한 근거로는 대주주를 비롯한 오너 일가의 지분 변동 신고가 비상식적일 정도로 너무 잦다는 점이다. 2004년 이후 오너 일가의 지분 변동 신고는 총 609건에 이르는데, 해마다 평균 30건이 넘는 기록이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대주주의 도덕성을 의심할 만한 또 다른 근거 자료는 오너 일가의 주식 담보 대출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점이다. 아래 그림으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2008년 금융위기 무렵에 시작된 주식담보대출이 어언 16년째 확대일로를 보여주고 있다. 대주주가 금융기관에 담보로 맡긴 주식 수가 무려 1513만여 주에 이르고 주식 담보 대출금은 어느새 734억원에 이르렀다. 대주주 일가와 특별관계자들의 주식뿐 아니라 주요 비상장 계열사(엠와이에이치, 오진상사, 오진교역)가 보유한 주식들이 총동원되다시피 ‘주식 대출 담보물’로 제공되고 있다. 대주주가 과도한 담보 대출에 따른 이자 부담 때문에 추가적인 주식 담보 대출을 받는 게 아닐까 염려될 정도다. 대주주의 과도한 담보 대출은 대체로 건전해 보이지도 않고, 증시 참여자들에게도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대주주의 도덕성을 의심할 만한 또 다른 근거는 지난해 여름에 갑작스레 튀어나온 대주주의 폭탄성 주식 매도 행태다. 이 회사의 대주주 지분율은 평소 매우 느린 속도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를 보여왔다. 그런데 지난해 7∼8월 사이에 집중된 오너 일가의 주식 대량 매도는 특히 공매도 세력과 짜 맞춘 듯한 모양새여서 많은 투자자를 분노하게 했다. 대주주 매도와 공매도가 정확히 겹치는 거래일은 무려 21일이었고, 해당 기간 대주주는 61만여주를 팔았고, 대주주 매도와 겹치는 공매도 주식 수는 무려 102만여주에 이르렀다.

/그래픽=오인경
/그래픽=오인경

대주주와 공매도 세력의 폭탄 매물이 쏟아진 이후 주가는 순식간에 30%나 폭락했다. 지난해 7월 이후 ‘신정동 서부트럭터미널 개발 사업 승인’ 및 중국인 단체관광 허용 등 각종 호재가 겹친 덕분에 모처럼 적극적인 주식 매수에 나섰던 기관투자자들조차 대주주의 느닷없는 주식 매도 행태에 실망하며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다. 분노한 기관투자자들을 달래기 위해 지난해 10월 이후 회사 측에서는 자사주 매입(70만주)뿐 아니라 연말 10% 주식배당까지 내밀었지만 냉담하게 돌아선 투자자들을 되돌리기엔 여전히 역부족인 모양새다. 지난해 연초부터 8월 말까지 무려 100만주 이상 불어났던 공매도 잔액이 고점 대비 반 토막 이상으로 줄어들었음에도 주가는 여전히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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