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으로 세대 갈라치기?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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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으로 세대 갈라치기?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2.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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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필자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해인 1988년, 공교롭게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시행됐다. 한 직장에서 약 30년을 근무했던 터라 꼬박꼬박 국민연금을 납부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이전에는 언론들조차 국민연금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끊임없이 쏟아냈던 사실을 기억한다. 초기에는 ‘국민연금 내어봤자 60세에 받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내용이 주류였다. 또한 국민연금은 국가가 주식시장을 조정하려는 음모라느니, 정권이 필요에 따라 이용한다느니 여러 가지 음모설도 나돌았다. 많은 직장 동료는 국민연금을 괜히 낸다는 둥 불만을 털어내며 이직 등 기회만 닿으면 일시금으로 타내려 했다.

그러다가 대략 2000년대 들어서 노령연금 수급자가 증가하면서 국민연금을 못 받는다는 괴소문은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적은 금액이지만 은퇴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들렸다. 노후설계 과정의 기본항목으로 국민연금은 필수였다. 즉 노후 필요 자금을 산출하는데 60세 이후 기간 국민연금 수령액을 현재가치로 추산해 반영하는 것은 필수과정으로 등장했다. 국민연금이 이제 공적 연금으로 사회적 필수 인프라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국민연금이 곧 고갈해 받을 수 없을 거라는 우려를 자극적으로 편집한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어떤 평론가는 이러한 뉴스가 매년 100조원씩 늘어나는 국민연금 가입자를 민간 연금 시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지적하지만, 음모론이라는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특히 일부 언론이 지적하는 ‘곧’이라는 고갈 시점도 약 30년 이후를 가정하는 것이며, 설사 국민연금 기금이 소진되어도 세금으로 지원해 국민연금 지급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집단 지성이 언론들 바람처럼 국민연금의 극적인 불행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국민연금 시스템이 제도적인 문제를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아시다시피 국민연금은 윤석열정부의 개혁과제 1호다. 과거 정부에서도 국민연금 개혁을 이구동성으로 외쳤으나 국민 저항 우려에 말 잔치로 끝나고는 했다. 5년 단임 정부 체제에서는 표심을 잃기 쉽고, 국민 여론 수렴에 꽤 긴 시간이 소요되는 국민연금 개혁과제를 해결하기에는 현 정치·사회 시스템으로는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정말 잘 알고 국민 설득에 자신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몰라서인지 연금 개혁을 반드시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어쨌든(어차피 골수 지지자만 남은 낮은 지지율이기는 하지만) 인기를 잃어도 국민적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용기는 환영할 만하다. 아울러 국회도 지난해 7월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민간자문위원회가 개혁안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자문위원들끼리 시각 차이로 결론은 지연되는 상황이다.

금융을 다루는 여러 가지 수리 공식에서도 연금 공식은 상당히 복잡하다. 초장기간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할인율, 투자수익률, 가입자 수, 납입금액, 연금 지출 금액 등에 대한 가정은 고도의 경제적 추정과정이 필요하다. 즉 30년 이후의 이들 변수를 추정하는 데 필요한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인구, 고용률 등등은 모두가 불확실하다. 이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입맛에 맞게 경제변수를 조작하고 싶은 유혹이 작용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경제변수 추정 근거로 국민이 부담할 보험료율, 국민이 받을 연금 지급액 등이 결정되므로 이들을 추정하는 절차와 과정은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함은 말할 것 없다. 그래서 국민연금에 대한 미래 추정은 국민연금법에 5년마다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마침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제5차 재정계산에 관한 시산 결과(재정추계)를 발표했다. 앞으로 국민연금의 향후 70년을 내다본 공적 자료여서 살펴보니 국민연금의 당면 문제점도 담겨있다.

자료1(출처=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자료1(출처=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위기를 초래하는 가장 큰 요소는 인구문제다. 합계 출산율은 올해 0.73명에서 2050년 이후 1.21명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가정했고, 기대수명은 올해 84세에서 2070년 91세로 꾸준히 늘어난다. 이것은 인구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18세에서 국민연금 수령 직전인 65세까지 인구는 올해 3501만명에서 70년 후 1295만명까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65세 이상 인구는 올해 950만명에서 2050년 1900만명까지 늘었다가 2070년 1201만명까지 감소한다. 전체 인구는 올해 5156만명에서 2093년 2782만명으로 줄어든다. 대한민국 인구가 이 지경이 된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다. 아울러 경제활동인구가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비율(노인부양비)은 2070년 100%를 넘어섰다가 역시 인구 감소로 줄어든다.

자료2(출처=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자료2(출처=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한편 인구 감소는 수요와 노동 공급 감소를 초래해 결국 GDP 성장률을 하락시킨다. 재정추계에서 인구 감소는 경제활동참가율 하락으로 이어지고 실질 경제성장률은 2023~2030년 1.9%에서 2061~2080년 0.2%로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 정말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담할 뿐이다. 이러한 추세를 많은 국민이 인지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불안을 가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미래가 없는 한국에서 출산율은 더욱 줄고 사람들은 떠나고 싶을지 모르며 불황은 더 악화하는 악순환 고리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는 한계가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자료3(출처=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자료3(출처=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인구구조 악화로 결국 국민연금 가입자 수는 감소하고 노령연금을 받는 사람은 증가하는데, 재정추계에서 보는 것처럼 약 30년 후인 2050년 이후 가입자 수와 수급자 수가 같아진다. 이후 국민연금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즉 제도부양비가 100을 넘어서 가입자가 연금 수급자를 부양해야만 하는 부담이 증가한다. 이에 따라 (기금 고갈 이후) 당해연도 국민연금 수입으로 연금 지출을 충당할 때 보험료율(부과방식비용률)은 올해 6%에서 최고 30% 이상까지 상승하며 가입자의 부담은 5배 이상 증가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칠 것으로 재정추계는 분석했다. 국민연금은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며 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던 시점에 설계한 제도이다. 국민연금 제도 도입 초기에 강제가입에 따른 불만을 잠재우고 제도를 조기 정착하기 위해 가입자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설계하였다. 위에서 확인한 자료 1, 2, 3에 따르면 급격한 인구 감소 및 고령화 초래의 영향은 국민연금의 제도적 손질을 불가피하게 한다.

자료4(출처=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자료4(출처=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지난 17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개혁방안을 분석한 유익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자문위원회가 논의하고 있는 개혁방안은 ‘부과방식’, ‘부분적립방식’, ‘완전 적립방식’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의 부담 비용은 보험료율이 월 소득의 9%이며 직장 가입 근로자는 사업자가 절반을 부담하고, 지역 가입자는 모두 직접 부담한다. 즉 보험료율 인상은 지역 가입자에게 크게 불리하며 불평등한 소득효과를 가려온다. 현재 가입자 부담 비용은 GDP의 약 2% 내외에 해당한다. 또한 국민연금은 전체 가입자 평균 월 소득(현재 264만원)의 40%를 노령연금으로 대체하게끔 소득대체율이 설계되어 있는데, 소득대체율 인상은 당연히 이를 부담할 추가 재원이 필요하며, 이는 누군가는 가처분소득 감소를 감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자료5(출처=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자료5(출처=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현재의 국민연금은 40년 가입기준으로 2028년 이전 가입자는 자기가 납입한 것보다 12.4% 이상을 초과하여 수급하도록 되어 있다. 이 초과 수급률 자료에 따르면 1988년 가입자는 55.5%, 2004년 이전 가입자는 25% 이상을 더 받는다. 한마디로 덜 내고 더 받는 우수한 국민연금 구조는 민간 금융회사 노후 금융상품과 비교해 경쟁력을 제공하며 전 국민 공적 연금 체계 구축을 위해 불가피한 특성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진행이 이러한 국민연금 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하고 말았다.

자료6(출처=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재정추계)
자료6(출처=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재정추계)

결국 덜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구조와 인구구조 악화는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지출을 가속화하고 수입을 약화하여 국민연금 적립금 규모를 급격히 축소한다.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41년에 적자에 빠지고 기금은 2055년 모두 소진되어 ‘마이너스 47조원’ 부채 상태로 전환한다. 기금이 사라지면 기금의 운용수익에 의한 가입자 부담금 보조 효과가 사라지므로 2055년 이후 가입자 보험료율은 극단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

한창 논의 중인 연금개혁방안의 쟁점은 기금 소진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방법론인데, 소진을 막는 재원은 다름 아닌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와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다. 전반적 문제점을 이해했으면 이제 다시 자료 4로 돌아가 살펴보자. 자문위원회는 기본적으로 보험료율을 9%→15%로 인상하고, 납부 연령을 64세까지 연장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여기에 ‘부과방식’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충족하려면 인구구조 변화 등을 고려할 때 미래 세대의 보험료율은 장래에 40~50%(GDP의 9%)까지 상향 조정해야 하는 것으로 KB는 분석한다. ‘부분적립방식’은 약 50년간 세금으로 GDP 대비 100%의 기금을 유지해 기금운용 수익으로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인다는 주장이다. 끝으로 ‘완전적립방식’은 보험료율은 12%까지지만 올리고 납부 연령은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세금 부담을 더 늘려 GDP의 117% 규모 기금을 적립해 미래 세대 부담을 상당히 줄인다는 복안이다.

국민연금 개혁 쟁점은 최종적으로 기금 소진을 위한 재원을 누가 추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점으로 축약할 수 있다. 그러나 논쟁을 설명하면서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연금 수급자층이 청년층의 소득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대결 구도를 설정해 갈등을 부추기고는 한다. 그러나 초장기 연금 시간 축에서는 청년이 노인이 되고 다시 자식이 청년이 되는 등 과정을 반복하며 세대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긴 시간 축에서 청년은 노인 자신이자 자식이기도 하다. 연금 수급자를 부양하는 것은 자신이기도 하며 자식이지도 한 것이다. 가입자와 연금 수급자는 소득이 있는 경제활동 층과 소득이 부족한 은퇴층으로 라이프 사이클의 위치 차이를 반영하는 국민연금 제도상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청년과 노인을 두 개의 이해대립 집단으로 분리하는 것은 사회를 갈라치기하려는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 모두가 거대한 한국 거시경제의 시간 순환 과정에 있는 구성원이며 공존 관계에 있고 하나의 경제 주체 이익을 위해 다른 경제 주체를 희생할 수 없다. 국민연금 적립과 소비 주체 모두 부모이거나 자식으로 유기적인 사회관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폴 새뮤얼슨의 ‘세대 간 중첩’(Overlapping Generation) 모형에서 보면 부모와 자식이라는 연속된 세대가 계속 이어지며 사회가 지탱하는데, 부모는 자식을 양육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자식이 부양하는 암묵적 세대 간 계약이 경제를 유지한다는 것이 근본 철학이다. 연금 수급은 자식의 부양 부담을 줄인다는 점에서 부모가 받는 연금 혜택이 자식 세대의 소득을 뺏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국민연금 개혁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양쪽 모두의 사회적 후생(social welfare) 총량을 증가하고, 이 총량을 취약하거나 생산성 비교 우위가 있는 쪽으로 배분을 늘리는 등 다양한 기준을 통해 세대 간 배분량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제발 부모 세대 생활자금으로 또는 청년 세대의 미래 안전장치로 소중한 국민연금을 놓고 부모가 자식 세대와 싸우는 것을 조장하는 일은 그 누구(특히 정치권이나 언론이)라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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