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운용 자본시장 가정(CMA)’의 경이로운 의미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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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투운용 자본시장 가정(CMA)’의 경이로운 의미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3.0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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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세계 최대 자산운용회사 블랙록(BlackRock)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 블랙록이 관리 중인 고객자산(Asset Under Management·AUM)은 무려 8.6조달러에 이른다. 환율 1320원 기준 한화로 약 1경1000억원이 넘는 자산운용회사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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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발표 2021년 기준 한국 국민순자산 약 1경9800억원과 비교하면 그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창업자 래리 핑크가 1988년 설립한 늦깎이 자산운용회사 블랙록은 (주가지수를 복제하고 변화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 창시자 존 보글이 1975년 설립한 뱅가드그룹을 13년 시간 격차를 이기고 단숨에 앞지르는 기염을 토했다. 2000년 이전 국내 펀드 전업회사 중 하나였던 대한투자신탁 출신인 필자에게 블랙록의 성장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펀드 산업은 하루아침에 고객과 신뢰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으며 고객자산이 뚝딱 쌓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소비자 신뢰는 쌈박한 광고 모델을 세우는 등 단기 처방으로 결코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금융상품을 무기로 장착해도 장기적인 고객과의 진심 어린 유대 형성이 없으면 펀드 산업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블랙록의 성장 비결이 궁금한 이유다.

자료1(출처-블랙록)
자료1(출처-블랙록)

블랙록 홈페이지를 수개월 동안 틈나는 대로 탐색한 결과, 구석구석에 금융소비자 편에 서서 자아내는 진심 어린 투자 철학을 확인할 수 있었다. 블랙록은 정기적이고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투자 전망을 투명하게 성의있게 내어놓는다. 펀드 산업에 종사하던 때는 물론 지금도 단순히 금융상품 판매용으로 내놓는 국내 대부분 금융회사 보고서만 목격했던 터라, 이러한 블랙록이 태도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자료1에서 보는 것처럼, 블랙록은 ‘자본시장 가정(Capital Market Assumption·CMA)’을 홈페이지에 제시하고 있다. CAM을 발표하는 블랙록의 이러한 시도는 고객의 미래를 걱정하는 글로벌 자산운용자의 진정성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CAM은 자산운용회사의 지속가능(suatainability) 성장 모델인 것이다.

자료2(출처-블랙록)
자료2(출처-블랙록)

블랙록은 CAM에서 전 세계 주요 투자 자산군의 기대수익률과 그 변동 폭(변동성)에 대한 추정치, 즉 파라미터를 투명하게 제안한다. CAM은 자신의 펀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기초로 작용한다. 이러한 정보는 과거 대부분 기관투자가나 펀드 운용역에게 극비로 분류한 기밀 사항이었다. 그 기밀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자료2는 블랙록 펀드의 투자 대상 자산군을 기대수익률(세로축)과 위험(표준편차로 표현하는 기대수익률의 변동성, 가로축)의 2차원 평면에 그린 분포도이다. 이러한 분포도는 과학적 투자 포트폴리오를 결정하는 데 각 자산군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통계적 방법을 제시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료3(출처-한국투자신탁운용)
자료3(출처-한국투자신탁운용)

최근 국내 한 자산운용회사 홈페이지에서도 깜짝 놀랄 일을 발견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한투운용)이 CMA를 ‘2023년 장기자본시장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다. 다만, 보고서가 1월 13일 고객센터 공지 사항에 발표된 뒤 조용하게 묻혀 있는 걸로 봐서 주목을 받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금융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므로 그 의미를 알아보기 어려웠고, 고객센터 공지에서 이를 본 고객들도 생뚱맞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블랙록의 사례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 자산운용 산업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더군다나 펀드 산업이 이윤추구에 유린당하는 것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한투운용의 CAM 보고서 의미를 해설하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 나름 의무감도 앞선다.

한투운용의 CMA를 완전하게 이해하자면 분산투자 이론, 자본자산가격이론 등 노벨 경제학상의 업적인 몇 가지 투자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현행법과 제도는 금융소비자의 자율적 금융상품 이해와 자산관리, 본인 책임에 의한 금융 소비행위를 강조하므로 금융시장을 작동하는 이들 투자원리에 대해 최소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고도의 공학을 몰라도 중요한 작동 원리만 알면 자동차를 마음껏 이용하듯이, 금융도 기본원리를 알면 얼마든지 원하는 방향으로 자율 운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투운용 CMA에는 투자자가 금융상품을 판단하고 선택하는데 중요한 금융 원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자료4(출처-한국투자신탁운용)
자료4(출처-한국투자신탁운용)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학적 투자이론은 투자 자산군 사이의 비중을 잘 결정하는 것(자산 배분)이 투자 결과에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산군은 자료4에서 보는 것처럼 성장주, 가치주, 신흥국 주식, 채권 등 유사한 성격을 가지는 투자 자산들을 분류하여 부르는 것이다. 이 자산군 분류에 근거해 각 투자 자산군의 기대수익률과 위험(표준편차), 위험 사이의 상관관계(공분산)라는 파라미터(함숫값에 영향을 주는 중요 변수)를 추정하고, 이를 수리적 과정을 통해 자산군 간 최적 비중을 산출하며 최종 포트폴리오 전략을 결정한다.

과학적 투자 결정은 동일 기대수익률에서는 낮은 위험을, 동일 위험에서는 큰 기대수익률을 가진 투자안을 선택한다. 이것을 최소 분산 선택 기준(Mean-Variance Criteria)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론 배경에서 위험 단위당 기대수익률, 즉 위험조정 수익률(Risk adjusted return)을 표시하는 샤프 지수가 높은 자산군을 우월한 투자 대상 자산군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들 파라미터가 펀드 포트폴리오 구성을 결정하는데, CMA는 파라미터를 금융회사가 어떻게 추정하는지, 구체적 내용을 최초로 보여주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CMA 공표는 너무나 유명한 콜라 회사가 고유 향료 혼합 비법을 세상에 공표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

자료5(출처-한국투자신탁운용)
자료5(출처-한국투자신탁운용)

한투운용이 평가한 자산군 별 샤프 지수 기준에 의하면 원화 투자자(또는 국내 투자자)에게 주식은 환노출한 해외투자가, 채권은 국내 채권에 투자가 유리하다는 결론이다. 해외자산에 투자할 때 해당국 통화로 바꿔서 투자해야 하는데, 이때 해당국과 자국 통화 사이의 가치 변화가 해외자산 투자 손익에 영향을 미친다. 이 통화가치 변화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최종 투자금 회수 시기에 맞춰 자국 통화와 교환할 외화의 가격을 선물환 등으로 고정하는데, 이것을 환헤지라고 한다. 환헤지를 하면 투자 결과는 순수한 해외자산 가격변화만 남는다. 즉 환노출이란 환헤지를 하지 않고 통화 관련 손익 변화를 방어하지 않는 것이다. 현재 제도적으로 해외투자 금융상품은 환헤지 여부를 투자설명서에 의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과거 약 15년 동안의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한투운용 CMA는 과거가 반복할 가능성을 전제로 한 분석임을 분명하게 고지하고 있다. 즉 CMA는 확실한 치료나 예방을 위한 처방전이 아니고 금융소비자가 참고할 판단 자료일 뿐이다. 그러나 참고 자료이지만 그 의미는 너무 중요하다.

자료6(출처-한국투자신탁운용)
자료6(출처-한국투자신탁운용)

한편 자료6은 샤프 지수를 기준으로 한 해외투자와 환노출의 우월성을 설명한다. 즉 동일 목표 위험(변동성)에서 원화 투자는 달러화 투자보다 위험(변동성)이 낮으므로 주식 투자 비중을 늘려 포트폴리오 기대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동일 목표 기대수익률에서 환위험 노출시 해외주식 기대수익률이 높으므로 주식 비중을 줄여 샤프 지수를 높일 수 있도록 투자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다. 이러한 CMA의 자산군 평가와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은 퇴직연금의 주요 상품인 TDF 설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한투운용의 설명이다.

과거 한국투자신탁은 대한투자신탁과 경쟁하며 대한민국 펀드 산업을 이끌었던 회사였다. 2000년 증권-운용 분리 정책으로 한투운용이 증권 부문과 독립했다. 현재는 ‘대한투자신탁’은 사라지고 한국투자신탁운용만이 펀드 산업의 명맥과 정통성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투운용이 이제 거의 잊은 ‘투자신탁’ 브랜드를 회사 이름에서 고수하는 점은 남다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최근 몇 년 동안 펀드 산업은 공모 펀드 몰락, 사모펀드의 고객 유린 사태 등으로 철저하게 이전투구에 망가졌다. 이런 가운데 한투운용 CMA 보고서를 보고 느낀 것은 블랙록에 견주는 한투운용의 투자 철학과 저력이었다. 또한 CMA 보고서에서 한국 자산운용업의 미래 희망을 읽었다. 비록 여론이 크게 주목하지는 못했지만, CMA 보고서를 낼 수 있는 한투운용의 자산운용 철학과 기업문화에 늦게나마 찬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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