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구멍을 막아라”… ‘위험한 펀드’ 제대로 알릴까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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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구멍을 막아라”… ‘위험한 펀드’ 제대로 알릴까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2.13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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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판매자가 위험등급 산정 가이드라인 마련… 설명의무 등 책임소재 명확해질 듯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기원전인 전국시대 말기 위나라에 백규라는 거상이 있었다. 그는 치수(治水)에 능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그의 비결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늘 둑의 상태 점검에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개미구멍만큼 작은 틈만 보여도 이내 메우는 것이었다. 이 얘기는 <한비자>에 ‘의혈궤제’(蟻穴潰提)라는 고사성어로 후대에 전해진다. 사소한 위험을 소홀히 다루면 거대한 제방이 무너진다는 교훈을 담은 얘기이다.

필자는 오랜 기간 금융회사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경험에 따르면, 일부 금융회사는 위험을 가리고 기대수익을 부풀린 자료를 미사여구로 꾸며 금융소비자를 현혹한다. 이러한 홍보에 부화뇌동하지 말고 항상 작은 위험이라도 경계하라는 금과옥조로 ‘의혈궤제’라는 고사성어를 추천하고 싶다.

앞서 금융투자에서 ‘위험’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반 투자자는 투자 이후 높은 수익을 바란다. 투자 교과서 용어로는 ‘기대수익’이다. 따라서 금융회사는 금융 상품을 판매할 때, 이전의 높았던 수익률을 제시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표준투자권유준칙>은 과거 수익률을 제시하는 방법, 과거 수익률이 미래 수익률로 오해하지 않도록 단정적 표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금융회사의 과거 수익률 제시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과거의 수익률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불과하다. 확률적 표현으로 과거 수익률과 미래 수익률은 독립적이다. 10번의 동전 던지기에서 기대확률이 2분의 1이라는 것은 ‘5번 앞면이 나오면, 뒷면이 5번 나온다’라는 것을 약속하지 않는 이치와도 같다.

그럼에도 투자자는 구체적인 수치를 원하는데, 인간 속성은 과거 기록을 미래로 투시하는 패턴화 경향이 있음을 행동경제학은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한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가 진화하며 생존 과정에 만들어낸 습관인데, 이 패턴화는 많은 주변 정보를 무시하고 신속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투자 과정에서 일단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상품 조사를 시작한 금융소비자는 불편한 진실은 회피하며, 듣기 좋고 믿고 싶은 것을 재료로 미래 프레임을 구성한다.

인간 본능으로 보면, 금융소비자는 금융회사가 제시하는 달콤한 기대수익을 추종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위험 항목은 외면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회사는 이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스스로 처한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높은 기대수익을 바라는데, 폰지 금융 사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료1
자료1

자료1은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기대수익률을 추정하는 ‘자본자산 가격 결정이론’(Capital Asset Pricing Model·CAPM)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열광하는 기대수익은 위험이 결정한다. 즉 적정 기대수익은 무위험 수익률과 위험 보상수익률의 합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합리적 투자자(시장 영향력이 큰 대부분 기관투자가)는 위험자산의 시장 가격과 이러한 적정 기대수익으로 추정한 적정 시장 가격을 비교하여 현재 시장 가격이 과대한지 과소한지 평가하여 최종 투자를 결정한다.

이 모델이 의미하는 것은 투자자가 위험을 알지 못하면 기대수익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 기관투자가가 투자 의사를 결정할 때 각각 정교화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으나 CAPM 개념에 기반하므로, 금융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서 위험을 모르고 투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CAPM 개념을 벗어난 투자는 투기와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자료2
자료2

지난달 25일 금융위원회는 국내 금융 시장의 위험에 관한 주목할 만한 발표를 했다.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산정 가이드라인>이다. ‘투자성’은 금융 상품의 투자 결과로 이익과 원금이 변동하는 특성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금융 상품을 ‘실적 배당형’ 또는 ‘위험 상품’으로 통칭한다.

투자성 금융투자상품의 투자설명서에는 금융소비자보호법 제19조에 따라 투자 위험등급을 표기해야만 하는데, 지금까지 ‘금융상품직접판매업자’가 정하는 위험등급을 적용하도록 했다. 금융 상품을 잘 아는 판매자가 금융 상품 성격을 규명하도록 하는 것이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투자 위험등급은 금융소비자의 구매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므로 이 법률은 금융당국의 행정 편의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위험은 금융소비자의 투자 의사결정과 미래 투자손실은 물론, 금융회사의 매출과 수익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대수익과 위험 수준은 ‘상호 배반’(trade-off) 관계가 있다는 것은 투자자의 상식이다. 따라서 기대수익에 비해 위험 수준을 낮게 표기하면 소비자가 선택하기 부담 없으며, 이렇게 포장된 고위험 상품은 판매회사에 높은 보수, 수수료로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한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이러한 상황을 금융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자료3(출처=금융위원회)
자료3(출처=금융위원회)

금융위는 그동안 소비자에게 의무적으로 알려야 할 투자 위험등급을 금융회사가 스스로 산정하는 과정에서 실제 위험도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투자성 상품 위험등급 가이드라인> 제정 취지를 설명했다. 특히 발행사의 신용위험과 시장위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이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 마련한 가이드라인 내용은 기존에 이미 적용하고 있던 투자 위험 등급 체계 산정 방법을 적용한 것이므로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통일 기준으로 지정하는 효과는 금융상품판매회사에 투자 위험등급 공시의 적정성을 강조하고 추후 분쟁이 있을 때 금융회사의 설명의무, 금융소비자 설명 확인 의무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해질 전망이다. 즉, 금융소비자가 의무적으로 공시된 위험을 모른 채 외면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앞으로 판매직원이 제시하거나 강조하는 투자 위험을 모른 척하거나 판매직원이 설명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을 지나치면 안 된다. ‘권리 위에 낮잠 자는 사람은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얘기가 있다. 여기에 ‘위험 위에 낮잠 자는 금융소비자는 자산을 지킬 수 없다’라고 덧붙이고 싶다. 금융위의 이번 조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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