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에 빨대 꽂은’ 메리츠금융 조정호의 신생아 본능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상태바
‘롯데건설에 빨대 꽂은’ 메리츠금융 조정호의 신생아 본능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2.02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지난달 9일 메리츠금융그룹은 자금난에 빠진 롯데건설 구제를 위한 자금 공급에 나섰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11월 기준 연대보증, 자금 보충 약정, 조건부 채무 인수 등을 포함한 롯데건설의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를 11조3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말 부동산 시장 악화, 부동산금융 시장 경색의 여파로 롯데건설도 유동성 위기에 빠졌는데, 우선 긴급한 자금 1조5000억원을 공급하기 위해 메리츠금융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메리츠증권이 기획한 이번 투자협약에 따라 메리츠화재보험, 메리츠캐피탈 등 메리츠금융 계열사는 90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를 매입한다. 나머지 6000억원은 롯데그룹 계열사가 참여한다. 메리츠금융이 채권 선순위로, 후순위는 롯데그룹이 각각 대출하며, 롯데물산과 호텔롯데가 이자 자금 보충 의무를 맡는다. 또한 메리츠금융은 부동산신탁 우선수익권 근질권 설정 등 채권 보전 수단을 철저하게 확보했다. 어려운 시기에 메리츠금융이 건설업계를 구하는 백기사로 나섰다는 세평이 투자금융협약 이후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출처=금융소비자뉴스
/출처=금융소비자뉴스

2021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1조원대 순이익을 기대하는 메리츠금융이 다른 금융회사의 부러움을 사는 이유는 조정호 회장과 김용범·최희문 부회장이 이끄는 리스크 경영 능력이다. 이번 투자금융 협약은 지난해 부동산 시장 악화 직전부터 부동산금융 익스포저에 관한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메리츠증권은 2020년 3월 말 9조원을 상회하던 부동산PF 관련 우발부채 및 대출 채권 등 부동산 익스포저를 지난해 9월 말 기준 5조9000억원으로 크게 줄였다. 또한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공채 등 안전자산 비중이 38.1%로 업계 평균 이상이며, 부동산PF 대출도 A급 이상 시공사 책임준공, 선순위, LTV 50% 이하 등 보수적 투자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나이스신용평가는 판단했다. 게다가 지난달 26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보험사 CEO를 모아 놓고 롯데-메리츠금융 투자협약이 수익성과 공공성을 모두 살린 모델로 소개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메리츠금융을 부러움을 넘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이번 롯데건설과의 투자금융 협약에서 메리츠금융은 부동산 전문 금융그룹답게 완벽한 채권 확보는 물론 이례적인 높은 이자까지 확보했다. 금융은 상식적으로 위험과 수익이 상충관계에 있다.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은 경영 위험이나 영업 위험이 있으면 그 대가로 위험 프리미엄을 가산해 고금리를 지급해야 한다. 롯데건설은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닥치자 롯데그룹 전반으로 리스크가 전이할 우려가 있었으므로 자금 조달 조건의 유불리를 따질 여유가 없는 처지였다. 이러한 불리한 처지를 메리츠금융이 십분 활용해 충분한 채권 확보, 신용보강까지 하고도 12% 수준의 금리를 따냈으며 전체 선순위 대출의 10% 수수료도 선취로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협약 내용을 놓고 일부 증권업계는 궁지에 몰린 기업에 너무 가혹했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투자협약을 주도한 메리츠증권은 과거 KH그룹, 에디슨모터스, 세종메디칼 등 자금 수혈이 절실한 기업의 전환사채(CB) 발행에 적극 나선 전력이 있다. 이들은 검찰 수사를 받거나 테마 이슈로 주가가 급등락한 기업이다. 금감원은 지난달 20일 “사모 CB를 악용하는 자본시장 교란 사범을 엄단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증권회사처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우선하지 않는 것은 ‘돈만 되는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메리츠금융의 경영문화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있다. 참고로 은행 계열 금융지주 산하 대형 증권회사는 부동산 금융 유동성 악화를 해결하기 위한 채권안정 기금 출연 등을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에 지도하는 상황이고, 금융지주 평판 차원에서도 롯데건설 투자협약과 같은 투자 기회는 덥석 받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0년 최희문 사장 등장과 함께 메리츠증권이 하이 리턴(high-return) 성과급제도를 홍보하며 증권업계에서 인력 스카우트 선풍을 일으킨 사실을 필자는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과도한 성과주의 추진은 금융의 본질을 위협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금융 산업 비즈니스의 기반인 금융 자산(금융회사는 자기가 생산한다고 착각하지만)은 국민 소득의 다른 모습에 불과하다. 금융 산업은 금융 자산이라는 사회 인프라를 경영이익의 원천으로 하며, 결국 금융은 공공성을 보장하는 법적 규제와 질서 아래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비즈니스다. 대부분 대형 금융회사 경영은 늘 공공성과 경영이익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메리츠금융의 과도한 성과 지상주의는 과거 규모와 영향력이 미미하고 지속가능성도 불투명한 신생 금융회사였을 때나 용납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성장한 메리츠금융에 그런 행위는 기존 금융회사의 부러움과 걱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이번 롯데건설과 메리츠금융의 투자금융 협약 내용은 이러한 공공성과 경영이익 추구의 경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금감원이 공시하는 금융지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메리츠금융은 총자산 92조원으로 성장한 금융지주회사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면서 국제 교역에서 개발도상국이라는 약자의 특혜를 포기한 것처럼, 메리츠금융도 이익 우선이라는 신생 금융회사 프레임에서 탈피해 금융의 공공성을 생각해야 할 때다. 이번 롯데건설과 투자금융 협약 내용처럼 과도한 이익 추구로 의심되는 행위가 반복될 때, 메리츠금융그룹의 평판은 피도 눈물도 없는 ‘샤일록의 망령’에 가려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