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에 쑥 삐져나온 위험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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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큰증권’에 쑥 삐져나온 위험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3.06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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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아이폰이 2007년 출현할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이 기기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1994년 ‘애니콜’을 삼성전자가 선보인 이후 1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88년 업무 현장에 등장한 개인용 PC는 90년대에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사무기기로 자리를 잡았지만, 그것의 위치는 사무실 책상 위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던 때이므로 손 안의 컴퓨터라는 개념은 너무나 파격이었다. 이후 스마트폰은 2010년대 빠르게 보급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생활을 바꾸어 갔다. 2023년인 지금은 과거 컴맹 취급받던 70대 이상 고령자에게도 스마트폰은 필수 생활 기기가 되었고, 메신저가 잠시라도 사용 불능에 빠지면 사회는 큰 혼란 상태가 되는 현실이다. 역사적으로 과학 기술 변화의 결과에 대해서 사람들은 늘 낫 놓고 기역도 모른다.

요즘 금융 산업의 한 가지 기술 변화를 보면 과거 스마트폰 사례를 떠올리기 충분하다. 역시 스마트폰 도입 때처럼 대부분 사람은 이 금융 기술의 확산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일부 얼리 어답터나 투기꾼이 만드는 찻잔 속 태풍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중앙은행, 금융당국은 물론 금융 산업도 이 기술도입에 부산한 움직임이다. 바로 ‘블록체인’ 기술이 그 주인공이다.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 개발자가 10쪽도 안 되는 논문을 공개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 약 10년 동안 블록체인 시스템 운영의 부산물인 비트코인이라는 디지털 화폐의 투기적 가치에 사람들은 더 주목했다. 심지어 엘살바도르 정부는 법정통화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과도한 가격 급등락 경향, 범죄 자금 이용에 따른 악명 등으로 비트코인 그 자체는 보편적 화폐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각국 정부, 중앙은행, 경제학자들은 평가했다. 이처럼 혹평받았음에도 비트코인을 작동하는 기술인 블록체인은 선진국 중앙은행 등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 중이며, 새로운 미래 주류 통화로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블록체인 기술이 구현하는 디지털 화폐는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을 이용해 통화 관련 비용 절감, 위조 방지, 신속한 송금 등의 장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선진국 중앙은행은 법정통화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은행도 이미 기본적 준비는 끝냈다고 발표했다. 반면 민간차원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이 가상 세계의 디지털 화폐로 정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화폐 기능의 대체 외에도 블록체인 기술은 금융투자 산업의 혁신을 가져올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1월 칼럼에서 NFT를 금융자산 혁신의 시한폭탄이라고 소개한 바 있었다. 대체불가능토큰(Non Fungible Token)의 약자인 NFT는 미술품처럼 희소성과 고유 가치를 가지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가상자산인 토큰으로 만들어 투자 자산을 만드는 것이다. 즉, 부동산 금융에서 토지, 분양대금 현금흐름 등을 증권화하여 투자할 수 있는 금융자산으로 만드는 자산유동화와 유사하게 NFT는 블록체인 버전의 증권화, 디지털 자산 유동화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자동 유동화 기술은 비정형성, 소규모로 과거 현실 세계에서 증권화가 어려운 자산을 가상 세계로 옮겨 유동화함으로써 세계의 부(富)를 늘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부의 증대가 소비를 촉진하여 GDP를 증대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있음을 인정한다. 경제 활성화 효과가 있다는 것이며, 마치 비산유국이 자국 땅에서 유정을 발견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료1(출처=한국금융연구원)
자료1(출처=한국금융연구원)

블록체인의 이러한 금융투자 혁신 기능 때문에 주요 선진국이 블록체인 기술을 제도적으로 금융투자에 구현하는 데 열심이다. 자산의 디지털 유동화를 제도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이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 이하 ST)이다. 미국은 증권형 토큰 적용을 전통적 ‘증권성’ 판단 기준인 하위 테스트(Howey test)로 정의한다. 하위 테스트 기준은 ①금전 투자일 것 ②공동사업에 대한 출자일 것 ③투자 성패가 타인(기업 경영자 등)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것 ④투자 프로젝트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합리적 기대가 존재할 것 등인데, 이 기준에 적합할 때 증권거래를 통한 투자계약으로 판별하고 금융당국은 증권 관련 규제를 적용한다. 세계 ST 시가총액은 2027년까지 24조달러에 이를 것이며, 2030년에는 증권 발행금액의 약 27%(4.2조달러)가 ST로 발행될 것으로 글로벌 전문기관들은 추정하고 있다.

자료2(출처=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자료2(출처=하나금융경영연구소)

이러한 증권형 토큰은 국내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토큰증권 시대의 개막>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명품 등 수집품과 고액 생활 가전, 내구재, 무형자산, 금융상품, 금속 자산 등 가치를 가진 거의 유·무형 자산의 디지털 증권 발행이 가능해지면서 일상생활의 금융화가 진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소는 국내 ST 시가총액이 2024년 34조원에서 2030년 367조원으로, GDP의 14.5%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BCG 컨설팅 전망에 기반하여 추정했다.

자료3(출처=금융위원회)
자료3(출처=금융위원회)

ST의 폭발적 성장을 추정한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적극적 ST 육성 의지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6일 <토큰 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증권형 토큰으로 불리던 것을 ‘토큰 증권’으로 공식 명명하고, 증권성을 가진 디지털 자산을 증권으로 분류하여 자본시장법상 증권에 대한 규제를 적용하겠다 공식화했다. 이때 자산의 증권성 판단은 이미 얘기한 하위 테스트 기준에 의하며,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비정형적인 소규모 투자계약 증권화를 촉진하고 소액 투자가 가능하도록 관계 법령을 개정 추진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금융혁신의 관점에서 비정형적, 소규모 특성으로 제도권에서 발행, 유통에 소외했던 투자계약에 자본 조달과 투자자 유치의 기회를 부여할 방침이다. 이른바 기존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알려진 많은 거래가 토큰화하고 거래소에서 유통되며 유동성을 확보할 예정이다.

한편 토큰 증권 제도에는 발행과 유통에 증권사 이외의 기관이 일정 요건을 갖추면 참여할 수 있다. 즉 빅테크의 금융투자업 참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따라서 은행업 진출에 이어 빅테크가 강점을 가질 디지털 세계에서 자산유동화 비즈니스가 가능해진다. 과연 빅테크가 이 기회를 어떻게 비즈니스화할지 궁금하다. 이미 빅테크의 지급 결제와 은행업 진출에 우려 섞인 분석이 많고, 선진국은 빅테크가 속한 산업에서도 의회가 주도한 반독점 규제가 진행 중이다. 그 핵심에는 금융소비자 보호나 개인정보 보호 이슈가 있다. 토큰 증권 제도 도입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의 출현을 의미한다. 금융당국은 빅테크나 성과주의에 치우친 금융회사를 배 불리기 위해 금융소비자 보호에 소홀한 것이 없는지 신중해야 한다.

ST 수요 증가의 배경에는 디지털 생태계에 익숙한 MZ 세대가 있다. NFT, 조각투자 등 토큰 증권은 다양한 고위험 투자계약에 대한 접근성을 대폭 완화하고, 고위험 금융상품 공급을 증가하는 것이므로 젊은 층 자산 포트폴리오의 위험 수준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투자계약은 경기가 악화하면 가장 먼저 부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토큰 증권은 투자계약 시행자 위험의 투자 자산 전이 차단(도산절연)에도 취약하므로 반복하는 블랙스완이 날아들 때, 금융당국 취지와는 달리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도 유의해야 한다. 금융제도화는 금융소비자가 정부 권장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송곳을 주머니에 넣어도 송곳 날은 주머니 밖으로 뚫고 나올 수 있는 오래된 경험을 고사성어로 ‘낭중지추’(囊中之錐)라 한다. 아무리 금융감독을 잘해도 토큰 증권의 위험을 감출 수 없다. 금융위가 금융혁신 성과를 달성했다는 경영평가에 너무 매달리면 국민이 희생될 수 있음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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