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만하면… SK 최태원 회장 덮친 ‘비선 리스크’ 악몽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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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SK 최태원 회장 덮친 ‘비선 리스크’ 악몽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3.03.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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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진혁, 기업 인수 둘러싼 유착 의혹 터져 나와… 2016년에도 ‘은씨 영입’ 놓고 내홍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3개국(스페인, 덴마크, 포르투갈)을 순방하며 활발한 글로벌 경영 행보를 이어가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과거 2010년대 초중반 일었던 ‘오너 리스크’의 불씨가 다시 한 언론사의 집중 취재로 살아나고 있다.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 지원 및 과학법(CHIPS Act)에 대한 세부사항 발표로 SK하이닉스의 경영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불거진 리스크여서 최태원 회장과 SK그룹에 뼈아픈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자료 1(출처=SBS 보도 재구성)
자료 1(출처=SBS 보도 재구성)

SBS 탐사보도팀은 지난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SK그룹과 사모펀드 운용회사인 알케미스트 사이에 모종의 석연치 않은 거래관계가 있으며, 그 배경에는 SK 최태원 회장과 알케미스트 자문역인 은진혁씨의 유착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보도에 따르면 알케미스트는 7개 펀드를 조성해 SK 관련 기업 인수에 나섰고, 총 펀드 규모가 6870억원에 달해 수수료 등 명목으로 상당한 거래 관련 수익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SBS는 SK하이닉스가 반도체 관련 기업 키파운드리를 5698억원에 매수하는 과정에 대해 집중 의혹을 제기했는데, 펀드 투자자였던 SK그룹이 알케미스트와의 거래를 감추기 위해 중간 운용사를 두고 전체 기업 인수 과정을 직접 지휘했다고 보도했다. 알케미스트가 관여한 거래 기업은 반도체 분야 에이팩트, 오션브릿지 외에도 SK건설 자회사 SK TNS 등이다.

은진혁이라는 인물이 사모펀드 운용사 알케미스트 배후에서 SK그룹 기업 인수를 조정하고 이익을 챙겼으며, SK그룹은 최태원 회장 지시로 이들 거래를 비밀리에 진행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과연 은진혁씨는 재계 2위 그룹 회장이 노출되면 뻔히 닥칠 여러 위험을 감수하면서 뒤를 봐줄 만큼 대단한 인물일까. 이에 대한 단서는 한겨레의 2016년 집중 취재에서 찾을 수 있다. 최태원 회장의 경영 복귀 후인 2016년, SK그룹 최고 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는 의장 직속 기구로 통합금융 솔루션 팀(IFST) 설치를 건의했다. SK그룹의 투자은행(IB) 금융 기능을 담당하는 요직이었는데 팀장인 부사장 자리에 바로 은진혁씨를 내정한 것이다. 당시 언론은 은진혁씨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며 그에게 ‘비선’이라는 태그를 붙였다. 당시는 최태원 회장을 옥살이로 이끌었다는 두 인물인 ‘김준홍·김원홍 비선’에 대한 그룹 내외 반감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SK그룹이 이제 막 흑역사에서 벗어나려는 기대가 있었는데 과거 비선들과 배경이 같은 은진혁씨의 출현은 그룹 내외에서 호락호락 받아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료2(출처=한겨레 보도 재구성)
자료2(출처=한겨레 보도 재구성)

한겨레는 최태원과 은진혁의 당시 관계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은진혁씨는 최태원 회장이 애착을 두고 창립한 브이소사이어티라는 기업인 사교클럽 법인의 총무였다. MIT를 졸업하고 퍼듀대학교에서 반도체물리학과 전기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공학 인재’인 은진혁씨는 당시 인텔코리아 사장으로 재임하던 중이었다. 이후 은진혁씨는 맥쿼리펀드로 옮겨 전무로 일했는데, 2005년 SK그룹이 합작 법인을 세우려던 미국 엔론이 도산하자 재정적 곤란에 빠진 SK엔론의 구원자로 맥쿼리가 나서며 지분 49%를 인수했다. 이때 최태원 회장과 은진혁씨 사이에 특별한 유대가 생겼음이 틀림없다. 최태원 회장의 뇌리에는 애착을 가진 브이소사이어티가 가져온 성공적 결과로 은진혁과의 관계가 지리매김을 했고, 둘 사이는 손익계산서로 산출할 수 없는 공조관계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진혁씨의 SK에 대한 기여는 그룹 내부에서 보기에는 거기까지였다. 맥쿼리 이후 2008~2010년 은진혁씨는 하빈저캐피탈 아시아본부에 있으면서 SK그룹과의 거래에서 상당한 실패를 거듭했다. 이때 SK그룹 내부에는 ‘은진혁은 이전 비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필자 경험에 조직은 겉으로는 침묵하지만, 부정적 인식으로 공유된 기억은 환경호르몬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조직 내외부에 폭발 에너지가 비등점을 기다린다. 이 때문에 2016년 ‘IFST 팀장 거부’라는 사태가 발생했을 것이다.

자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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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은진혁이라는 존재와 최태원 회장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금융사건이 금융위기 당시에 있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을 선언하며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포스트 리먼으로 골드만삭스가 금융시장에서 떠올랐다. 자칫 뱅크 런, 펀드 런이 발생하면 파산이 닥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골드만삭스를 구한 것은 버크셔 헤서웨이의 워런 버핏이었다. 버핏이 50억달러를 골드만삭스에 투자한다는 한 문장이 세상에 알려지자 골드만삭스에 대한 패닉이 가라앉고 신뢰가 찾아왔다. 이때 워런 버핏을 골드만삭스에 투자하도록 설득한 인물이 있었는데 바이런 트롯(Byron Trott)이라는 고도 금융(Haute Banque) 전문가였다. 그는 워런 버핏이 믿는 유일한 투자은행 전문가이며, 고도 금융은 19세기까지 교황이나 황제와 귀족, 정부 재산을 운용하는 전문 서비스였다. 바이런 트롯은 현재 내로라하는 고액 자산가를 상대하는 BDT&MSD 파트너스의 CEO이며, 그의 회사는 500억달러를 관리하고 있다고 홈페이지에 소개한다. 한편 고도 금융은 정부 비호에 독점적으로 성장한 국내 금융산업이 흉내 낼 수 없고 찾아볼 수 없는 금융서비스 영역이며, 이 때문에 국내 언론이나 금융권에서는 이들 행태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아마 최태원 회장이 은진혁씨에게 맡긴 역할을 미뤄보면, 그가 SK엔론 사태에서 도움을 받은 은씨에게 기대했던 것은 고도 금융 전문가 역할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물론 최태원 회장의 기대에 은씨가 부응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자료4(출처=공정거래위원회)
자료4(출처=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월 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계 서열 2위 SK그룹은 소속 회사가 201개로 대기업집단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자랑한다. 그만큼 기업 인수 작업은 SK그룹의 성장을 좌우하는 중요 활동이다. 알케미스트가 취급한 7개 기업은 SK 전체 소속 회사 비중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한편 은진혁씨가 명문대를 나와 인텔에 근무하는 등 IT전문가 자격은 충분하므로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관련 기업 인수에 자문하는 것 자체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또한 알케미스트에는 다수의 전문가가 활동 중이다. 그런데도 여러 가지 SK그룹 일을 해온 알케미스트가 은진혁씨가 자문으로 있다는 사실을 감춘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데, 그가 2016년 언론의 ‘비선 낙인찍기’에 SK그룹 통합금융 솔루션 팀장에서 하차한 트라우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알기로 사모펀드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기업 인수 설계는 SK그룹만의 사례는 아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IB 거래 과정이 거래 쌍방 간 비밀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므로 세부적 정보가 제한된 외부인 시각으로는 그들의 행태에 의문을 가질만한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비밀 거래는 당사자에게는 효율적이지만 거래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에게는 의혹의 소재이기도 하다.

당연히 SK그룹은 모든 인수합병(M&A) 과정을 적법한 절차와 합리적 판단에 따라 집행했다고 주장하며, SBS 보도로 SK 기업가치와 평판에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강한 유감을 밝히고 있다. 한편 SBS의 지배주주인 태영그룹 윤석민 회장은 SK그룹 최재원 부회장과 하버드 MBA 동창생이다. 그런데도 재계 서열 41위 그룹 소속 회사인 SBS가 재계 서열 2위 SK그룹을 연일 공격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배경에 어떠한 역학이 작용 중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공격 빌미가 된 최태원 회장과 은진혁씨의 관계는 여러 정황상 ‘최태원의 집착’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며, 그런 행태가 ‘비선 의혹’을 다시 점화한 것으로 보인다. 비선과 내연녀, 혼외자 등 오너 리스크에 10년 이상 시달린 SK그룹의 임직원들은 은진혁씨의 재등장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반도체 업황 악화, 미국 CHIPS Act 악영향에 따른 미래 불확실성과 함께 강력한 조직 거부감으로 발현할 수 있다. 필자 경험에 언론의 부정적 보도는 다수가 내부 임직원의 부정적 여론에서 촉발된다. 결국 실패한 고도 금융 전문가인 은진혁씨가 (억울할 수도 있지만) SK그룹 그늘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최태원 회장과 SK의 ‘위기 복원력’을 약화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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