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와 함영주, 그들이 되새겨준 ‘하나금융의 정신’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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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와 함영주, 그들이 되새겨준 ‘하나금융의 정신’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3.2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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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하나은행은 작지만 알찬 금융회사였던 한국투자금융이 모태다. 주변에서 하나같이 말리던 '은행 전환'을 추진하더니 1998년 즈음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틈타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을 잇달아 합병하며 일약 시중은행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M&A(인수·합병) 성장형 은행이 바로 하나은행이다.

2005년 하나은행은 펀드시장의 공룡으로 손꼽히던 대한투자증권을 인수했다. 당시엔 흔치 않던 은행업과 증권업의 결합이라 화제를 모았고, 대한투자신탁은 펀드시장 초기부터 강자로 군림하던 금융회사였기에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주변의 기대가 컸다. 한편으로는 기업과 직원의 정서·문화에 큰 차이가 있는 이종 금융회사가 과연 '화학적 융합'을 도모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은행은 대한투자신탁 인수 이후 하나금융그룹으로 성장했고, 은행과 증권회사 간 업무 융합을 위해 인적교류, 점포연계, 매트릭스형 조직 운영 등 '시너지 창출 실험'에 과감히 나섰다. 당시 증권회사 직원 눈에 비친 하나은행은 보수적인 시중은행과는 다른 열정과 도전정신이 빛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은행 직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인티그리티 정신'이었다. 인티그리티(integrity)는 초대 윤병철 은행장 때부터 하나은행이 늘 행원에게 강조하던 것으로 '정직-성실-진실'의 의미를 담은 기업문화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하나은행은 업무 과정에서 실수하는 것은 봐줘도 거짓말하거나 부도덕한 것은 봐주지 않는다는 엄격한 원칙을 지켰다. 5년, 아니 10년이 지났더라도 부정직한 행각이 사실로 드러나면 예외 없이 옷을 벗겼다. "절대 하나은행 사람에게는 인티그리티 기준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증권회사 직원에게 그들은 입버릇처럼 경고했다.

그 이후로 강산이 두번 바뀌는 세월이 지났다. 김승유 하나금융 초대 회장 이후에 2012년부터 김정태 회장이 2022년 3월까지 여러 차례 연임하며 10년 장기 집권을 했다. 김승유 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출신으로 윤병철 은행장과 함께 하나은행을 출범시킨 '성골'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금융그룹 출범 당시만 해도 윤교중, 김종열 등 쟁쟁한 성골이 김승유 회장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예상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울은행 출신인 김정태 전임 회장은 성골 주변을 맴돌며 도광양회하는 실력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뜻밖의 역류를 만난 유력한 성골 출신 회장 후보들이 그룹의 미래를 막는 장애물로 남지 않겠다는 통 큰 결단으로 회사를 떠나자 김정태 회장이 극적으로 하나금융 권좌에 올랐다. 한국투자금융에서 하나은행을 제2 창업한 도전자들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후 10년간 김정태 회장의 집권기에 함영주는 은행장에서 부회장으로 차근차근 기회를 기다렸고 우여곡절 끝에 올 3월 주주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됐다. 전임 김정태와 신임 함영주 회장은 모두 서울은행 출신이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하나·충청·보람·서울·외환은행 등 하나금융그룹을 구성하는 수많은 은행 구성인력 중 서울은행 출신이 2회 연속 회장을 배출한 것은 우연에 불과할까? 하나금융 조직을 굳이 출신 성분 별로 구분할 의도는 없지만, IMF 금융위기와 함께 설 곳을 잃은 서울은행 출신 직원의 와신상담, 권토중래라는 내러티브를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김정태 회장과 함영주 하나은행장이 배터리로 재임하던 10년간, 그룹 가치로 내려오던 인티그리티 기준에 반하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다는 점이다. 최순실 게이트, 채용 비리, 대장동 게이트 등이 대표적인데 적용된 혐의의 사실관계를 떠나 하나금융그룹 전·현직 회장은 국정감사, 검찰, 경찰의 증언·수사 대상에 계속 오르며 세인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설상가상 2022년 사업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하나금융 자회사 하나금융투자의 직전 사장이 미공개 직무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기소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직원들이 자부심으로 삼던 하나금융 거버넌스(governance)의 인티그리티는 희석될 대로 희석됐다.

금융의 기본 원칙인 신의성실 의무(fiduciary duty)를 무색하게 하는 사건도 줄을 이었다. 금융당국은 하나은행의 DLF(파생결합펀드) 판매 과정에서 발생한 불완전 판매, 내부통제기준 위반, 부당한 재산적 이익 수령, 검사업무 방해와 관련해 8개 위반 사실을 지적하며 업무정지 6월, 기관경고, 감독자 문책 경고 등의 징계를 내렸다. 이들 사실을 적시한 금융감독원의 검사보고서는 낯 뜨거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금융회사로서 하나금융의 총체적인 신의성실 의무 망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심각한 것은 후발 하나은행이 최대 경쟁자산으로 키우고 자랑한 PB(프라이빗 뱅킹)와 WM(웰스 매니지먼트)이 이들 사건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또한 문제는 이러한 신뢰 추락 사건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7~2019년에 하나은행이 판매한 독일 헤리티지 펀드(510억원),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1535억원), 라임 펀드(871억원), 디스커버리 펀드(240억원) 등에서 펀드 부실, 불완전 판매 등 문제가 계속 발생했으며, 최근 함영주 회장을 선임한 주주총회장 안팎엔 피켓 행렬과 사모펀드 피해자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DLF 관련 징계와 1심 재판 패소에도 불구하고 징계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징계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이어가며 기어코 회장 자리에 올랐다. 하나금융그룹이 직원에게 강조하는 윤리헌장은 ‘윤리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직원이 준수해야 할 윤리강령에는 ‘내 행동이 다른 임직원이나 언론에 공개되어도 문제가 없겠는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항은 윤리 또는 준법담당 부서에 의견을 물을 수 있다’고 상기시키고 있다. 함영주 회장이 패소한 DLF 1심 재판부는 "내부통제 위반이 명백하다"고 판결했다. 고객에게 단 1원의 불편도, 일말의 정신적 고통도 주면 안 된다는 윤리헌장과 윤리강령은 직원만 지키면 된다는 조항을 이참에 신설해야 하는 건 아닐까.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하나금융 거버넌스에 관하여 고객과 투자자는 인증기관의 평가를 믿지 않고 나름의 시각으로 하나금융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상태를 평가하며 하나금융 주가에 디스카운트(discount) 요인을 반영할지 모른다.

금융 기자가 쓴 책 <한국을 뒤흔든 금융권력>이 소개한 김정태 회장 대목에는 "업의 본질을 강조한다"는 구절이 있다. 필자가 아는 은행업은 예금 중 예금자가 일정 기간 인출 안 할 것 같은 예금 비율을 지급준비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대출과 예금 과정을 반복하는 신용 창조 과정을 통해 대출 자산을 불려 예대 이자 차이를 극대화하는 금융 비즈니스다. 이러한 모델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은행업의 아킬레스건은 예금자의 신뢰 상실로 발생하는 '뱅크런'(bank-run)이다. 이는 1929년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등 금융 역사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은행업의 생명은 '예금자의 신뢰'다. 한국의 은행들은 이제라도 법과 정치의 보호 속에 오랫동안 안주하면서 '업의 본질'을 잊은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 함영주 회장이 이끌 새로운 하나금융그룹은 과연 하나금융의 탄생 전설에 녹아 있는 인티그리티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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