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의 진정한 피해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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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재’의 진정한 피해자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3.07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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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모두의 예상을 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가 침공을 시작하자 미국과 서방세계 주요 국가는 군사적 대응보다는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에 했던 것처럼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속에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할지 걱정하면서, 러시아 경제 제재가 가져올 후폭풍이 자국 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는 GDP 1조5000억달러로 한국 다음인 11위의 경제 대국이다. 과거에 경제 제재를 받은 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경제 규모다. 반면 2010년 남유럽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그리스는 GDP가 1890억달러에 불과했는데, 러시아 7분의 1 규모의 그리스 경제가 흔들리자 2008년 금융 위기처럼 세계 금융은 요동쳤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으로 경제 제재를 받은 뒤 서방세계의 경제 제재에 대비해 ‘요새 경제’(fortress economy)를 구축해왔다. 러시아는 63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을 적립했고, 외채 비율은 18% 수준으로 탄탄하다. 경제 규모도 클 뿐 아니라 러시아는 원유, 가스 등 에너지와 광물, 농산물 시장의 영향력도 크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밀 생산의 14%를 차지하고 수출 비중은 29%를 차지한다. 러시아 농산물 수출에 애로가 발생했을 때 다른 나라의 식량 위기는 불가피하다.

특히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40%의 천연가스와 25%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 에너지 수출이 지장을 받으면 세계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에너지와 더불어 러시아는 항공, 해양, 자동차 부품 생산에 사용하는 티타늄의 두 번째 큰 생산자다. 미국의 보잉은 러시아로부터 티타늄 필요량의 3분의 1, 에어버스는 2분의 1을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러시아는 반도체의 원료인 팔라듐(palladium)의 40%, 컴퓨터 칩 생산에 사용되는 네온의 70%를 세계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코로나19가 불가피하게 사람 사이 거리를 벌리는 것과 함께, 미-중 패권 전쟁은 국가 간 이해관계를 균열시키고 각자 우호 세력의 블록으로 묶어나갔다.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비교 생산 효율성을 추구하는 국제적 분업으로 공급과 수요가 촘촘하게 엮이며 하나의 글로벌 산업체계(global value chain)를 형성했다. 또한 세계 금융에서는 IT와 통신기술의 발전과 금융 자유화, 금융 증권화 기치 아래 돈이 국경을 촌각을 다투며 흘러 다니는 금융 세계화(globalization) 망이 구축됐다.

지난 40여 년간 서방세계와 중국,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넘어 하나의 유기적 시장이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허물어왔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에 중국이 도전하자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은 세계화 전략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로나에 의한 글로벌 산업체계의 교란이 발생하며 세계 경제 재편과 새로운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 세계 경제 변화의 속도에 러시아의 침공 행위가 다시금 가속을 붙이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중이다. 표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 땅에서 재래식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을 대표로 미국에 저항하는 국가들과 서방 달러 경제권의 이해관계 국가 사이에 치열한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영국과 EU, 캐나다, 일본, 오스트리아 등의 러시아 경제 제재는 금융 제재가 핵심이다.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는 중립국인 스위스도 참여해 충격을 더하고 있다. 금융 제재는 러시아 최대 은행 두 곳의 달러 거래를 제한했고, 7개 러시아 은행을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IFT)에서 쫓아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자산 1조달러가 꽁꽁 묶이는 효과가 발생했다. 옥스퍼드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경제 제재가 러시아 GDP를 6% 축소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은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공급받는 파이프라인인 ‘노드스트림 2’의 승인을 취소했고 노드스트림은 파산했다. 러시아 원유와 가스에 대한 직접 제재는 아직 시행되지 않았지만, 금융 제재로 러시아산 재화와 에너지 수출은 거래처의 거래정보와 신용공급이 제한받으며 실질적인 러시아의 수출 통제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엑손모빌, BP, 노르웨이 에퀴노르, 프랑스 토털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있고 애플, 구글 등도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는 등 기업 차원의 러시아 제재 동참도 줄을 잇고 있다.

또 하루 500만배럴을 제공하는 러시아의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원유시장에서 이를 대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 3일(현지시간) 유가가 2008년 이후 최고가인 116달러를 기록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코로나에 이어 러시아 침공에 의한 공급망 교란은 원자재가격은 물론 농산물가격까지 들썩이게 하고 있다.

서방세계가 직접적으로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 원자재를 제재하지 못하는 이유는 러시아 침공 이전에도 심상치 않았던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무디스는 러시아 침공이 현재 세계 최고 리스크를 코로나에서 전쟁 리스크에 의한 공급망 교란으로 바꿨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1월 물가 상승률은 40년 만의 최고치인 7.5%였고 EU가 5.8%를 기록했다. 무디스 침공 영향으로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함께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BofA 글로벌 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앞으로 12개월 이내 스태그플레이션 확률은 지난달 22%에서 현재 30%로 높아졌다.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주 의회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이 서민들 생활을 어렵게 할 거라며 물가 통제를 최우선 정책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난해 상원 통과에 실패한 인프라 법안인 <재건법>(Build Back Better)에 의한 서민 지원 투자를 의회에 요청했다.

서방과 중국·러시아 간 경제적 패거리 싸움이 본격화하는 증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가장 큰 희생자는 코로나로 이미 피해를 본 저성장국가, 저소득자, 자산이 부족한 빈자 등이 될 가능성이 크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러시아 경제 제재 효과 분석에 2008년 리먼 브러더스 붕괴를 떠올리는 ‘리먼 모멘텀(Lehman momentum)’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그만큼 우크라이나 사태 충격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코로나 발생 기간에도 줄곧 불평등 문제를 지적해왔지만, 러시아 경제 제재 충격이 또 다른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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