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 ‘전세대출 억제’ 권한  KB금융 보고서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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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 ‘전세대출 억제’ 권한  KB금융 보고서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4.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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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말미암아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천운의 기회를 잡은 윤석열 차기 정부가 시행할 부동산 정책은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주도할 내각으로 국무총리에 한덕수, 경제부총리에 추경호, 국토교통부 장관에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내정했다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0일 직접 마이크를 잡고 발표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를 11일 정부에 제안한 것을 필두로 조만간 새 정부의 부동산 종합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부동산 정책을 직접 시행하지는 않지만 시장의 자금 물꼬를 좌지우지하며 주택가격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금융위원장 후임에는 ‘정통 모피아’로 분류되는 최상목 인수위 경제 1분과 간사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2021년 취임과 동시에 금융 안정의 불안 요인이자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으로 ‘가계대출’을 낙인찍으며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피폐해진 서민경제를 마구 몰아세웠다. 후임으로 유력한 최승목 인수위 간사는 부동산 금융을 어떤 방법으로 조정할지 골머리가 아플 것이다. 부동산 정책이 제아무리 좋아도 관련 금융 정책을 서툴게 조율하면 정책 기조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부동산시장에 관해서는 분석력을 자랑하는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차기 정부 부동산 금융 정책의 조력자로 재빠르게 나섰다. 윤석열 정부 출범이 임박한 시점에 친절하게 ‘전세자금대출 증가에 따른 시장변화 점검’ 제하의 보고서를 내놓은 것이다. 민간 금융회사에서 정책 가이드를 납품하고, 금융 일선의 제안을 차기 정부가 정책 기조로 받아들이면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조직도에 따르면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직속 기구다. 윤석열 정부 인수위가 부동산 정책 준비에 부산한 시점에 KB금융의 정책 제안 보고서가 발표되자 언론도 관심도를 키웠다. 보고서에서 KB금융은 전세자금대출에 대해 이례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했다. 전세자금대출이 전세가격과 주택가격 폭등에 악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정부가 금융 정책으로 대출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보고서는 2010년 이후 2017년까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지원을 확대한 전세자금대출이 2016년 이후 갑자기 폭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2012년 23조원에 불과하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6년 이후 급증세를 보이며 2021년 180조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저금리가 동반하면서 전세자금대출로 풀린 막대한 자금이 전셋값을 끌어올리고 주택매매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보고서 분석의 요지다. KB금융은 특히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자 전세자금대출을 이용한 다주택자 및 무주택자의 ‘투기성 갭투자’가 횡행하며 주택시장의 투기수요를 자극했다고 상세한 분석을 통해 지적했다.

21쪽에 달하는 전세자금대출 분석 보고서의 결론으로 KB금융은 전세자금대출의 규제를 강화해 과도한 유동성을 억제해야 한다는 정책 제안을 차기 정부에 타전했다. 이를 위해 첫째,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비율인 매매전세비가 일정 수준(70% 또는 80%) 이상이면 대출을 제한하고 둘째, 전세자금대출의 원리금 분할 상환을 유도하며 셋째, LTV(주택별 대출한도) 규제는 완화하되 전세자금대출은 차주 단위 상환능력 심사(DSR) 항목에 포함해야 한다는 조언을 보고서에 담았다. 이 보고서가 내린 결론을 근거로 일부 언론은 인수위가 DSR에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하는 정책 입안을 검토 중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내놨다.

KB금융은 주택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KB국민은행을 주력 자회사로 거느린 그룹으로 주택부동산 시장에 관해서는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KB금융의 연구보고서에 담긴 시각은 주택전세계약의 임차인인 국민 대다수의 형편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 최근 KB금융지주 주주총회에 보고된 현황에 따르면 2021년 KB금융 평균 급여액은 남직원 1억8000만원, 여직원은 1억2600만원에 달한다. 등기이사는 평균 8억6000만원의 연봉을 챙겨갔다. 이 보고서의 작성자나 피보고자는 너나없이 상당한 상위 소득자에 속한다. 이들처럼 고액 연봉자이면서 거대 금융그룹에 몸담아 대출에 별반 애로가 없는 직원은 전세자금대출을 대하는 대다수 국민의 절박함과는 거리가 꽤 있는 것이 당연하다.

금융감독원 부원장으로 재직한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서 ‘정책의 시간’에서 소득 상위 10% 계층이 ‘짬짬이로 빚어내는 불평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그의 지적대로 KB금융 보고서의 분석과 결론도 상위 10% 소득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행동경제학의 많은 실험이 입증하듯 인간은 자기가 속하고 얽매인 기준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는 ‘앵커링’(anchoring)의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대다수 일반 서민과 같은 처지인 전세자금 대출자다. KB금융 보고서의 결론에는 필자가 보기에 여러 가지 이견이 눈에 띄는데 몇 가지만 짚어보자. 먼저 전세자금대출이 부동산 문제의 주범이라는 분석에서 일시적 현상을 전체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경향이 보인다. 보고서가 제시하는 자료에 따르면 전세가격 폭등은 2020년과 2021년 2년간의 일시적 현상이었고, 전세자금대출 순증액도 2021년 이후엔 급격한 내림세로 돌아섰으며, 2022년 들어서부터는 전세가격이 뚜렷한 하락세를 걷고 있다. 더군다나 전세자금대출이 급증했다는 2016년 이후부터 2020년 이전까지 전세가격변동률은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규모 면에서도 전세자금대출은 KB금융이 걱정하듯 정책당국이 규제에 나서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정도까지 관리 위험이 심각하지 않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9월 기준 국내 부동산금융 규모는 1667조원이며, 그중에 전세대출 잔액은 180조원으로 전체의 11% 수준에 불과하다.

아울러 주택가격과 전세가격 그리고 전세자금대출 간의 상관관계를 짐작할 수는 있지만 세 변수 간의 시계열 차원의 인과관계는 확언할 수 없다. 그리고 위 ‘전세자금대출 증가와 주택매매가격 상승 구조’ 그림의 하단에 표시한 것처럼, 문제는 전세 수요 증가와 전세가격 상승에서 시작하고, 또 이것은 주택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등이 원인이 되어 연쇄적 악화 과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전세자금대출 증가는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증가에 뒤따르는 부수적 과정이라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결국 전세가격을 올리는 주체는 주택가격 상승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임대인이다. 전세가격을 따라가느라 전세자금대출 금액을 늘릴 수밖에 없는 대다수 국민이 주택가격 상승의 원흉이라고 지목하는 것은 세입자 입장에선 대단히 억울하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KB금융 보고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분석에 공을 들인 ‘갭투자’가 부동산시장 교란의 원인이라고 콕 집어 강조했다. 기존 금융위의 가계부채관리방안에서 한발 더 나아가 차기 정부가 전세자금대출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논거로 KB금융은 ‘무주택자들이 저금리 전세자금대출을 부동산 투기의 레버리지로 악용하고 있다’고 확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거 2015년 즈음부터 부동산시장에서 다주택 보유를 통한 투기의 방법으로 갭투자라는 용어가 두드러졌으나 이 보고서는 갭투자를 1주택을 보유하면서 전세를 사는 국민에게도 확대 적용하며 ‘투기의 누명’을 씌우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 해야 전세자금대출을 규제하자는 보고서가 인상적인 결론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주택자이면서 전세를 사는 많은 국민은 강제퇴직이나 은퇴로 일자리를 잃거나 생계형 사업의 악화 또는 자녀 결혼·교육자금 등으로 말미암아 눈물로 생활 터전을 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값이 무지막지로 뛰어오르니 마지막 희망을 거는 심정으로 입주는 어렵지만 ‘전세 낀 주택 보유’에 도전한 국민도 있다. 어떤 부모는 자녀교육 때문에 강남에 집을 사지 못해 변두리에 살던 집을 전세 놓은 후 전세자금대출을 보태 학교 근처로 이사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과거 수십년간 정부가 주택정책과 교육정책 그리고 소득정책에 실패한 것이 원인이다. 무주택자의 갭투자를 투기로 몰아 규제하는 것이 과연 옳은 처방일까. 그것은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다.

KB금융 보고서는 또 LTV 규제를 풀고 DSR에 전세자금대출을 포함시키라고 주문했는데, 이는 주택금융이 고신용·고소득자에게 집중하고 저신용·저소득자에게 마지막 남은 주택금융 수단인 전세자금대출을 차단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과거 DSR 도입 당시 기록을 보면 초기에는 DSR이 대출 규제보다는 취약 소득계층의 대출 위험을 파악하고 지원하자는 취지가 중심에 있었다. 그러다 2021년 가계대출관리방안부터 대출 규제에 방점이 찍히면서 부실여신을 차단하는 전지전능한 수단으로 DSR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DSR 조기 도입 설계 과정에서도 민생 지원 차원에서 전세자금대출은 대출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그래야만 하는 정책적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시경제 지표 관리나 금융안정 의무도 없는 민간 금융사인 KB금융이 발 벗고 나서서 전세자금대출 억제를 건의한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시장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민간 금융사의 정책 제안 보고서가 나와주면 인수위는 자기 판단에 의한 전세자금대출 억제 정책의 도입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업의 과실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신임 금융위원장과 KB금융 경영진의 ‘밀월관계’로 나타날 수도 있겠다. 걱정이 앞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새로운 정부는 전세·매매가격 안정화를 명분 삼아 전세자금대출을 압박하며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교각살우’의 실수를 저지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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