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부채 인식, ‘교각살우’가 두렵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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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부채 인식, ‘교각살우’가 두렵다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1.12.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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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가 지난 4월과 10월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한 이후, 이달 3일 금융위원장은 11월 가계부채 관리 실적을 발표하며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달 가계부채 증감액이 5.9조원을 기록하며 추세가 꺾였다고 금융정책 성과를 과시하며 2022년에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 기반하에 차주 단위 DSR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가계부채는 전년 동월에는 18.7조원이었으니 비교하면 감소 폭은 어마어마한 것을 알 수 있다. 2020년 11월 이후에도 코로나19로 서민 가계 대부분은 충격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물리적,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의 부채를 연구한 한 보고서가 눈에 띈다. 지난 13일 한국은행은 <매크로 레버리지(macro-leverage) 변화의 특징 및 거시경제적 영향>이라는 제목의 이슈 노트(이하 한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레버리지란 부채를 보유한 상태를 나타내며 부채를 늘리는 과정은 레버리징(leveraging), 반대로 부채를 줄이는 과정은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다.

매크로 레버리지란 국가부채와 민간부채를 모두 아우른 국민 경제의 총부채를 말하는 것으로 경제 보고서답게 어렵게 표현한 것이다. 즉 한은 보고서는 총부채가 늘어나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이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연구주제다. 그 답을 찾기 위해 한국 경제의 부채 변화 특징을 주요 국가와 비교 분석하고 거시경제에 대한 파급효과와 정책적 시사점을 이 보고서는 제시한다.

이 보고서가 나름의 실증적인 연구 분석 후 내놓은 결론은 금융위원회의 가계 부채관리 방안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매크로 레버리지 특징은 ▲민간·정부 레버리지가 동시에 증가하는 가운데 ▲민간 레버리지가 압도적 증가를 하고 있고 ▲취약 부문 부채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자료=한국은행 이슈노트 
/자료=한국은행 이슈노트 

이러한 특징은 과거 금융위기 때 주요국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경험과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위기 발생 후 위기 수습을 위해 정부 레버지리가 증가하는 반면, 민간부문은 디레버리징 과정이 있었다.

/자료=한국은행 이슈노트
/자료=한국은행 이슈노트

한은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비기축통화 7개국의 자료를 바탕으로 통계적 영향을 추정하였는데 민간과 정부 부채가 모두 장기적인 평균의 표준편차 1배를 벗어날 때는 금융위기 충격이 있으면 경기하강 충격도 크고 회복에 5년 이상이 걸렸다(시나리오4). 정부 부채만 높을 때는 회복에 4년(시나리오3), 민간부채가 높을 경우에는 회복에 3년 미만이 걸리는(시나리오2)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한국경제의 2020년 이후 매크로 레버리지는 GDP 대비 254%, 민간부채는 210%, 정부 부채는 45% 수준이다. 민간부채가 과다한데 정부 부채까지 늘리면 경제에 큰 부담이 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즉 정부 부채가 과도한 상황에서 금리 인상 등 민간부문 충격이 있으면 재정건전성이 악화하고 국가신인도가 저하하며 자본 유출로 이어지는 외환위기 사이클이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부채는 건전성 유지를 위해 증가를 억제하고 민간부채도 가계부채의 편중된 증가를 억제하는 등 관리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는 금융위원회의 가계 부채관리 방안의 근거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한은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논리에 필자는 의문이다. 지난 칼럼 <10.26 가계부채 대책에 빠진 것(10월 26일자)>, <‘독배’ 받은 가계부채의 변명(9월 29일자)>에서도 제기했던 것처럼 부채의 문제는 ‘악’으로 보는 금융당국의 시각처럼 간단치 않다.

/자료=IMF
/자료=IMF

이달 15일 IMF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글로벌 총부채(=한은 보고서의 매크로 레버리지)는 GDP 대비 28% pt 증가해서 256%에 도달했고 금액으로는 226조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에 20%를 글로벌 부채 증가와 비교하면 코로나19의 충격은 컸다.

/자료=한국은행 이슈노트
/자료=한국은행 이슈노트

명실공히 선진국에 속하는 한국 경제는 이번 코로나 위기에서 보여준 레버리징 행태는 세계추세 특히 선진국 추세와는 너무 달랐다. 한국의 레버리지 증가는 글로벌 부채증가와 유사했으나 선진국의 32%에는 현저히 부족했다. 부채증가의 내용 면에서 선진국은 정부 20%, 민간 12%였으나, 한국은 정부 7%, 민간 22%를 기록하며 한국과는 달리 선진국은 민간의 코로나 경제 충격을 정부가 방패막이하면서 민간부채 증가를 억제했다.

/자료=한국은행 이슈노트
/자료=한국은행 이슈노트

무엇보다 가계부문은 투기꾼 소굴이고 가계부채의 증가가 부동산과 주식가격 거품의 원인이라며 ‘가채부채=죄악’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가계부채를 억제하겠다는 한국 금융당국의 태도와 민간을 지원하는 선진국 경제정책의 태도는 많이 동떨어져 보인다.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경제의 부채는 카드채 대란(2003년) 직후 2005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증가해오다가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급등세를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계부채는 2005년부터 지속 상승세를 보이다가 2020년 코로나 위기가 닥쳐서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기업부채는 금융위기 직전에 급등 후 조정을 보였고 2018년부터 이미 급등세에 돌입했다. 즉 기업부채가 가계부채보다 변동성도 심하고 최근 증가세도 가파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은 보고서는 기업부채 주도의 민간부채 급증을 그림으로 보여주면서도 기업부채에 대한 언급은 제외하고 오로지 ‘가계부채=민간부채’인 것처럼 설명을 혼란스럽게 전개한다.

그러나 2005년부터 시작한 한국 경제의 부채증가 추세는 단순하게 가계부채 급증을 죄악시하는 금융당국의 행정 편의적, 성과지향의 관료주의 시각으로는 읽기 어려운 더 복잡한 얘기가 있을 수 있다. 한은 보고서는 부채가 수요를 자극해 단기적인 경기호조를 가져오지만, 총수요가 위축되고 금리 인상이 있을 경우 부채함정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이미 한국경제는 2005년부터 저성장, 저생산성을 민간부채로 메워 오고 있는 현실이었으므로 이러한 설명의 설득력은 부족하다. 즉, 한국 경제의 부채증가에 대한 우려가 정치적 현상이 아니고 국민 경제에 대한 진정한 걱정에서 시작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금융당국은 조치를 해야 했다. 오랜 기간 정치권이 국민을 위한다는 말 잔치만 있었던 상황에서 재벌 중심 산업 생태계가 저성장 속에 저금리 기업부채를 틈만 나면 증가시켰고 국민은 깊어가는 소득 불평등을 저금리 부채로 생계를 이어가며 한국 경제의 소비를 지탱했다고 볼 수 있다.

경제를 구성하는 세 가지 경제주체 중 정부와 기업은 법인격을 갖지만, 가계는 소중한 생명을 가진 자연인이 구성원이다. 경제 관료의 실수로 정부와 기업은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 수가 있지만, 가계는 한 번 닫으면 죽음이며 다시 살릴 수 없다. 완전고용 목표를 가진 미 연준의 통화정책보고서에는 매번 빠지지 않고 실업자, 저소득층에게 경제의 온기를 주기 위해 저금리를 유지하고 유동성 지원을 해야 한다는 표현이 들어있다.

경제의 동력은 기업의 수익성,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가계의 안정적 삶이 유지되어야 경제의 수요가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가계는 한번 다치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수치 중심으로 접근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가계부채 증가세 속에 국민의 삶과 아우성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금융 불균형을 막다가 경제균열이 올까 두려울 뿐이다.

표면에 보이는 병증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면 병세는 악화할 수 있다. 과다한 가계부채와 급등세가 분명 치료해야 하는 병증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처방이 제대로 진단한 결과가 아니라면 병 치료가 오히려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바로 ‘교각살우’(矯角殺牛)다. 좋은 종을 만들기 위한 제사를 위해 잘생긴 소를 만들려는 욕심에 삐뚤어진 소의 뿔을 바로잡다 소를 죽인다는 뜻이다. 과거 정부는 부자에게 칭찬받는 것은 선진경제의 것이라 앞다투어 따라 했다. 그러나 이번에 가계부채 문제는 서민에게 역시 인색하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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