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경제·금융 전망이 해로운 이유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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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적인 경제·금융 전망이 해로운 이유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1.12.09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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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어느덧 2021년 12월 마지막 달이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경제와 금융에 관련된 정부나 민간 연구소, 금융회사들은 다음 해의 경제와 금융 전망 보고서를 내놓는다. 필자는 골드만삭스, OECD, 국회예산정책처, 한국금융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센터, 하나금융투자 등의 공개된 내년도 전망 보고서를 확보하고 읽어 보았다.

경제와 금융 관련 글을 쓰고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 필자에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으로 이 작업을 매해 반복하지만, 매번 소회는 같다. 또 부질없는 짓을 했다는 허망함이다. 은퇴 이전 금융투자 현장에 있으면서도 매해 같은 일을 했지만, 그때도 같았다.

이들 경제·금융 전망 보고서를 경험한 독자들은 알겠지만, 여기에는 끝도 없는 숫자의 행렬이 이어진다. 보고서는 현재 상황과 관련한 숫자를 정리하고 복잡한 경제와 금융이론을 이용해 어떻게 해서든지 다음 해 전망을 만들어낸다.

필자가 금융시장에 발을 들인 이후 30여 년간 읽은 보고서들은 방법에서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증권사 전망 보고사에 수리 통계를 예측 방법에 접목하는 퀀트(Quant)라는 분야가 추가된 것이 새롭다면 새로운 것이다. 한편으로 경제·금융 전망 보고서는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법칙처럼 시간이 갈수록 점점 복잡해진다. 아마 원인은 분석 대상인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증가에 있을 것이다.

지난 30여 년을 되돌아보면 1987년 블랙 먼데이, 1994년 LTCM 헤지펀드 몰락,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대금융위기(great financial crisis), 2020년 코로나19 위기까지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준 사건들은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은커녕 이해조차 어려운 것들이었다.

예측은 경제와 금융으로 밥 먹고 사는 전문가에게는 숙명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불확실성의 증가는 경제 전문가의 필요성과 존재가치를 위협한다. 예측에 신뢰가 없는 경제, 금융전문가를 상상해보라. 단지 지나간 경제 변수와 금융상품 가격을 기록하고 해설하는 전문가는 회계장부 기록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나 금융시장의 가격을 예측하는 것에 근본적으로 회의가 드는 견해도 있다. 첫째는 불확실성의 증가로 예측이 점차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가정에 갇힌 경제모델로 21세기 경제 상황을 예측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변동을 날씨나 지진 변동과 같은 ‘카오스’로 보고 물리학자, 수학자, AI가 열정에 불 타 예측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경제모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진 방정식, 통계적 추론으로 가격을 예측하려 시도하고 심지어 AI가 해답을 구하는 방식은 역추적이 불가능한 방법, 블랙 박스로 알려진다. 헤지펀드를 통해 이들에게 자금이 집중하고 있으며 금융시장에 대한 헤지펀드의 영향력은 폭발하고 있다. 불확실성을 해결하려는 불확실한 방법은 오히려 불확실성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금융시장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블랙박스 속에 더 깊이 갇힐 것이다.

둘째는 미래 가격을 예측한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어리석은 특성이라는 신경경제학, 행동경제학의 견해다. 금융전문가 제이슨 츠바이크는 저서 <투자의 비밀>에서 오늘날 시장의 예언자를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양의 간을 보고 미래를 예언했던 바루(baru)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시장전략가, 금융분석가, 투자전문가로 불리는 현대판 바루들은 실업률이 하락하면 물가가 상승하고 이것은 금리 인상 신호이며 주가가 하락한다는 명확한 신호라고 예언한다. 고대 예언자처럼 양의 간에 드러난 주름과 혈흔을 읽는 것과 동일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츠바이크는 현대 예언자는 예측함으로써 돈을 받지만, 나중에 자신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했는지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예측에 근거해 투자하면 투자자가 후회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예측이 틀리는 다수 사례도 제시하며 전문가의 예측이란 것이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측이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아도 전문가나 투자자 모두 이 행동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한다. 신경경제학은 인간은 오랜 진화 끝에 왼쪽 뇌의 반구‘에 패턴을 찾고 인과관계를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모듈이 있다고 설명한다. 다트머스 대학의 심리학 연구진은 ‘해석자라는 별명이 붙은 뇌의 이 부분은 ‘내가 이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우리를 믿게 만들고 만약 데이터에 패턴이 없으면 혼란스러워한다고 설명한다.

패턴을 추종하는 인간 호모 포르마페텐스(homo formapetens)인 인류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질서를 지각하는 버릇이 있으며 부정확하고 왜곡된 이미지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를 추종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전문가는 과학이 아닌 맹신으로 예측과 전망을 하고 투자자는 이를 맹신하고 소비한다. 그 많은 전망과 예측은 수십만 년 동안 생존을 위해 두뇌가 만들어온 환상일 뿐이며, 불확실성이 높은 현대 경제에서는 예측에 대한 맹신은 독이 될 수 있다.

간혹 금융시장 분석가들은 매도 리포트를 쓰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금융시장 보고서는 대부분 금융상품을 파는 쪽(Sell side)이 사는 쪽(Buy side)을 유혹하기 위해 제공하기 때문이다. 금융 보고서는 돈을 목적으로 작성하므로 의도적으로 전망이 왜곡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반면 정책 목적으로 생산되는 보고서는 비교적 중립적일 수 있으나 대부분 거시경제 지표에 대한 전망에 그치므로 일반인들이 이를 활용하기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거시 경제 지표 전망을 개인이 금융투자나 비즈니스 의사결정에 활용한다는 것은 선문답하는 것과 같다. 그 과정 자체로 또 하나의 예측과 전망을 하는 것만큼이나 불확실성을 더하는 과정이다.

아울러 보고서에 담긴 수많은 숫자와 경제, 금융이론을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으며 보고서에 등장하는 전문용어도 끊임없이 매일 새롭게 생성된다. 여기에 다가오는 2022년은 아직 코로나19 변이의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았다. 매년 계속되는 경제·금융 전망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다. 잘못 건드려 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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