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비극이라는데 한국은 행복?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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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비극이라는데 한국은 행복? [조수연의 그래픽저널]
  • 조수연 편집위원(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 승인 2022.01.18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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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누구요? (Who’s there?)”. 셰익스피어 <햄릿>의 첫 문장이다. 학창 시절 셰익스피어를 읽어보겠다고 큰마음 먹고 책장을 열었을 때, 마주친 첫 문장은 이후 평생 필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어떤 구체적인 사건이나 사실을 담지 않은 이 짧은 문장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엇이 앞에 있는지 모를 때가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대니얼 카너먼에 의하면 인간 행동은 이성적, 분석적인 영역인 ‘시스템 1’과 직관적 판단에 근거하는 ‘시스템 2’의 두 가지가 지배한다. 인간이 이성적, 분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데카르트가 인간을 발견한 이후로 불과 수백 년 전이고, 그 이전 수십만 년을 인간은 거친 야생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로지 직관적인 시스템 2에 의존했다.

시스템 2는 무질서한 자연에서 패턴을 찾는 본능인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자기만의 경함과 방식으로 해석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휴리스틱(heuristics) 등이 특징인데, 짙은 어둠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확인하지 못할 때 극도로 경계하라고 본능과 행동을 조종한다.

햄릿을 생각하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인물은 오필리아일 것이다. 오필리아가 미쳐서 연못에 뛰어들어 생을 등진 모습을 그린 존 에버렛 밀레이의 명화 속에 오필리아의 표정은 압권이다. 아마 기사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경제지표를 매일 접하는 일반인들의 표정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경제와 금융시장을 예측하는 사람들이 고대의 예언가 바루(Baru)와 같다는 얘기를 이전 글에서 몇 차례 했다. 필자의 견해가 아니고 경제, 금융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다. 단지 필자는 공감할 뿐이다. 이 현대판 바루들은 (대개는 직업과 생계를 이유로) 수많은 경제·금융 지표를 생성하고 그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 시장을 설명한다. 바루가 그들의 예언지침서를 보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신경경제학에서는 인간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은 과학적 분석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한다. 시스템 2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일러스트=조수연 편집위원

바로 현대판 바루의 지표 패턴 분석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 바로 미저리 인덱스(misery index)이다. 포털에 검색하면 경제고통지수라는 용어로 소개한다. 경제적으로 고통을 주는 지표라는 번역이 아주 흥미롭다.

지난주 미국 노동 통계국이 발표한 2021년 12월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 인플레이션은 40년 만의 최고치인 연 7% 상승을 기록했다. 또한 실업률은 3.6%를 기록했다. 바로 미저리 인덱스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합계로 계산한다. 인플레이션을 고통지수에 포함한 것은 이 숫자가 바로 화폐가치의 훼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정적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게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 훼손에 의한 임금 삭감을 의미한다. 인플레이션은 노동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소리 없이 임금 삭감을 진행하므로 침묵의 강도나 다름없다.

인플레이션은 판매 수입 증가를 통해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킨다. 노동자와 소비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민에게 인플레이션은 고통을 누적한다. 또 다른 고통지수의 요소인 실업률은 상대적으로 왜 고통을 주는 경제지표인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임금이 단절되면 그 가정은 파탄에 이르기 쉽다. 각각의 경제지표가 노동자의 생활을 핍박할 것인데, 두 경제지표가 같이 상승하면 국민이 느낄 고통은 상호 강화하는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과거 1970년대 이전에는 경제학의 관점에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은 상반된 관계를 하는 것으로 인식했으며 이러한 상반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필립스 커브였다. 그러나 1970년대 닉슨 행정부 이후 달러의 금 태환이 정지되고 중동사태로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ur Kun)이 기존 경제학 원리와는 배치하는 미저리 인덱스 개념을 만들었다. 이 개념은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지미 카터가 현직 대통령인 포드를 공격하는 게 사용하며 정치적으로 먼저 명성을 얻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완전 고용에서 실업률을 4~5%로 인정하고 있고, 미국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가 2%이므로 미저리 인덱스는 6~7% 수준에 있으면 정상 수준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저리 인덱스는 금융위기 당시 12.7%에 도달했다가 2015년 5%까지 하락했고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코로나19 발발 직후 실업률 급증으로 15%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실업률은 낮아졌으나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고통지수는 10.6%를 기록하며, 코로나19 이후 2015년 저점에 비해 2~3배에 이르는 수치다. 정치권에서 왈가왈부하기 좋은 상태다.

미저리 인덱스를 미국 경제 상황과 비교해보면 한국 경제는 양호해 보인다. 지난해 12월 한국의 미저리 인덱스는 6.2%로 2011년 7.4%보다 오히려 하락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3.7%, 실업률은 3.5%를 기록하며 인플레이션이 미국경제의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2022년 현재 한국 국민은 미국 국민보다 평안할까? 안심하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한국은 올해 대통령 선거 이후 물가 전망이 밝지 않다. 지난 3개월 연속해서 물가가 3% 이상 상승하고 있는데 이어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시작으로 전반적인 고물가가 예상된다. 국제 유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국제 유가는 올해에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을 것으로 글로벌 투자은행은 전망한다.

앞으로 가중될 인플레이션 부담과 더불어 한국 경제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국민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현저한 정부의 적극적인 코로나19 재정 지원 회피와 금융당국의 조기 금리 인상, 금융 긴축 등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또 다른 고통이다.

미국 중앙은행은 저소득층 걱정에 통화 긴축시기를 저울질하느라 전전긍긍하는데, 한국 금융당국은 금융 긴축, 금리 인상을 전공(戰功)처럼 자랑스러워한다. 경제와 금융 관료에게 느끼는 한국 국민의 체감 고통 지수는 결코 미국보다 좋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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